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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자기네 거라 우긴다고? 대만은 마냥 한국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아내가 일하던 디자인샵에는 여러 동물을 그린 티셔츠가 있었는데, 마침 그중에 반달가슴곰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 나는 "한국에도 이 곰이 있다." "우리 신화(神話)에도 곰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설픈 영어로 표현하려다 보니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여기 한국 곰(Korean Bear)이 있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저건 타이완 곰(Taiwanese Bear)이야! 한국 사람들은 모든 걸 다 한국 거라고 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너 공자(孔子)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해?" 알고 보니 그 티셔츠들은 대만 토종 동물들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시리즈였다. 그걸 보고 한국 곰이라고 했으니 아내가 웃음을 터트릴 만했다. 당황한 내가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아내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 일을 가지고 나를 놀린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인식은 '모든 걸 자기네 거라고 우기는 나라'였다.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은 극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공자 한국인', '공자 동이족(東夷族)'으로 검색해보면 글이나 영상이 제법 나온다. 요약하면 공자가 은(殷)나라 왕족의 후손이고, 은나라가 동이족 문명이니, 결국 공자는 한국인이라는 주장이다. 지나친 비약이고 학문적 근거도 희박하한 소위 '환빠*'류의 주장이다. 수메르 문명이 고조선의 일부였다는 주장, 유대인과 한국인이 같은 민족이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환빠: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추종하는 사람들.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해 한국사를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유사(類似) 역사학자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외국에서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켰다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덕분에 나의 사소한 말실수도 큰 웃음거리가 됐다. 이후로도 한국인으로서 내가 대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공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이다. 나는 대답한다. 공자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이고, 나뿐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 오해는 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씁쓸한 마음이 든다.

억울하긴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우리 것'이 너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한국인에겐 우리 것을 지키고 알리는 것이 너무 중요했다. 한국계 외국인이 두각을 드러내면 '한국계 스타', '한국의 외손자'로 관심을 쏟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 사람을 만나면 "두 유 노우 손흥민?" K팝을 좋아하는 나라 사람을 만나면 "두 유 노우 BTS? 두 유 노우 블랙핑크?"를 물어본다. 나 역시 대만에 살면서 한국 상품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한국인 이 모델로 나오는 광고를 보면 아내에게 저 사람 한국인이라고 귀띔한다. 생각해보면 반대로 아내가 대만 제품이나 대만 사람을 강조한 기억은 없다.
오랫동안 섬나라로 고립돼 살아온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반도(半島)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 외국과 활발한 교류 없이 살아왔다. 해방 이후 전쟁을 겪고 나서는 아예 북쪽 국경이 막혔다. 90년대에 이르러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까지는 개인이 외국과 교류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 좁은 시야로 '우리 것'을 강조하다 보니 의도치 않은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화투놀이'나 '마징가'를 우리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고, 다른 나라 어린이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은 이제 박탈감을 감추기 위한 자존심이 아니라 정말 당당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문화강국이 됐다. 국제 교류도 확대되고 인터넷으로 정보도 국경을 넘고 있다. 누군가 'K팝은 어차피 서양 음악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해도 발끈할 필요 없다. 서양 문화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한국인만의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어차피 문화는 지속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기 마련 아닌가? 족보를 따지고 근본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났고, 몇 달 후면 설날이 찾아온다. 같은 달력으로 같은 날을 기념하지만, 한국과 대만의 명절 풍경은 많이 다르다. 그래도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정을 나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일본과 중국, 베트남도 그렇게 비슷한 듯 다를 것이다. 넓은 세상에 많지 않은 우리와 공감대를 가진 이웃 나라들이다. 역사적으로 다툼도 있었고, 여전히 갈등과 오해도 있지만 점점 잘 지내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