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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 심장을 저격하는 달콤살벌 캐릭터 활극
MHN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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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 속에 독약 들어있다!“

(MHN스포츠 강시언 기자)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쯤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곤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가 생긴다든지, 계란을 깼는데 노른자가 두 개 나온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듯 종종 일상을 노크하는 깜짝 이벤트들이 있기에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오늘의 주인공, 몬티 나바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 찾아온 행운은 로또 당첨이 우스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는 것이다.

1909년 런던,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청년 몬티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자신이 바로 위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것! 몬티는 부와 사랑을 얻기 위해 백작의 자리를 쟁취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자기 앞에 놓인 선순위 후계자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된다는 것이었으니… 몬티는 이 여덟 명을 제치고 백작이 될 기발하고 은밀한 작전을 세운다. 과연 몬티는 작전에 성공하고 기막힌 신분 상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내가 이 세계의 왕자님?’과 같은 레퍼토리는 요즘 들어 특히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미디어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신분 상승 판타지는 어느 날 눈 떠 보니 재벌 집의 막내아들이 되어버린 몬티 나바로의 처지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의 가장 강렬한 소망과 욕망이 여기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빛나는 상류층의 세계,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가 한 순간 마법처럼 내 손에 쥐어지는 이야기야말로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판타지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몬티 나바로가 현실을 원망하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이상만 꿈꾸는 염치없는 인간인가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이다. 몬티는 가난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열정과 능력을 모두 가진 인재다. 하지만 낮은 신분의 몬티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극한의 노동 강도를 자랑하는 것들뿐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손에 남는 것은 없는 매정한 현실에다 돈 많은 남자에게 가겠다는 연인을 붙잡지 못하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까지… 신분 상승의 벽은 높디높았고, 그는 끊임없이 좌절한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딱 8명만 죽이면 원하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던 몬티는 기꺼이 손을 들어 살인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엄연한 신분의 벽, 그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문제는 1909년이나 2024년이나 마찬가지이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이하 젠틀맨스 가이드)‘는 이런 잔인한 현실을 블랙코미디 특유의 시선으로 유쾌하게 담아낸다. 한 가문에서 줄줄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무시무시한 사건도 가볍게 웃고 즐기면서 볼 수 있게 하는 장르적 감성은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마냥 웃기다가도 한 번씩 날카롭게 비수를 꽂는 풍자적 태도 역시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 무게감을 덜어낸 작품의 낙관적 시선은 적나라한 사회적 문제를 비춤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두렵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젠틀맨스 가이드’의 가장 큰 매력이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작품을 채우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들의 활약이다. 특히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들을 모두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역의 경우 무려 1인 9역을 연기하며 엄청난 캐릭터 변신을 선보인다. 각기 다른 목소리, 동작과 특징, 의상, 대사들로 무장한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선보이는 독특한 구성에 감탄과 환호가 절로 터져나왔다. 퇴장한지 10초만에 또 다른 인물이 되어 뻔뻔하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다이스퀴스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 매력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1인 다역의 특성상 다이스퀴스 캐릭터의 임팩트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기는 하나, 다른 인물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천진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 청년 몬티, 불타오르는 욕망과 사랑의 화신 시벨라, 소녀처럼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진 피비 등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통통 튀며 코트를 오가는 탁구공처럼 치열하게 설전을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고 생생하다. ’젠틀맨스 가이드‘의 무대는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모습들로 가득하다.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면면 또한 두말할 필요 없이 뛰어나다. 특히 다이스퀴스 역을 연기한 정문성 배우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1인 9역을 연기하는 정문성 배우는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순간마다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카멜레온처럼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확 끌어당긴다.

그의 탁월한 변신술과 재치 넘치는 무대 매너에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송원근 배우의 노련한 무대매너와 허혜진 배우의 매혹적인 연기, 이지수 배우의 청량한 노래 또한 인상적이다. 여기에 앙상블 배우들의 빛나는 활약이 더해져 그야말로 완벽한 캐릭터 활극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는 사회 풍자적인 시선과 코미디적 요소를 재치 있게 풀어낸 유쾌한 작품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극장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이 작품의 매력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보는 내내 부담 없이 웃고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뮤지컬 초심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더운 여름, 웃음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줄 통쾌한 블랙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와 함께 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은 오는 10월 20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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