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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①] “국가 미래를 밝힐 불꽃, 인공태양에서 타오르죠”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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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대전=박설민‧김두완 기자

인류 문명은 에너지라는 사상 위에 놓인 누각과 같은 존재다. 에너지 공급이 중단된다면 우리의 문명과 산업은 석기시대로 순식간에 돌아가게 된다. 때문에 현대사회 들어 안정적 에너지 공급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핵융합(Nuclear fusion)’ 과학 기술 연구는 우리 미래를 그릴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재생에너지의 에너지 생산 비효율, 원자력 발전의 방사능 폐기물, 화석 연료의 탄소 배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열쇠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핵융합을 인류에게 주어질 두 번째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의 심장인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2대 원장인 오영국 원장을 만나 국내 핵융합 연구 현황과 미래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핵융합과 함께한 30년, 한국의 ‘인공태양’을 실현시키다

“이곳이 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될 것 같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핵융합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핵융합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는 확신 덕분이었다.”

지난 6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하 ’핵융합연‘)’에서 만난 오영국 핵융합연 원장은 지난 30년 동안의 연구원 생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오영국 원장은 지난해 4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제211회 임시이사회를 거쳐 2대 핵융합연 원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오는 2027년까지다.
핵융합연은 미래 청정에너지인 핵융합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 연구시설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를 순수 국내 기술로 완공해 운영 중이다. 또한 국제 공동 핵융합에너지 개발프로젝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개발사업’의 국내 전담 기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핵융합연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6년 1월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으로 출범해 2005년 10월 핵융합연구센터가 됐다. 2007년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부설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로 승격됐다. 이후 2020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라는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오영국 원장은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핵융합연과 함께 걸어온 연구자다. 핵융합연의 시조인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은 1996년 당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하 ‘KBSI’)의 한 부서에서 시작됐다. 이때 오영국 원장은 KBSI 연구원으로 해당 사업단에서 근무했다. 이후 연구소를 거쳐 연구원 승격까지 모든 순간을 핵융합연과 함께했다. 말 그대로 ‘한국 핵융합의 역사’인 셈이다.

오영국 원장은 “1993년도에 KBSI에 입사했을 당시엔 핵융합 연구기관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며 “이후 KBSI에 하나의 부서로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이 발족하면서 이곳에 합류했고 지금까지 핵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사를 마치고 경제적 형편 때문에 취업을 하려고 했었던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즐거움에 포기하지 않고 핵융합의 길을 걸었고 이것이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한국형 핵융합로 ‘KSTAR’, 세계 최고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렇다면 30년간 오영국 원장이 몸 담았던 ‘핵융합’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핵융합은 수소 원자가 서로 결합해 헬륨 원자핵을 만드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선 엄청나게 높은 열과 에너지가 방출된다. 태양도 핵융합을 통해 불타오르는 것이다.

즉 핵융합을 지구에서 안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인류는 태양의 힘을 손에 넣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핵융합은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과 달리 방사능 폐기물 발생 위험도 없다. 원료가 되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바닷물을 분해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또한 탄소 배출도 사실상 ‘0’이라 말 그대로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 발전이다.

이런 ‘꿈의 에너지’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선진국들은 각자 핵융합로를 구축했다. 한국의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 역시 그중 하나다. 핵융합로 기반 기술 확보 및 초고온 플라즈마 운용 실험을 통한 국내 핵융합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2007년부터 가동 중이다. 지난해 4월엔 1억℃ 초고온 환경에서 48초간 핵융합 운전에 성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운전 기록을 달성했다.
이 같은 KSTAR의 성과엔 오영국 원장의 연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로 ‘초전도자석’ 연구다. 초전도자석이란 구리, 신형 합금 코일 등을 실타래처럼 감아 만드는 자석이다. 매우 강한 자기장을 얻을 수 있어 핵융합로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KSTAR는 나이오븀틴(Nb₃Sn) 초전도자석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초전도자석 핵융합로다. 이 초전도자석의 핵심 기술을 연구한 과학자가 바로 오영국 원장이다.

KSTAR에서 초전도자석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플라즈마(Plasama)’ 때문이다. 핵융합 구현은 융합로 내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다. 플라즈마란 기체가 이온화돼 양이온과 전자로 분리된 상태다.

플라즈마는 매우 불안정해 초고온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특히 플라즈마 경계의 압력 변화로 발생하는 ‘경계면불안정성(ELM)’ 현상은 핵융합로 장치 내벽에 손상을 가하기도 한다. 이때 초전도자석은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플라즈마를 가두고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영국 원장은 “플라즈마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변덕스러워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데, 특히 ELM은 핵융합로 운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며 “다행히 KSTAR에는 3차원 초전도자석이 설치돼 있었고 이를 활용해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ELM 제어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소형 실험용 핵융합로, 경쟁 우위 가능

핵융합연은 핵융합 자체뿐만 아니라 여러 관련 기술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플라즈마 관련 연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과 의료기술, 스마트 농업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핵융합연은 반도체 장비기업인 ‘아바코’, ‘세원하드페이싱’, ‘SW경원테크’ 등에 관련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오영국 원장은 “핵융합 연구는 에너지 발전뿐만 아니라 플라즈마 연구가 병행되기 때문에 여러 산업의 주요 기술 발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저온 플라즈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식각 및 증착 공정의 핵심으로, 현재 연구원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협업 연구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뛰어난 연구성과를 자랑하는 핵융합연이지만 오영국 원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빠르게 앞서가거나 추격하는 경쟁국들 때문이다. 미국, 유럽을 필두로 한 핵융합 강국들은 민간기업의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빠른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핵융합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 사업체가 전무한 한국과 달리 해외시장에선 관련 산업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핵융합 시장 규모는 2040년까지 약 8,434억6,000만달러(약 1,225조4,63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미국’, ‘중국’, ‘프랑스’로 분석됐다. 미국 핵융합 시장 규모는 2040년까지 약 2,033억5,000만달러(약 295조4,47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같은 기간 약 536억8,000만달러(약 7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ITER 프로젝트 핵융합로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2040년까지 시장규모가 1,000억9,000만달러(약 145조4,20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처럼 앞서가는 선진국과의 경쟁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오영국 원장은 새로운 연구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현재 가장 가능성 높게 보는 전략은 ‘소형 실험용 핵융합로’의 구축이다. KSTAR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핵융합 실증로인 ‘K-DEMO’보다 10년 앞선 2030년까지 소형 융합로를 구축해 연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오영국 원장은 “K-DEMO는 기존 원자력 발전소와 유사한 대용량 전력 생산을 목표로 하는 실증로 프로젝트”라며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지만 2040년까지 목표로 하는 만큼 비용과 건설 기간이 많이 소요돼 국제 경쟁에서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핵융합연도 기존 K-DEMO 전략과 병행해 소형 핵융합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최근 발표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 민간 기업 투자 유치와 연계한다면 핵융합 연구에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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