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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의 시선 #챕터원, 하이츠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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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를 떠나 자신만의 함량 높은 취향이 완성된 사람에게 트렌드를 물으면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찾아가서 다짜고짜 물었다. 네 팀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유행의 흐름과 취향을 견고하게 다지는 일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모든 일은 취향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챕터원 대표 김가언은 패션 VMD였다. 하지만 그의 취향은 공간 연출과 아름다운 물성의 것들에 치우쳤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취향을 따르기로 결심한 뒤 단 2개월 만에 챕터원을 만들었다.

공간에 대한 인상은 시각과 향이 좌우한다. 챕터원 에디트의 문을 열면 나무와 이끼 내음이 진하게 풍기고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향기를 좋아한다는 김가언의 말이 언뜻 스쳤다. “향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어요. 챕터원 에디트 공간을 공사할 때 시멘트 냄새가 심한 거예요. 그래서 이를 없애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향을 개발하고자 레필로그 향수를 개발했어요.” 삶을 이루는 의식주를 제안하는 라이프 리빙 숍 챕터원의 시작점은 어딜까. “9년 전 지친 상태로 향한 뉴욕은 활기로 가득했어요. 브루클린의 아티스트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걸 하며 살았죠. 뉴욕에서 맞이한 풍경은 큰 영감을 주었어요. 해외 편집숍의 연출법에 관심이 컸던 터라 직접 편집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국 후 2개월 만에 오로지 나의 취향을 파는 곳인 챕터원이 들어설 곳을 계약했고, 순식간에 해외 제품 바잉을 시작했어요.”
챕터원은 초기와 달리 최근엔 독특한 자연물에서 영감받은 구세나 작가의 도예 작품, 세라믹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와 결합하여 오브제를 빚는 정지숙 작가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선보인다. 김가언은 지속가능성과 창작 과정의 가치를 느꼈고 그 가치를 국내에서 찾았다. “국내 작가나 디자이너가 물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해요. 금속과 점토를 합성하거나 아크릴에 레진을 결합하기도 하죠. 아름다운 결과물은 물론, 생각지 못한 시도를 하는 과정이 돋보였고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어요. 한국 작가나 디자이너를 육성하거나 협업해 해외로 뻗어나가도록 돕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가언의 대답은 오브제 편집숍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한 질문과 일맥상통했다. “작가의 오브제를 한데 모아 판매하는 매장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에요. 작가는 광범위한 단어예요. 제품, 가구, 편집, 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뉜 가운데, 많은 디자이너가 설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하지만 국내 디자이너들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인 갤러리나 편집숍이 늘어난 지금, 함께 협력해 디자인 신의 발전을 도모해야 해요.”

시류를 떠나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고수하는 김가언에게 트렌드란 무엇일까. “과감함이 트렌드가 아닐까요. 챕터원만 보아도 그래요. 기존에는 단색 위주의 연출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색감을 다양하게 사용해요. 색깔을 부여하는 과감함처럼, 패션이든 가구든 색다른 시도를 벌이고 있어요. 온라인 숍도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활동이 온라인 숍과 SNS에서 이루어지지만 챕터원의 기조는 지켜져야 해요. 우리의 기조는 감각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죠.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듣는 경험은 포기하면 안 돼요. 오프라인 숍은 지속되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도 직접적인 경험의 중요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믿어요.” 뉴욕을 안 갔더라면 어땠을까 되묻는 김가언의 눈빛에선 확신이 느껴졌다.
반면,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홍대 서브컬처 신을 겪어온 두 사람은 변모한 홍대 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세대가 달라졌기 때문이죠. 2000년대 초반부터 홍대에 있던 우리에게는 큰 변화로 다가오지만, 지금 젊은 친구들은 바뀐 홍대에서 잘 놀고 있어요. 하지만 사라지는 스트리트 편집숍이 많다는 사실은 안타까워요. 서교동에 위치한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홍대 스케이트 숍은 이미 사라졌고, 이 밖의 편집숍들도 대형 기업 소속이 되거나, 사라지거나 하거든요. 이렇듯 지금 편집숍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맞이해버렸죠.” 한재훈이 말했다.

매일 새로운 정보가 생겨나고 하루아침에 이슈가 바뀌는 세상에서 트렌드란 무엇일까.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점차 개인화되어가요. 그러면서 트렌드도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듯해요. 그러니까 작은 트렌드가 발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알고리즘만 봐도 그렇죠. 알고리즘을 따라 추천받고, 관심 없으면 아예 경험하지 못해요. 그러니 지금은 자신만의 트렌드를 가진 시대인 거죠. 미디어의 세분화와 발달로 예전에 비해 서브컬처가 더 빠르게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성향에 맞춰 미디어가 제각각 발달해 저마다의 서브컬처가 더 크고 강하게 자생하고 세분화될 수 있을 거예요.”
한재훈의 말에 김기범도 보탰다. “지금 트렌드는 정의되기 힘들지 않을까요. 우물 안 생각일 수도 있지만,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 아닐까요. 하이츠 스토어의 데이터만 보아도 그래요. 소비자는 특정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꽂히는 걸 구매해요. 그래서 트렌드를 읽기 힘들죠.” 더 많은 브랜드를 들여오고 편집숍의 규모가 커질수록 고민은 따르기 마련이다. 현재 하이츠 스토어가 겪는 고민은 뭘까. “오프라인 매장은 아주 한정적이에요. 브랜드를 고를 때는 가치관과 콘셉트에 끌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린 하이츠 스토어로 들여오기 위해 브랜드의 성격을 찾아보지만, 고객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저 제품에 끌려 구매하기 때문이죠. 온라인은 한계가 없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 그 가치를 보여주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에요.” 김기범이 말했다.

2022년 08월호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안승현, 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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