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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항공 엔진 독립의 ‘진짜 미래’를 여는 길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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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총괄인 방사청은 공군 전력 우위 확보를 위해 2023년 2월 국산 전투기용 엔진 개발을 선언했다. 현재 자체 기술로 만든 전투기용 엔진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4국에 불과하다.
현재 4.5세대 한국산 전투기 KF-21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1만5000ibf급 F414-400 엔진이 들어간다. 엔진이 KF-21 한 대 가격의 30~40%를 차지한다. 최근 첫 수출에 성공한 기동헬기 수리온에도 외국산 엔진이 쓰인다. 전투기의 세대가 높아질수록 고성능의 엔진이 필요한데,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면서도 외국산 엔진에 의존하는 것이다. 엔진 수출국들은 기술 수출을 통제하며 다른 국가의 첨단 엔진 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등으로 구성된 민관군 협의체는 지난해 내내 1만5000ibf급 첨단 항공 엔진 개발 로드맵을 만들어 왔다. 국과연이 항공 엔진의 개념 연구를 맡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두산에너빌리티가 각각 엔진 설계안을 맡았다. 국과연은 양사가 제출한 설계안을 토대로 정책적 제안을 담아 방사청에 제출했다. 방사청이 다음 달 공개하는 것이 바로 이 로드맵이다.
한데 이 로드맵엔 엔진 개발 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구체적 활용 방안은 빠져 있다. 첨단 항공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가장 큰 목적은 KF-21과 T-50의 뒤를 이을 5세대, 6세대 전투기에 탑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전투기를 만드는 체계종합회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항공우주는 항공 엔진 로드맵 도출을 위한 민관군 협의체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 체계종합 업체인 한국항공우주가 개념 설계 초기부터 참여했다면 국산 항공 엔진의 완성도와 활용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투기 엔진을 바꾸면 그에 맞는 각종 시스템도 뒤따라야 하는 만큼, 엔진 그 자체를 개발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이 엔진을 달고 전투기를 운용할 체계종합 업체의 큰 그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가 국산 엔진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한국항공우주는 KF-21 양산이 끝나는 시점에 차기 전투기를 생산해야 하는데, 외국산 엔진 탑재를 기초로 생산 계획을 세워둔 것으로 전해졌다. 갑자기 국산 엔진을 차기 전투기에 넣게 되면 후속 개조·개발이 이뤄져야 해 사업 기간이 밀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사업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항공우주는 지난해 12월 두산에너빌리티와 업무협약을 맺으며 뒤늦게 엔진 개발 사업에 한 발 걸치기는 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항공 엔진 개발을, 한국항공우주가 항공기 체계 개발을 맡는 내용이다. 그러나 방산업계에서는 한국항공우주의 이런 행보가 항공 엔진 개발에 뛰어든 다른 업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 아니냐는 평이 나온다.
정부 측의 한 인사는 “한국항공우주가 특정 업체와 손잡는 구도보다는 사업 전반에 참여하며 개발을 아우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항공 엔진은 국가의 미래를 고려하면 필수적인 사업이다. 정부도 항공 엔진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각종 세제 혜택을 주며 육성하고 있다. 미래 국가 경제를 뒷받침한 기술이라고 판단해 나라 곳간을 열어 키우는 것이다. 각자도생이 아닌 협력이 ‘진짜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