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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cm의 턱, 10cm의 틈에 갇히다[배우근의 롤리팝]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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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배우근기자]불과 1cm의 턱은 거대한 벽이고, 고작 10cm의 틈은 빙하의 크레바스와 같다. 우리나라에서 휠체어를 타는 건 도전 그 자체다. 아이의 유모차를 끈 경험치는 휠체어에 적용되지 않는다.

수동 휠체어를 타고 5호선 올림픽공원역에서 4호선 혜화역까지 이동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출입기자이며 휠체어를 타게 된 장모를 모시는 상황에서 체험해 봤다. 대한장애인체육회 박혜은 부장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출발했다.

올림픽공원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승강장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창 너머 박 부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엄지를 치켜세우며 천천히 하강했다.
승강장까지 금세 도착했다. 그런데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는데 멈칫했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검은 공간. 10cm가 조금 넘어보이는 틈이 보였다. 지하철과 승강장의 충돌을 막는 안전구간이겠지만, 휠체어 앞바퀴가 빠지기에 충분하다. 살짝 눈치를 본 뒤, 일어나서 휠체어를 끌어 지하철에 올라탔다.

조금전 박 부장으로부터 휠체어 앞부분을 들어올리면서 장애물을 넘는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그런 상황과 직면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어정쩡하게 올라탄 지하철 내부는 다행히 한산했다. 노약자석 옆에 자리한 뒤,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어 고정했다. 지하철 내부에서 휠체어는 배와 같았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처럼 지하철의 진동을 휠체어는 그대로 전달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출렁거리는 휠체어에 앉아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 ‘무의’를 검색해 접속했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이 자꾸만 쳐다본다. 그 눈길을 무시하며 ‘무의’에서 환승역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데 긴장한 탓일까. 4호선 환승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아닌 2호선으로 환승하는 왕십리 역에 내렸다. 다음 전철을 기다리며 왕십리역 내부를 한바퀴 돌았다. 바닥과 스크린 도어의 휠체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 승강장에 최소 2군데 이상 휠체어 승하차 구역이 있다는걸 나중에 알게 됐다. 휠체어를 타기 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곳이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승강장 크레바스에 재도전이다. 적절한 거리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앞바퀴를 들어올렸다. 여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휠체어의 양쪽 큰 바퀴를 두 손으로 빠르게 밀어야 한다. 동시에 다리의 힘을 풀고 상체는 숙였다가 순간적으로 세워야한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걸 실행하는 건 다르다. 진행하던 앞바퀴 한 쪽이 틈에 끼어버렸다. 휠체어가 휘청하며 몸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휠체어를 잡아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장애인석에 휠체어를 고정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휠체어를 타면 느껴지는 반응이 있다. 우선 휠체어가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긴장한다. 그 중엔 몸을 돌려 도와줄 태세의 사람도 있다. 무심한 사람이 많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휠체어를 의식한다.

그런데 도움을 받으면서도 참 이상한게 있다. 도와준 이들을 향해 “고맙다”는 말은 나와도, 그들과 눈을 맞추기 힘들었다. 나로 모르게 자격지심이 생겼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하차하며, 처음으로 검은 크레바스를 넘었다. 이전 실패가 떠올라 긴장했지만 성공했다. 침착하게 휠을 굴리며 앞바퀴를 들어올려 통과했다. 그런데 팔에 장애가 있거나 근육이 약한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리고 짧은 시간 휠체어를 타면서도 사람이 구분 됐다. 휠체어는 지하철 이동시 엘리베이터를 필수적으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때 두 종류의 사람을 마주했다. 자신의 몸도 불편한데 휠체어 장애인부터 배려하는 교통약자가 있는 반면, 사지가 멀쩡한데 자기부터 냉큼 승강기에 오르는 얌체족이 있다.

장애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부족으로 인해, 마음 한켠이 시린 경험도 했다. 조금 붐비는 야외 엘리베이터였는데, 먼저 탑승한 이들이 살짝 물러나면 휠체어가 들어갈만 했다. 그래서 탑승을 시도하는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날도 더워 짜증이 확 몰려왔다. 발을 문 사이로 집어넣어 엘리베이터를 멈춰세웠다. 그러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다음 엘리베이터 타라”며 나를 타박했다. “같이 타고 내려가자”고 외쳤지만 단 한사람도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탑승했다. 마음속에서 “휠체어 우선이다. 팔다리 멀쩡한 사람은 타지마라”는 목소리가 요동쳤다.
짧지만 길었던 지하철 탑승 도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여름햇볕이 뜨겁다. 바퀴를 얼마 굴리지 않았는데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문제는 작렬하는 태양보다 도로의 턱이다. 고작 1cm에 불과한 턱에 휠체어 앞바퀴가 ‘쿵’하고 걸린다. 내 몸은 그때마다 앞으로 무너졌다. 1cm 높이의 턱이 휠체어에 전달하는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아이도 말을 못했을 뿐이지 턱을 지날때마다 그 충격이 상당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장모님의 휠체어를 끌 때 ‘작은 턱이라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제 거의 목적지다. 하지만 휠체어 초보인 나는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 전진할 수 있었다. 턱의 공격엔 조금씩 익숙해졌는데 중력이 작용하는 경사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두 세 걸음에 불과한 오르막이 휠체어를 바닥에 묶었다. 비장애인으로 보행시 짧은 오르막은 신경조차 안썼다. 하지만 휠체어에서 맞닥뜨린 세상은 달랐다. 경사로 뿐만이 아니었다. 인도 곳곳에 산재한 틈은 특히 위험했다. 그곳에 바퀴가 끼면 휠체어가 아예 꼼짝도 못했다.

그때마다 누군가 나타나 나를 구했는데, 감정이 복잡하게 엉켰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휠체어를 잡아주고 끌어주는 손길은 고마웠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냉정한 도시의 얼굴과 교차했다. 이전에 비해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이들에게, 빛나는 도시환경은 여전히 불편하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25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수치와 비율에 비해 장애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 더불어 살아가는데 유령처럼 존재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장애인식 개선으로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위더피프틴(#WeThe15)’과 장애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가능한 ‘유니버설디자인’의 적용이다.

이 두 가지 기조가 우리 사회전반에 뿌리 내린다면, 1cm의 벽과 10cm의 크레바스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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