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4 읽음
백은하와 꽃터뷰 #5 제주 돼지에 대한 '송훈' 셰프의 진심
리빙센스
1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해 이 시국에 제주도에 ‘송훈파크’를 연다던 그를 만났다.
자신의 얼굴을 간판에 새겼을 뿐 아니라 손님들에게 일일이 고기를 구워주며 소통하는 송훈 셰프.
그는 이 모든 것에 진심이다.

지난해 12월, 제주 애월읍에 문을 연 송훈파크에는 고깃집 크라운 돼지와 카페 겸 베이커리 하이브레드가 입점했다.
크라운 돼지 매장에서 직접 손님들을 만나며 소통하는 송훈 셰프.
셰프님의 그동안 경력을 생각하면 제주도의 돼지 고깃집이라도 뭔가 퓨전이거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식일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정말 고깃집이네요? 연통 달린 고깃집! 왜 돼지고기 요리를 선택하신 거예요?- 고기를 택한 게 아니라 가장 한국스러운 요리를 택했다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쁘거나 힘들거나 슬프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모인 자리에는 고기가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돼지고기가 늘 함께했고, 같이 먹으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는 음식이니까요.
어릴 적 소울푸드는 무엇이었나요?
- 어린 시절 어머님과 시장 가는 길에 꼭 들러서 사 먹던 음식이 있어요. 작은 포장마차의 솥에서, 비닐에 싸여서 따뜻하게 쪄지고 있던 순대였는데요. 빨간색 양념 소금에 순대와 간을 콕콕 찍어서 먹는 동안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하나도 싫지 않았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도 저는 순대는 완벽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외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외할머니의 요리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어떤 건가요?
- 외할머니께서는 손주인 저를 보시면 한 상 가득 손맛이 담긴 음식을 차려주셨어요. 달짝지근한 양념에 버무린 불고기와 싱싱한 쌈 채소로 입안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면 친구들에게 먹었던 불고기를 자랑했었고요.
순대부터 불고기까지 고기 요리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고향 음식에서도 영감을 받으셨나요?
- 제가 하는 음식의 기본이자, 주변의 요리사들에게 항상 말하는 기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준다 생각하고 요리를 하자’예요. 제 요리의 주제인 ‘정성과 조화ʼ는 제가 먹었던 음식들 전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한 고향 음식들은 모든 식재료를 아울렀고, 특별한 레시피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차린 음식이 최고의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스타 셰프는 부모님 댁에 가면 황금 손으로 음식을 해드리시나요? 아니면 어머님의 밥을 드세요?
- 지금도 저는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을 먹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고 싶은 음식이고요. 저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 부모님께 꼭 먼저 드셔보시게 합니다. 부모님이 드셔보고 주시는 피드백이 제 요리를 발전시킨 적도 많고, 부모님도 그걸 즐거워하세요.
세계 3대 요리 학교로 꼽히는 CIA를 다니고, 미국에서 10여 년간 셰프로서 경력을 쌓는 동안 요리 말고도 소중하게 익히고 배운 건 뭘까요?- 미국은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무한한 노력과 경쟁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요. 경쟁하되 배운다는 문화가 저한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저도 누구보다 열심히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배우기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빼줄 수 있다’를 철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셰프로 성장하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 미국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제 분신인 아들들이 태어났어요. 그 와중에 요리사로서도 성장하기 위해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애써 외면 하면서,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일과 연구에 써야 할 때 많이 미안하고 힘들었습니다.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제 전부예요. 지금도 미국에서 고생했던 시절, 가족과 더 많이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푸른 산책ㅡ유채꽃 명상’, 백은하 作
작고 여린 당근을 캐다 샐러드를 해 먹는 게 텃밭 가꾸기의 재미다.
꽃을 따서 먹으면 무의 맛이 난다는 무꽃이 텃밭에 한가득.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생활하시는 중인가요?
- 한 달에 3주는 제주에서 보내고, 나머지 1주는 서울에서 지냅니다. 이곳 송훈파크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기라서 자주 내려와요. 제가 살고 있는 집도 이 안에 있고요. 저희 가족도 매번 같이 다닙니다. 지금 아들 녀석들은 저 들판에서 놀고 있을 거예요.
제주라서 좋은 것들 중 제일은 뭔가요?
- 자연으로 둘러싸인 삶입니다. 도시에서 최고의 식당들은 가장 번화가에 있으니까요. 그런 곳에서 살다가 제주도에 오니 마음도, 눈도 정화되는 느낌이 확실히 들어요. 실내에서 고기를 굽느라 바빠 제주의 자연을 충분히 누리진 못하지만, 잠깐씩 텃밭을 돌보고 주변 목장을 둘러보기도 해요.
이곳에서 특별한 돼지고기를 쓰신다고 들었는데요. 품종이 다른 건가요?
- 제주 재래돼지를 이용해 개발한 흑돼지 품종 난축맛돈이에요. 고기의 색이 붉고 향이 진하면서 마블링이 있어요. 제주의 난지축산연구소에서 개발 했는데, 저는 2018년에 난축맛돈을 처음 접하고 연구를 시작해서 2019년 서울 강남에 크라운 돼지 1호점을 냈습니다. 이곳이 일종의 난축맛돈 홍보관이라고도 생각해요. 재래돼지의 육질과 털을 이어받은 토종 품종이라 해외로 로열티가 나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먹어온 삼겹살은 대부분 외래종 돼지에서 온 것이라 먹을 때마다 로열티를 지불 해야 했거든요.
삼겹살을 먹으면서 해외 로열티 지급 문제는 생각지 못했네요.
- 2040년 즈음엔 종자 싸움이 더 심해질 거예요. 우리 종자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제주 흑돼지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각 나라마다 자랑하는 최고의 식자재가 있듯이 우리 돼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식자재가 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어랑이랑 어울렁 산책’, 백은하 作.

제주 흑돼지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각 나라마다 자랑하는 최고의 식자재가 있듯이
우리 돼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식자재가 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제주를 택한 이유도 이 돼지와의 인연 때문인가요?
- 맞습니다. 일종의 ‘홈커밍’이죠. 난축맛돈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며 브랜드를 키워가고 싶었습니다.
어느 분야든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을 최고급으로 만드는 것이 늘 흥미로워요. 삼겹살은 그냥 구우면 끝이지,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 가장 좋은 식재료인 난축맛돈을 선택했고, 무엇을 첨가하기보다는 최상의 맛을 끌어내기 위 한 기초를 단단히 했습니다. 지금의 고기도 어떤 형태로 가공할 것인지, 부위마다 최고의 맛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곁들임 음식은 어떤 것이 좋을지, 외면받아온 앞다리, 뒷다리 같은 부위를 어떻게 소개 할지 등 수많은 생각을 거친 결과예요. 어쩌면 제가 경험하고 만든 요리 중 가장 힘든 과정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최고의 식재료는 약간의 마리네이드만으로도 최고의 맛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요리사는 창작가이고 발명가이기도 하지요. 우리 전통 음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요리 장르나 음식이 있으신지?
- 제가 좋아하는 가장 완벽한 음식, 순대를 새롭게 해석해보고 싶습니다!
순대라니, 또 의외네요!
- “나 송훈이야!” 하면서 힘주는 게 하나도 없고. 고깃집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주며 손님과 소통하고 양손에 물병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저는 제가 만들고 차린 음식을 손님들이 행복하게 드셔 주실 때 가장 행복합니다. 손님들의 표정과 피드백을 통해 저를 가다듬고 요리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거든요. 상아탑에 갇힌 요리사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요리 지론입니다.
'제주ㅡ돌, 바다의 마블링’, 백은하 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3000평대 부지에 너른 들판을 제공하는 송훈파크의 전경.
송훈파크 내 크라운 돼지로 향하는 입구. 셰프는 크라운 돼지 매장 내부의 인테리어까지 직접 계획했다
모처럼 산책을 하며 돌담길에 오른 송훈 셰프.
요리를 하면서 또 어떤 꿈을 가지고 계세요?
- 요리를 기반으로 한 경영을 하면서 요리사가 나아갈 수 있는 많은 분야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 길을 먼저 걸어가 보고 힘든 점, 잘할 수 있는 점, 발전시킬 부분을 연구해 후배 요리사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가고자 하는 요리 경영의 길입니다.
삶이든 요리든 요즈음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More and More입니다. 더 발전하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우리는 셰프의 삶을 미디어를 통해 보고, 셰프에 관한 영화가 꾸준히 인기를 끌잖아요. 가장 촉망받는 셰프 중 한 사람으로 제일 좋아하는 셰프 영화는?
- 주성치의 <식신>입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끊임없이 웃게 되지만 결국 ‘최고의 요리는 정성을 다한 진정성 있는 요리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영화입니다. 볼 때마다 크게 웃다가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해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요리는 순대라고 말하고 주성치 영화를 사랑하는 송훈 셰프. 매일 ‘송훈파크’ 안에서 고기를 굽느라 바빠서 밥 먹을 시간을 쪼개 촬영 을 했고 그 와중에 말을 탔다. 그것도 새하얀 백마를 타고 왕자님처럼 송훈파크 를 한 바퀴 휙! 그 모습을 생각하니, 그 반전 매력에 웃음이 난다. 모닥불처럼 따스운 유년의 음식 추억들, 그리고 큰 무대에서 고생하며 쌓았을 탄탄한 요리 실력을 융합해 손님들에게 올린 고기 한 점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송훈파크 내 유채 밭을 둘러보는 셰프와 백은하 작가. 꽃이 지고 씨앗이 한창 여문 유채 밭도 운치가 있다.
기획 김의미 기자
글·콜라주 사진 백은하
사진 이지아
+ 백은하 작가가 만난 다른 꽃터뷰 작가가 궁금하다면?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