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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벗 삼은 광주 인문학여행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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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을 짜는 방식은 다양하다.
TV 예능이나 유튜브, 잡지와 블로그도 좋다.
아니면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는 여행도 있다.
자기 취향에 맞는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
광주호수생태원의 웅장한 나무 길
이번 여행은 전적으로 광주광역시에 맡겼다. 개인적으로 첫 여행을 떠날 땐, 관광청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 다양한 장소의 정보는 물론 추천 일정도 잘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요즘 뜨는 핫플에 관한 정보는 부족할지 몰라도 해당 지역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목적이라면 분명 더 나은 정보들이 있다. 이번에는 광주광역시청이 소개하는 가사문화권 인문학 여행 코스를 따라 가벼운 당일치기 여행을 즐겼다. 대중교통과 튼튼한 다리를 믿는 뚜벅이 여행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정이다.

조선 의병장 김덕령

광주 가사문화권 인문학여행을 관통하는 시대와 인물은 바로 조선과 의병장 김덕령이다.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의병장을 맡은 김덕령은 1954년 또 다른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해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한 이력이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 중 한 명인 셈이다. 다만, 충청도 이몽학 반란과 내통했다는 무고 탓에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사했다.
김덕령 의병장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취가정
환벽당 입구
바로 옆 환벽당으로 여행을 이어간다. 취가정보다 규모가 4~5배 되는 큰 공간이다. 환벽당은 조선 명종 때(1540년대) 송강 정철의 스승인 김윤제가 자연을 벗 삼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이 정자가 특별한 점은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방이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환벽당 뒤로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는 개천이 있어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정자다.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환벽당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아름다운 공간 덕분에 1972년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으며, 2013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승격 지정됐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될 정도로 친근한 공간이 됐다. 정자에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글쓰기를 하든 책을 읽든 어떤 활동을 해도 좋을 것 같다.
환벽당 일원인 광주댐, 맞은편은 담양이다
인문학 여행임에도 곳곳에서 초록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앞선 두 공간도 울창한 나무와 강, 논을 곁에 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갈 충효동 왕버들군과 광주호 호수생태원도 마찬가지다.
충효동왕버들군의 왕버들
왕버들군이 있는 충효마을은 김덕령 의병장의 후손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정조로부터 충효지리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마을 주위로 환벽당, 식영정, 취가정 등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터전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마을의 오랜 수호신인 세 그루의 왕버들과 아름다운 광주호를 두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왕버들 군은 충효동의 역사를 다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1500년대 후반에 심어진 왕버들 다섯 그루 중 세 그루만 남아 있는데, 딱 봐도 오래됐다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생명이 깃든 초록 나뭇잎을 보면 앞으로도 쭉 이 자리를 지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딱 세 그루뿐이지만 워낙 풍성해 마치 숲처럼 보인다. 매년 10월에는 왕버들의 무병장수와 충효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왕버들 기원제’도 열린다고 한다.
생명이 숨 쉬는 충효동왕버들군
다양한 꽃과 식물, 생물이 공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또 곳곳에 예술품 같은 조형물이 있는데, 광주 여행 인증샹 스팟으로 활용하기에 딱이다. 참, 재밌는 포인트도 있다. 입구 쪽에 봉긋하게 솟은 무덤이 있다. '말무덤'이라고 불리는데 3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마을에 나쁜 액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인공 산을 만들고 이를 큰 무덤이라는 뜻으로 했다는 것 하나, 김덕령 장군이 아끼던 말을 이곳에 묻었다는 전설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는 마을에 나쁜 말을 이곳에 묻어 떠돌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런 사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게 호수생태공원이다.
생태원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당일치기로 조금 아쉬운 기분을 지울 수 없다면, 무등산과 충장사, 동명동, 충장로까지 범위를 넓혀 광주에서 하루 이틀 온전히 보내는 걸 추천하다. 혹은 담양 가사문학면과 죽녹원, 관방제림 등 광주+담양 1박2일 일정을 짜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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