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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했기에 불운했던 남자, '폰 노이만'을 아시나요?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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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헝가리에서 태어난 소년은 여섯 살 때부터 여덟 자리 숫자(1천만 단위)의 곱셈을 능숙하게 했다. 천재로서 소문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재 교육을 받았고, 나중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경제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게임이론'을 만들어냈다. 프로그램이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 '에드박'(EDVAC)을 만들고 인공지능의 개념을 확립해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는 명성도 얻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의 실제 모델이자 지난 세기의 비범한 수학자, 폰 노이만(1903~1957) 얘기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웅진지식하우스)은 노이만의 삶과 과학적 업적을 추적한 책이다. 과학 전문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난요 바타차리야가 그의 삶과 20세기의 복잡다단한 과학사를 집대성했다.
유년시절의 노이만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책은 한 인물의 발자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부유한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난 노이만은 어린 시절부터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저명한 수학 교수들이 방문 교사로서 그를 가르쳤다. 집안에도 당대를 주름답던 수많은 인사들이 드나들며 어린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부친은 도서관에 있는 책을 통째로 샀고, 노이만은 책더미 속에서 유년을 보냈다.

청년기에 독일 유학을 떠난 그는 수학의 수많은 난제에 도전해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특히 양자역학의 두 축이었던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서 공통 분모를 처음으로 발견하며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다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3년부터 1957년 사망할 때까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탁월한 지성들과 교류를 나눴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수학자 쿠르트 괴델 같은 인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물리학, 경제학, 생물학, 컴퓨터 공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여러 분야를 개척했다.
중년의 노이만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그는 생각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증의 사고 중독자" "오직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인 사람"이었다. "무질서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질서와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열망"을 가진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수학적 논리 문제로 변환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운동을 극도로 싫어했고, 악기 연주 실력도 형편없었다. 체스 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법을 개발했지만 정작 자신의 체스 실력은 중급 이상을 넘지 못했다. 운전을 좋아했지만, 잦은 차 사고로 1년에 한 번씩은 차를 바꿔야 했다.
초기의 컴퓨터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여러 학문을 건드리다 보니 깊이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말년에 이르자 수학자들은 그를 더 이상 수학자로 취급하지 않았고, 물리학자들도 그가 단 한 순간도 진정한 물리학자인 적이 없었다며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기존 학자들은 그를 "프로그래머"라 부르며 "고매한 학문의 전당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으로 취급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가장 공격적인 암중 하나인 골육종(뼈암)에 걸렸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두려움 속에 시름시름 앓다가 학자로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50대 초반에 생을 마무리했다.

미국 수리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이만의 관심사가 순수수학에서 물리학과 경제학, 그리고 공학으로 옮겨가면서 사고의 깊이가 점차 얕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의 중요성은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

책은 양자역학이나 수학의 증명 과정 등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박병철 옮김. 576쪽.
책 표지 이미지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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