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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②] “한국 핵융합 연구, 젊은 인재들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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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대전=김두완‧박설민 기자

핵융합발전 시계가 빨리지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과 에너지 강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핵융합 기술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핵융합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다양한 비전과 전략(△핵융합 플래그십화 △상용화 로드맵 △별도 규제트랙 등)을 제시하며 규제 체계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민간과 협력해 민간이 주도하는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노력은 주목할 점이다. 핵융합에너지를 둘러싼 각국의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는 젊은 인재들의 손에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핵융합에너지 실증… 차별성‧혁신성‧협동성으로 극복

핵융합은 태양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모방,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핵융합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점 △고준위 방폐물을 발생시키지 않는 점 △폭발의 위험이 없어 안전성이 높은 점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미래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全)산업이 AI‧디지털화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미래 에너지로 주목한 핵융합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핵융합 참여 확대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핵융합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하면 핵융합 실증을 위한 R&D 프로그램이 미약하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한국의 핵융합 연구가 직면한 현안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이가 있다. 바로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취임사에서 △차별성(Uniqueness) △혁신성(Innovation) △협동성(Connectivity)을 중요가치로 제시하며, “한국의 핵융합 가속화를 위한 전방위적인 계획 수립과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노력을 알아본 것일까. 지난해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탈탄소 시대,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핵융합 기업들이 공공기관과 함께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협력이 길이 열린 것이다. 나아가 핵융합에너지 조기 실현을 위한 기반 구축과 국내 핵융합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조치로 지난해 12월에는 핵융합 산‧학‧연 협의체 ‘핵융합 혁신연합’이 출범하기도 했다.
오영국 원장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참여 국가를 포함한 미국‧중국‧유럽‧일본‧영국 등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융합 에너지를 필수 에너지원으로 선정하고 있다”며 “이를 가속화하기 위한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전략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도 전략과 더불어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수다. 올해 핵융합연의 예산은 964억9,300만원이다. 이 중 한국의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 가동 예산은 391억3,000만원이다. 중국의 핵융합 연구 지원금이 약 1조원 규모인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수준도 안된다. 핵융합연이 1년에 KSTAR를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은 3개월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1년 내내 가동이 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한국의 핵융합 발전을 위해 인재 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것 역시 과제다. 핵융합연의 전체 인력은 450여명이다. 이 중 연구 인력은 300여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ITER프로젝트 유지를 위해 해외로 파견된 인력을 제외하면 200여명만이 국내 KSTAR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 2,000여명 이상의 연구원이 배치되는 미국·유럽·중국과 그만큼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오영국 원장은 “많은 연구자들이 이탈하는 주요 원인은 연구 기회 부족과 처우 문제”라며 “현재 연구기관의 채용 시스템을 개선하고 연구 환경과 처우를 보다 경쟁력 있게 조정해야 한국 핵융합 연구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핵융합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초전도, 극저온, 초고온, 인공지능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융합된 인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기술”이라며 “핵융합은 분명 어려운 연구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과 혁신을 원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 핵융합의 미래를 함께 열어 나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 핵융합 규제… 안전성‧효율성 동시 충족해야

최근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차세대 핵융합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민간과 협력해 고온초전도 자석 및 혁신형 핵융합로 기술(레이저‧역자장 방식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에서는 규제 체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 6월 14일 이탈리아 아폴리아(Apulia)에서 개최된 제50차 주요 7개국(이탈리아‧캐나다‧ 프랑스‧​​독일‧일본‧영국‧미국) 정상 회담에서 G7 정상들은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분야 중 하나로 핵융합에너지를 포함한 지도자 공동성명(Leaders’ Communiqué)을 발표했다. 이 성명을 통해 일관된 핵융합 규제 접근 방식 달성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는 핵융합에 대해 국제적인 표준을 마련하는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핵융합 규제를 세계 최초로 확립한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2019년 세계 최초로 전기 생산이 가능한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핵융합 규제 체계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2023년 에너지법(Energy Act 2023)을 제정해 ‘원자력시설법(Nuclear Installations Act 1965)’의 적용 대상이었던 핵융합에너지 시설을 명시적으로 제외시킨다. 핵융합에너지 시설이 핵분열 시설과 동일한 규제 요건을 적용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현재 영국은 핵융합 규제체계를 자국에 한정하지 않고 글로벌로 확장해 ‘조화’를 강조하며, 해외 주요국이 영국과 유사한 핵융합 규제 체계가 수립될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2024년 7월 원자력 발전 촉진법(일명 ADVANCE 법)을 제정해 핵융합 장치(fusion machine)를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 규제에서 분리해 방사선 발생장치 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핵융합 규제와 관련,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함과 동시에 기본방향의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향후 핵융합 기술에 원자력 발전소에 준하는 과도한 규제 적용으로 인한 핵융합에너지 개발 지연이나 산업 위축 문제를 방지하려는 취지다.

오영국 원장은 “핵융합 발전을 위해 민간과 협력하는 에코 시스템 생태계 마련과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제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핵융합 규제와 관련해 별도 규정이 없어 원자력에너지와 관련한 규제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해 별도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도 건설 시 방사선 발생 장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장치 역시 프랑스의 원자력 법령을 기준으로 건설이 진행됐다. 하지만 핵융합로는 고유의 안전 특성으로 설계 단계부터 원전이 갖고 있는 위험요소를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원전 규제와는 다른 안전‧인허가 체계 개발이 필요한 셈이다.

오영국 원장은 “핵융합 규제 관련해 해외에서는 글로벌 하모니제이션(harmounization), ‘조화’를 표방하고 있다. 결국 세계 트렌드에 동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오히려 우리 혼자 규제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지만 주요국가들이 선행하고 있기 때문에 선례를 따른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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