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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을 따라 만난 대구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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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그들의 숨결이 대구 곳곳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구 인물기행투어

대구 인물기행투어는 대구관광재단이 투표를 통해 선정한 인물들의 역사를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도보여행이다. 화가 이인성, 작곡가 박태준, 시인 이상화, 기업가 이병철이 선정되었다. 골목 곳곳에 숨은 근대 문화재와 그들에 관련된 장소를 탐닉한다. 기간은 6월12일까지, 그들의 삶 깊숙한 곳을 탐방하며 대구의 매력에 흠뻑 취해보자.
계산성당

미술투어 : 화가 이인성을 발견하는 시간
숨겨진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인성을 찾아서

화가 이인성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대구 인물기행투어 코스다. 대구 곳곳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화가 이인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두 개의 뾰족집
계산성당

작년 큰 화제를 모았던 이건희 컬렉션이 대구를 찾았다. 그가 모은 2만여 점의 작품 중 8명의 작가, 21개 작품을 대구에서 만날 수 있다. 선정된 8인의 작가 모두 대구가 고향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인성도 포함됐다.
이인성 나무
반월당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계산성당은 대구가 품고있는 근대건축물 중 하나다. 대구에서 최초로 외국인이 만든 건축물로 뾰족한 두 개의 탑이 있어 ‘뾰족집’이라고도 불렸단다. 계산성당은 19세기 초반 많은 화가의 풍경화 모델이 됐던 장소다. 낮은 평지에 지어진 붉은 색의 성당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다.

계산성당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 10
음악과 사랑에 빠졌던 작곡가 박태준을 만났다. 그에게 서양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던 장소들 방문해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낭만을 느꼈다.
음악의 역사를 품은 곳
청라언덕

좁은 돌계단을 따라 청라언덕에 올라섰다. 작은 공터 한쪽엔 적색 가옥 3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줍음이 가득한 한 소년을 만났다. 계성학교에 다녔던 소년은 언덕을 넘어 다니며 첫사랑을 만나게 되지만, 수줍음이 많아 말도 못 걸고 떠나보낸다. 소년과 친구(이은상)는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동무생각>이라는 가곡을 만들게 된다. 이 청년은 우리에게 친숙히 알려진 동요 <오빠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이다.
챔니스 주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저항시인 이상화를 만났다. 시를 잊은 우리의 감수성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투어코스: 대구 근대역사관–이장희 생가–라일락뜨락1956–무영당–문성당-향촌문화관
소요시간: 도보 2시간30분

생가의 변신
라일락뜨락1956

시인 이상화를 만나려면 우선 생가터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이상화는 가세가 기울기 전까지 생가에서 지냈다고 한다. 사랑채에는 그의 친구들로 늘 북적거렸다. 현재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는 부지가 쪼개져서 어떤 곳은 빌라로, 어떤 곳은 카페로 변신했다.
라일락뜨락1956은 이상화 시인 생가터에 위치한 한옥 카페다.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곳에는 200년 된 라일락 나무가 있어 봄이 오면 강렬한 라일락 향기를 내뿜는다. 라일락 향기와 이상화 시인을 모티브로 네이밍한 ‘상화커피’를 추천한다. 이토록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 이상화 시인이 넋놓고 바라봤던 풍경을 마주 본다. 그때 그 기분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본다.
라일락뜨락1956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13길 7-20 운영시간: 매일 11:00~20:00, 월요일 휴무
최초의 무영당은 1923년 ‘무영당서점’으로 시작했다. 취급 물품을 늘려가며, 백화점으로서 성장 기틀을 마련해 1937년 신축 개점했다. 박태준 작곡가는 이곳 2층에 ‘음악연구소’를 개설해 개인 지도를 시작했고, 이상화 시인은 무영당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무영당은 그 당시 문화의 장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이인성 화가는 두 사람과 나이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지만, 무영당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며 예전의 무영당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기회의 장소가 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영당 주소: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8 무영당 운영시간: 화~목요일, 일요일 11:00~18:00, 금~토요일 11:00~21:00, 월요일 휴무
삼성의 시작, 이병철 회장을 되짚다 보면 전반적인 대구가 보인다. 대구가 어떻게 산업발전의 요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투어코스: 서문시장역 – 호암 이병철 고택 - 삼성상회 터 – 수창청춘맨숀, 대구 예술발전소, KT&G – 대구 시민운동장 - 대구 오페라하우스, 삼성 창조캠퍼스
소요시간: 도보 3시간

대구를 발판 삼은 삼성
호암 이병철 고택

이병철 회장은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천석꾼 집안의 아들이었다. 첫 사업으로 마산에서 정미소를 운영했고,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운수업도 시작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과 대출을 받아 김해평야를 사들였는데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파산하게 된다.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아버지의 지원 아래 세상을 여행하며 사업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본 후 대구에 터를 잡고 상업을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이 재기의 장소로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1905년 개통한 경부선 철도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는 대구에도 정차했는데 대구에서 생산한 청과물과 포항에서 오는 건어물을 기차에 실어 만주나 중국으로 수출하기 적합했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부터 1948년까지 10년 동안 이 고택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이건희 회장이 태어났다.

호암 이병철 고택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15길 61
당시 이 앞은 도소매상들이 끌고 온 짐 자전거와 소달구지 등으로 언제나 북적거렸다고 한다. 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 만지고 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금고 자리다. 삼성상회의 금고가 있었던 곳에 모형을 설치해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모형을 꼭 한 번씩은 쓰다듬고 간다고 한다.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는 무엇을 팔았을까? 건어물과 청과물 판매뿐만 아니라 대구의 명물 국수를 제조해 팔았다. 대구는 예로부터 국수의 본고장으로 불렸는데, 삼성상회는 제분기와 제면기를 들여놓은 후 ‘별표국수’를 출시했다.
삼성상회 터 주소:대구 중구 인교동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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