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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울로 게임기자는 부산으로, 막내 지스타 출장기
게임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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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억을 되새기자면, 우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사람들이 흐르는 대로 밀려났으며, 호흡도 곤란했다. 시연하고픈 기대작도 없었다. 당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렸던 부스는 ‘에어(엘리온)’였고, ‘커츠펠’ 등 다른 게임들도 있었으나 전부 관심사 밖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오랜 서있음으로 아팠던 다리, 스타크래프트 ‘홍구’ 임홍규 선수가 선보인 발로 마우스 조작하는 진기명기, 비교적 재미있던 인디게임 등이었다.
좋지 못한 첫 경험을 했던 만큼 이번 지스타는 기대와 설렘 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출장 일정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였고, 수많은 기사와 취재 일정을 사전 기획하고 간 만큼 압박감이 느껴졌다. 일이 바쁘니 게임 시연은 못 할 것 같았고, 넘쳐나는 사람에 또 다시 치일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국 출장 전날까지도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두렵고 무거웠던 지스타 업무 시작
지스타 행사에 향하기 전 모든 선배들이 강조한 사항이 있다. 바로 ‘거대한 캐리어를 가지고 오라’는 것. 집에 있던 가방 중 가장 큰 것을 챙기고 나니 이것을 들고 서울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택시에는 도저히 들어가지 않을 크기였고, 고속버스는 기사님이 화를 낼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자니 출근시간 신분당선에 저것을 들고 탈 용기는 부족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고, 적은 인파를 뚫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선배 기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거대한 캐리어를 들고 온 만큼 멀리서도 식별이 쉬웠다. 이후 KTX 열차에 탑승해 3시간 만에 부산역에 도달했다.
부산역에 도착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원래도 기사 쓰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데 과연 취재와 기사 작성을 동시에 할 수 있을지, 인터뷰를 하고 고작 1시간 남는데 그 안에 기사를 올릴 수 있을지, 잔 실수가 많은데 어떻게 줄일지, 사람 많은데 숨은 쉴 수 있을지... 수많은 걱정이 마음을 짓눌렀다. 커다란 짐 역시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P의 거짓이 게임 대상 6관왕을 수상하는 장면을 취재한 뒤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자, 늦은 밤이었다. 내일 업무를 걱정하며 침대에 몸을 뉘였고, 다음날 본격적인 지스타 취재 일정이 시작됐다.
다음 날, 지스타 개막과 함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우선 강연을 들었고, 이후 맡은 기사를 작성했다. 사실 짧은 기사를 하나 더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함께 듣던 팀장님께서 대신 기사를 작성하셨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첫째 날부터 화려한 트롤쇼를 선보였지만, 아직 취재 기간은 남아있었고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지스타 이틀차엔 인터뷰 기사와 게임 체험 리뷰를 작성했다. 본인에게는 비교적 바쁜 일정이었지만, 옆에서 한 번에 기사를 다섯 개씩 뽑아내는 수석 기자님의 모습을 보니 ‘힘들다’의 힘자도 뱉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인터뷰 장소를 몰라 생각 없이 부스로 향하는 바람에 뛰어다니는 등 좌충우돌 난리를 치기도 했다. 그래도 프레스룸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30분 안에 기사를 마감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고작 3일 만에 기사 두 개를 날려먹고 자잘한 실수를 남발하는 화려한 신입쇼를 펼치고 나서야 취재 일정이 끝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소한 작성한 기사에서는 실수가 적었다는 점이 아닐까? 엉망진창 업무 처리였지만,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듯 싶다.
매우 바빴고 자잘한 사고도 많이 쳤지만, 그럼에도 지스타 일정이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곳을 돌아봐도 게임과 관련된 것이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힘을 줬다. 평소 장기 복용하던 에너지 음료도 끊고,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저녁까지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특히 지스타 첫 방문 때와는 달리 굉장히 많은 게임을 시연할 수 있었다. 테르비스, 명조: 워더링 웨이브, 인조이(관람), 레전드 오브 이미르 등을 플레이했다. 모두 평소에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게임이었고, 시연은 만족스러웠다. 편안한 집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플레이하는 것과 달리 쫓기는 시간 동안 압축해서 게임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무엇보다도 행복했던 시연은 인디 쇼케이스였다. 평소에도 인디게임 신작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하게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한다. 인디게임은 완성도 보다는 풋풋한 열정과 낭만 넘치는 개발이 특징이다. 그런 만큼 게임을 설명해주는 개발자 분들은 친절하면서도 열정이 넘쳤고, 그 광경을 보며 본 기자 또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일부 인디게임은 콘셉트가 매우 독특하거나 완성도에 귀여운 캐릭터까지 챙겨 한국 게임업계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부산 하면 역시 음식을 빼 놓을 수 없다. 평소 소식을 지향하지만 힘든 일을 할 때는 예외, 매일 저녁마다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입에 넣었다. 첫 날 도착하며 부산의 명물 피자를 먹었고, 둘째 날은 낙곱새를 맛있게 해치웠다. 특히 낙곱새는 역시 서울에서 먹는 것 보다 부산이 더 맛있었다. 물론 시장이 약이었을 수도 있지만.
세 번째 날은 '부산에 왔으면 회를 먹어야지'라며 다찌식 식당에서 모둠회와 다양한 해산물을 먹었다. 특히 개불, 멍게, 관자 등 신선하고 귀한 식재료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네 번째 날은 모든 업무를 마무리지은 기념으로 숙소 옆 중국집에서 요리를 먹고 2차를 가기로 했다. 사실 큰 기대 안 하고 방문했던 중국집이었는데 왠걸, 만두와 짬뽕탕, 탕수육, 깐풍새우를 주문했는데 너무나 풍성하고 맛있게 나왔다. 덕분에 2차부터는 안주 보다는 술을 더 많이 먹었다.
네 번째 날 밤에는 술도 많이 먹고 보드게임도 즐겼다. 처음에는 홀덤 방식의 카드 게임을, 이후에는 원카드를 했다. 술을 마셔서인지, 회사 동료들과 함께여서인지, 일이 모두 끝나서 인지 몹시 재미있었다. 다만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체력마저 바닥난 나머지 결국 침대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 수육 세트와 국밥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이로서 부산에 오면 먹어야 하는 낙곱새, 회, 국밥을 모두 먹었으니 식사만큼은 확실하게 챙긴 셈이다. 어라, 일보다 밥을 더 잘 처리했나?
그렇게 지스타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닷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눈도 아프고, 기침도 하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특히 12시간 후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자기 충족감도 느꼈던 출장이었다. 특히 지스타에서 다양한 게임을 경험하고 글로 남기는 것은 굉장히 보람있었다. 과거 지스타 첫 경험에서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임을 시연하지도 못했고, 경험담을 쓰거나 들려주지도 못한 만큼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이번 출장에서는 강연을 정리하고, 인터뷰를 알리고, 게임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다. 지스타에서 외부인이나 관객이 아닌 어엿한 관계자가 된 느낌이었고, 이는 큰 충족감을 선사했다.
또한 다양한 실수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2시간 내에 기사를 완성하는 방법, 서두를 재빨리 작성하는 방법, 길을 잃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 녹음기를 활용하는 방법 등 무엇보다 속도에 대한 배움이 컸다. 평소 기사 작성에 한 세월이 걸렸는데, 이번 지스타에서는 ‘어떻게든 된다’ 정신을 얻어올 수 있었다.
확실한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경험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기사를 작성하는 방식이나 능률이 다소 정체됐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 말에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라는 표현이 있다. 게임 기자에게 서울은 지스타가 아닐까?
처음은 항상 중요하다. 설렘, 간절함, 그리움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있기에 처음이 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지금 기사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본인이 ‘뉴 김형종’이 될 정도로 획기적으로 변했나면, 그것은 아니다. 그래도 수 많은 처음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한 명의 훌륭한 몫을 해내는 기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