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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수 플래그십・광교 앨리웨이 식물을 큐레이션 한 '수무'의 공간
리빙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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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를 압도하지만 그럼에도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안식을 주는 존재. 수무는 자연과 인간이 가까워지는 방법을 고민하는 식물 콘텐츠 그룹으로 성장 중이다.

넓은 라운지 공간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배치했다.
사람을 어루만지는 식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있는 커다란 전시장에 녹음이 드리웠다. 나뭇가지가 쪼개지는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도시에서 한 발짝 벗어나야만 들을 수 있는 숲속의 소란이 전시장에 잔잔히 울려퍼졌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과 마당에 타오르는 작은 불꽃으로 불멍을 할 수 있는 영상 전시 또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토록 생경하고도 놀라운 경험으로 가득했던 이 전시를 찾은 이는 2만명. 기획자는 식물 큐레이션 그룹 수무(SUMU)다. “70년 된 귀틀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팬데믹을 겪으며 이게 자연이 던지는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자연과 우리의 일상이 지속될 수 있는 연결 지점을 찾기 위해 그래픽, 음악, 영상 작가와 협업했죠.” 수무의 수장 장은석 대표가 말했다. 설화수 플래그십스토어 도산의 금빛 파사드와 조화를 이루는 실내 식물들, 광교 앨리웨이를 수놓은 수풀까지 수무는 전국 곳곳의 명소라 불리는 상공간의 식물 큐레이션으로 유명하다.
수무의 장은석 대표.
자연과 가장 닮은 작업을 선보인다고 알려진 그룹 수무. 사무실 한쪽의 장식마저 비정형의 자연을 담고 있다.
Q 강남 한복판에서 이렇게 고즈넉한 주택을 만나니 정말 신기하네요. 참 좋은 사무실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계약을 하려고 본 곳은 아니었어요. 부동산에 이런 매물이 나왔다기에 구경이나 해보자 하고 대문을 열었는데,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마음을 굳혔어요. 이곳을 사무실 겸 쇼룸 겸 행사용 장소로 쓰려고 했는데 바로 팬데믹이 닥쳤죠. 덕분에 이 공간이 주는 미감을 충분히 느꼈지만, 외부에 공개할 기회가 없어서 마음이 쓰렸습니다(웃음).

Q 조경 산업도 팬데믹 때문에 큰 피해를 봤을 것 같아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초반에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수무는 개인 공간의 조경보다는 상공간의 조경 작업을 주로 맡아왔는데, 상공간들이 운영을 멈추니 저희도 일이 많지 않았죠.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19 때가 되고, 사람들이 답답한 마음을 식물로 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 저희도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Q 어떤 프로젝트들이 유의미한 성장이었나고 보나요?
대표적으로는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동탄점의 보이드 공간을 꾸민 것, 그리고 도산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의 조경을 담당하게 된 거요. 단순히 조경을 담당하는 게 아니라, 실내외관에 대한 조종타를 전부 저희가 쥘 수 있었기 때문에 성장이라고 봐요. 식물과 어우러지는 인터렉션 미디어 아트, 인테리어, 전시 공간들을 모두 기획했거든요.
Q 아직 국내에선 조경가가 미디어 아트, 음악가 등과 이렇게 긴밀히 연계하는 일은 흔치 않죠. 어떤 계기로 이런 협업들에 익숙해지게 된 건가요?아마도 저의 개인적 성향 때문일 거예요. 저는 20대에 <엘리펀트슈>라는 독립 매거진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었어요. <엘리펀트슈>는 국내 인디 신의 음악을 다루는 매거진이었는데요. 잡지를 만들며 사진가와 일을 한 경험이 도움이 됐고, 국내외 뮤지션들의 참신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영상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어요.
Q 당시의 <엘리펀트슈>가 기억나요. 인디 뮤지션들을 다루는 매거진이 없던 시절이니 단단한 팬층이 있던 잡지였잖아요. 그렇게 기억해주는 독자들이 있다면 고마울 것 같아요. 좋아서, 열정으로 행복하게 만든 매거진이지만, 자본이 부족하니 내부적 어려움도 많았어요. 잡지를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에디터, 편집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항상 모든 이들에게 제값을 주고 일을 맡길 수 없어서 제가 이것저것 조금씩 했어요. 어떤 달엔 사진을 찍으러 인터뷰 현장에 갔고, 또 어떤 달엔 페이지를 디자인하고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리노베이션한 수무의 작업 공간. 중앙에 배치한 라운지는 수무 식구들의 회의 공간이자 일상의 대화와 휴식이 있는 공간이다.
Q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던 이가 조경 그룹의 수장이 된 점이 흥미로워요. 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잡지 사업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접게 됐어요(웃음).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의 제겐 아주 힘든 일이었죠. 당장 생활비를 줄여야 하기도 했고, 세상과도 잠시 떨어져 있고 싶었죠. 그래서 TV, 케이블, 유선전화도 다 끊고 친구들도 안 만났어요. 그때 저는 고양이와 식물만 데리고 집에 있었어요. 어느새 식물이 점점 늘어나더군요. 당시의 저는 식물로부터 위로 비슷한 것을 받았던 것 같아요.
Q 식물로부터 받았던 위로를 다시 세상에 전하고 싶어서 수무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식물이 주는 위로’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당시의 감정은 분명히 전하고 싶었어요. 내가 식물을, 식물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기분이요. 사실 이런 아름다운 이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식물은 혼자서도 밥벌이를 능히 해낼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이었어요.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잡지를 만들며 나만의 ‘스페셜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저의 경우엔 그게 식물이었던 거죠.
Q ‘수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지녔나요?
외국어 같은 느낌이 들지만 ‘편안하게 어루만져 달래다’라는 의미의 고어예요. 기억하기도 쉽고 대개 여성적 이미지를 그리기 쉬운 다른 식물 숍과 차별성을 둘 중성적 이미지를 지닌 단어라고 생각해서 수무라고 지었어요. 수무가 추구하는 식물의 비주얼과도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수무는 작은 화분보다는 자연이 가진 야생적 아름다움에 착안한 작업을 많이 해요. 클라이언트와 논의해 여러 부분을 조율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너무 예쁜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에 초점을 둬요. 가장 완벽한 조경은 가장 완벽한 혼돈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잭슨 폴록의 추상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요.
음악 애호가인 장은석 대표의 취향에 따라 LP가 층층이 꽂힌 서가와 주변의 녹음이 조화를 이룬다.
Q 수무도 처음부터 지금 같은 프로젝트를 맡는 브랜드는 아니었겠죠?
물론이죠.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밥벌이였어요. 시작은 청담동에 있는 작은 식물 가게였어요.
Q 시작을 청담동에서 했다면 꽤 호화로운 거 아닌가요?
왜 그런 가격에 청담동에 들어갈 수 있나, 했더니 주차장 안에 있는 후미진 자리였어요(웃음). 누군가 찾아와 식물을 사려고 할 수도 없었고, 우리에게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도 거의 없던 때이니 1년 정도 고생을 했죠. 할 일이 별로 없으니, 저에게 익숙했던 걸 만들기 시작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제가 작업한 식물을 찍고, 영상도 촬영해보고, 그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Q 그동안에 콘텐츠를 만들었던 거네요.
맞아요. 그땐 그 힘을 모르고 좋아서 만들었어요. 식물이 좋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좋고, 시간은 많았으니까요(웃음). 그게 차곡차곡 쌓였던 시점에, 우연히 현대백화점에서 하는 작은 마켓에 나가게 됐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있으니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많았고, 이때다 싶어서 인스타그램 시딩을 했어요.
Q 인스타그램 광고요?
네. 50만원. 당시 저한테는 굉장히 큰 돈이었고요. 백화점 지하에서 밥 먹던 사람들이 광고를 보고 ‘여기 가보자’고 해서 들렀고, 근처에 있던 광고주가 광고를 보고 백화점에 들렀다가 또 우릴 봤죠. 일주일 사이에 프로젝트 10개가 들어왔어요. 새벽마다 농장에서 싣고 온 식물을 소형 차에 가득 싣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생활이 시작됐고, 그게 수무의 성장점이 된 거죠. 저는 그때 수무의 스페셜티는 단지 식물이 아니라, 식물로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Q 수무는 계속 식물 콘텐츠를 만드는 그룹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경험적 콘텐츠를 만드는 그룹으로 자리 잡으려고요. 사업적 수완과는 별개로, 식물의 정서적 효용 가치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믿어요. 실패했던 사람을 다시 한번 도전하게 하고,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을 느끼게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그걸 느끼게 하려면 다양한 테크니션, 아티스트와 협업해야 한다고 봐요. 음악 잡지를 하면서, 공연 기획도 경험해봤어요. 기획자만의 취향으로 공연을 만들면 밴드 멤버가 12명인데 관객은 서너 명일 때도 있더군요. 잘못한 거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조경 그룹인 수무가 조형, 미디어 매핑, 전시 같은 것들에 지속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겁니다.
Q 콘텐츠 그룹이 아닌 조경 그룹으로서의 수무는요?
음…. 얼마 전 일산호 수공원 장미꽃축제에 갔었어요. 하트 모양, 별 모양으로 장미꽃이 흐드러지는 조경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그날은 그걸 보고 정말 환하게 웃으시던 우리 어머니 또래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어요. 조경의 본질은 그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있고, 야성적이고, 고급스런 감각을 뽐내는 작업도 좋은데요. 꽃을 보면서 저런 웃음을 자아내도록 할 수 있다면, 그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너무 있어 보이려 하지 말고요.
라운지 공간과 마주 보는 작은 주방은 높은 층고를 따라 흘러내리는 조명과 어우러져 개방감을 선사한다.
Editor 박민정
Photographer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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