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7 읽음
현상금 590억 美사상최악 9.11테러범 빈 라덴, '빨래'로 덜미(세계다크투어)[SS리뷰]
스포츠서울
1
[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밀레니엄에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역사상 최악의 테러, 미국 뉴욕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가 전파를 탔다.

23일 방송된 JTBC ‘세계다크투어’에서 2001년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끔찍한 테러 현장을 갔다. 사망자 2977명, 부상자 6291명이 발생한 사상 최악의 테러는 전세계에 동시 타진되며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몰고 온 바 있다.

다크투어가이드로 나선 김지윤 박사는 “당시 미국 보스턴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놀란 친구가 달려와 ‘쌍둥이 빌딩이 공격 받았어’ 라고 말했다. 정말 다들 난리가 났다. 너무 놀라 눈물을 흘리고, 여전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를 겪을 정도로 힘든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뉴욕의 맑은 가을날 중 하나였던 9월11일, 순식간에 날아든 비행기 한대가 ‘쌍둥이빌딩’으로 불린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꽂히며 끔찍한 테러의 서막은 시작됐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테러의 순간에 이어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남쪽 타워에 또 한 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꽂히며 미국 전역을 경악에 빠뜨렸다.

봉태규는 “미국 중심부에서 어떻게 저렇게 대범한 테러를 벌였을까.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상상못했을 것같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를 상징했던 쌍둥이 빌딩은 1973년4월4일 개장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하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테러의 목표가 됐다.

당일 오전 7시50분경 보스턴에서 출발해 LA로 향했던 비행기는 이륙 10분만에 하이잭 당해 8시37분 경 뉴욕으로 방향을 돌리고 급강하를 시작하며 그대로 북쪽 타워를 피격했다.

김지윤 박사는 “테러범들이 이 비행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보스턴과 뉴욕이 1시간 거리로 가깝고, 대륙을 횡단하는 비행기라 연료가 넉넉했다. 피격시 폭발력이 컸던 거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박나래는 “테러범 입장에서 충격과 공포가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었겠다”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김 박사는 “충돌한 비행기가 폭발하며 두 건물은 화재의 열기로 녹아내렸다. 1000도가 넘었다고 한다. 충돌지점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던 사람들 중 200명 이상이 탈출 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뛰어내렸다”며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세계무역센터는 끔찍한 테러로 차례로 무너져 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10층 건물이 수초만에 무너져내리며 엄청난 분진과 진동이 전달됐고,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분진을 뒤집어쓰고 피를 흘린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망치는 당시 시민들의 모습에 박하나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김 박사는 “뉴욕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세번째 납치된 비행기가 미국 국방의 중심 펜타곤을 공격했다. 이 충돌로 승객 64명, 직원 125명 사망했다”고 말했다. 봉태규는 “펜타곤은 요새라고 할 정도로 미국 국방의 상징인데, 어떻게 그렇게 속수무책 뚫렸냐”며 통탄했다. 김 박사는 “공격을 인지했다고 해도 민간인이 타고있는 비행기를 요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속수무책이던 당시 테러의 교활한 면모를 전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미국 정치의 심장 워싱턴을 향한 네번째 납치 비행기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김 박사는 “네번째 납치된 비행기는 워싱턴을 향했다. 아마도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향한 듯하지만 테러는 결국 실패했다”라고 말했다.

테러를 막은 영웅은 요원도 군인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승객들이었다. 김 박사는 “40명의 시민이 용감하게 테러범에 맞섰다. 이를 주도한 토드 비머는 30대의 평범한 세일즈맨이었다. 비머와 승객들은 테러범의 총칼에 맞서 격렬히 저항했고, 결국 비행기는 시속 906km로 거꾸로 처박혔다”라고 말했다. 승객과 승무원 40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다른 이들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고.

이날 방송에서는 끔찍한 테러의 배후였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도 공개됐다. 테러 9년만인 2010년에야 도피에 실마리가 잡힌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한 부촌에서 발견됐다.

김 박사는 “당시 빈 라덴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300억으로 시작해 590억까지 올라갔다. 그런데도 안 걸렸던 이유는 뜻밖의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산 속도 동굴도 아니었고, 파키스탄의 부촌에서 숨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9년간의 첩보전 끝에 빈 라덴의 은거지를 찾아낸 미국은 항공감시를 통해 문제의 저택을 면밀하게 감시했고, 아내가 셋에 자녀와 손주가 많았던 빈 라덴과 가족수가 일치한다는 걸 확인했다고. 김 박사는 “결정적 단서는 빨래였다. 빈 라덴의 가족 구성원과 빨래가 일치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는 즉시 미국 최정예 부대 네이비씰 중 최우수 요원으로 구성된 데브그루를 투입했고, 미국 수뇌부가 실시간으로 ‘제로니모’ 작전을 지켜보는 가운데 빈 라덴 저택 습격이 이뤄졌다.

자택 진입 20분만에 오사마 빈 라덴은 총격에 사망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대국민 발표를 통해 “총격 중 빈 라덴이 사망했다. 시신을 확보했다”라며 ‘테러와의 전쟁’ 선포 9년만에 이뤄진 미국의 복수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9·11 테러의 후유증은 길었다. 미국 사회에서 외국인, 이슬람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만든 것. 봉태규는 “빈 라덴의 신념이 결국 아랍권의 사람과 이슬람교도에게 악영향을 끼쳤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이게 가장 나쁜 일 같다”라고 말했다.

gag11@sportsseoul.com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