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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벽 보며 토론하게 만든 지역신문이 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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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 합숙면접 땐 자료 하나를 쓰더라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쓰게 했고 관점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나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양 기자는 충북 옥천군 지역주간지 ‘옥천신문’에 입사해 3년차 기자가 됐다. 지난달 25일 미디어오늘이 옥천에서 동행한 양 기자는 앉아있을 새 없이 하루종일 현장을 누볐다. 오전 9시 편집국 회의에서 취재 고민을 나눈 뒤 바삐 걸음을 옮겼다.
농업을 담당하는 양 기자의 이날 일정은 옥천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생태관광협) 정기총회 취재, 옥천로컬푸드 농민 인터뷰, 귀농귀촌연합회 취재다. 생태관광협은 지난 2021년 생태관광지구로 지정된 옥천읍-동이면-안내면-안남면 등 읍·면의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지난해 출범시킨 협의회다. 각 마을의 주민들은 생태관광지구를 원활히 운영해 자연을 지키고 생태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직접 생태여행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양 기자의 취재엔 옥천신문이 1989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만든 풀뿌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녹아있다. 옥천신문은 오래 기간 생태관광과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필요성을 공론화시켰고, 지금도 진행 과정을 계속 감시하고 있다. 최근엔 생태관광지구로 선정된 지역 중 일부에서 골프장 개발이 논의되고 있어 반발이 나오는 상황을 계속해 보도하고 있다.
3년 차인 양 기자가 35년의 주민자치 역사를 취재하는 건 버거울 수 있다. 이에 총 7명의 옥천신문 기자들은 단계마다 본인의 취재를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하며 촘촘하게 기사를 만들어 간다. 이현경 옥천신문 편집국장은 “신문을 같이 만든다는 절대 가치가 있다”며 “교정도 다 같이 보고 서로 기사도 봐준다. 내가 쓴 기사도 후배들이 보고 문제를 얘기해준다. 같이 만들고 같이 책임진다”고 말했다.
옥천신문 기자들 연령대는 20~30대다. 이훈, 김기연, 유일하 기자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가 지난 2019년 설립한 ‘풀뿌리저널리즘스쿨’(구 옥천저널리즘스쿨) 출신이다.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은 ‘지역’과 ‘현장’을 중심으로 한 예비 언론인 성장을 추구한다. 인턴들은 자유롭게 현장을 취재하며 충북 영동군 지역주간지 주간영동(구 청산별곡, 발행인 황민호)의 실제 기자로 일한다.
2021년 입사한 이훈 기자는 “인턴 때나 지금이나 옥천신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문턱이 낮은 신문이기 때문”이라고했다. 그는 “황민호 대표는 늘 저널리즘스쿨 기자들에게 ‘평범한 사람이 신문에 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지금도 우리는 성별 나이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주민을 신문에 싣기 위해 노력한다”며 “중앙 언론사 인턴 기자는 평기자를 보조하거나 보도자료를 쓰는데, 저널리즘스쿨에선 기자들이 현장에서 뛰어놀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중앙 언론사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가치관들이 여기 와서 다 뒤집어졌다”고 했다.
옥천신문에선 새로운 ‘주민’을 만나면 특종이다. 이훈 기자는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발굴할 때 가장 신나한다”며 “기자들은 ‘여지껏 등장하지 않는 주민이 있었네, 인터뷰해야겠다’라며 특종을 발견한 것처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입사한 유일하 기자도 수도권 출신이다. 유 기자는 “지역소멸 등의 단어가 전국지에도 있지만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안 보였는데, 저널리즘스쿨은 같이 고민하고 목소리 내는 곳이었다”며 “지역 현장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기사를 쓰며 지역언론에 매료됐다. 취재 제한이 없어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하는 등 관심 분야인 과거사를 3개월 간 조명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협업은 독자들의 높은 기사 수용력 덕분이기도 하다. 30대 젊은 나이에 4년째 편집국장을 맡고 있는 이현경 국장의 가장 큰 부담감도 독자들 수준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 국장은 “가장 저연차 기자가 7개월 차인데 옥천신문 독자 중에는 35년 구력을 가진 독자도 있다. 그만큼 주민들의 자치 수준이 높다. 편집국이 35년 동안 신문을 본 독자의 눈높이를 잘 따라가고 있느냐는 우려가 편집국장으로서 늘 있다”고 말했다.
옥천신문 기자는 옥천에 살아야 한다
옥천신문 기자가 되려면 꼭 옥천에 살아야 한다. 옥천 청산면이 고향인 김기연 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기자는 모두 타 지역 출신이지만 현재 옥천에 살고 있다. 이 방침을 만든 황 대표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선배들은 다 대전에서 출근하고 나만 옥천에 살았다”며 “내가 부대끼며 살아야 내 지역이 된다. 대상화하지 않고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 모두가 옥천에서 생활하다보니 옥천 현안은 ‘내 일’이 된다. 양수철 기자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작물 피해 현황을 추적해 쌀, 배추 등 작물별로 나눠 연속보도하고 있다. 직접 현장에 다녀 농민들을 만나보니 상황은 더 처참했고 작물별로 농작물 피해 상황과 필요한 대책도 달랐다. 기후위기로 인해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가격이 오른다는 차원의 보도가 아닌, 농민들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일상에서 피해 현장을 봤기에 가능했던 차별성이다. 지원책도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옥천신문 유료부수는 2500부다. 월 1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온라인 기사와 지면을 받아볼 수 있다. 경영은 평균 ‘구독료4:광고료4:기타사업2’ 비율로, 대체로 특별한 사업 없이 기사와 구독에 의존해 35년째 어렵다. 하지만 옥천신문의 영향력은 2500부를 넘어선다. 주민들끼리 수시로 기사를 공유하고 일상적으로 토론하며 4만8000여 명(9월 기준)의 옥천군 주민들에게 퍼지기 때문이다.
읍내 식당 ‘투다리’를 운영하며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20대 김종규씨는 축구하는 주민들이 옥천신문에 등장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옥천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데 본인이 나온 지면을 받고 싶어 투다리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어릴 때 대전으로 이사를 갔던 김씨는 20살 이후 옥천에 다시 돌아왔는데, 지역민들은 그에게 ‘적응하려면 옥천신문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김씨는 매주 옥천신문을 한 시간 동안 끝까지 읽는다. 김씨는 ‘내가 나오고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옥천신문을 본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신문에 담길 수 있어야 한다
신문 안 읽는 시대, 뉴스 안 보는 시대라고 하지만 옥천 주민들 삶의 중심엔 신문이 있다. 주민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신문을 일상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옥천신문 온라인 홈페이지 ‘여론광장’ 탭에는 매일 주민들 글이 넘쳐난다. 2017년엔 익명의 옥천고 학생이 학교 체육대회 ‘여장남자’ 행사와 이 행사에서 학생을 성희롱한 교감선생님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교내 색출이 시작되고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협박이 이어지자, 또다른 학생은 실명을 밝히며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글을 쓰며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고 있지만 나는 내 목소리를 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해당 교감은 전출됐다.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21년 개국한 옥천FM공동체라디오는 청소년들과 개국부터 교류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학교 3학년부터 옥천FM에서 활동하다가 고등학교에서 방송부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자 청소년들이 직접 옥천FM에 도움을 요청해 옥천FM과 선생님들의 논의로 방송부가 활성화된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은 직접 ‘이주의 옥천신문’ 기사를 선정하는 기준도 정했는데 ‘옥천, 우리 삶과 관련된 기사인가’ ‘문제점을 얼마나 잘 지적하고 해결책까지 있는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는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기사인가’ ‘사회에 필요한 주제를 던지고 있는가’ 등이다. 이현경 국장은 “주 독자층이 50~60대 남성이었던 옥천신문 독자층의 연령의 폭을 넓혔고, 청소년 시각에서 바라보는 주요 기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계기도 됐다”며 “청소년 피드백을 받으니 동기부여도 된다”고 했다.
이해수 국장은 “청소년들은 본인의 이름으로 옥천신문을 구독한다”며 “그렇게 구독한 신문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생각한 걸 정리해서 또 다른 청취자들에게 전하는 활동까지 이어지니까 본인이 공론장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동체 라디오는 주민이 직접 주체가 되고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한다”며 “지역의 미래 세대들이 지역과도 연결될 수 있어 공동체 라디오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5시 옥천신문 사무실에서 만난 72세 김화숙씨는 “힘들어도 여럿이 해서 재밌다. 우리가 이렇게 해내야지 배부가 된다”며 “우리가 이걸 해서 서울이고 부산이고 옥천 소식을 전한다는 게 얼마나 좋나”라고 말했다. “용돈도 벌고 이런 자리가 있어서 얼마나 좋나. 주어진 분야에사 사명감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이 자리에 앉아있지”라던 77세 한종순씨의 말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