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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되는 성별 갈등,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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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갈등이 격화되며 '이대남', '이대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각 성별이 정치적으로 세력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청년 남녀 간 갈등을 공간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25년 간 청년 남성과 여성의 인구중심점(center of population)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비교해 보았다. 인구중심점이란 우리나라 국토를 저울로 상상하고 모든 사람이 같은 무게를 가진다고 가정할 때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균적인 위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인구의 분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이를 계산하고 발표하고 있다.
이번 분석에서는 인구중심점을 활용해 청년 남성과 여성의 공간적 차이를 살펴보았다. 1998년부터 2023년까지 연도별 시군구 단위의 주민등록연앙인구 자료를 활용해서 등록된 주거지를 기준으로 연령별, 성별 인구중심점의 이동 궤적을 계산했다. 청년세대는 2020년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따라 만 19세에서 34세 사이의 인구로 정의했다.
청년세대의 수도권 쏠림은 특히 더 강했다. 같은 기간 청년 남성의 인구중심점은 16.8km, 청년 여성은 20.9km로, 전체 평균보다 각각 1.4배, 1.7배 빠르게 수도권을 향해 이동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청년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다.
1998년 당시 청년 남성과 여성의 인구중심점 사이의 거리는 약 2km였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점점 늘어나 2023년에는 약 6km까지 벌어졌다. 같은 기간 전체 남녀 간 인구중심점 거리가 1km 이내로 유지된 것과 대조적이다.
유독 청년세대에서 성별 공간 격차가 두드러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대학 진학과 군 입대 등으로 인한 일시적 거주지 변화나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출생성비 불균형 등을 꼽았다. 좀 더 최근에는 지방에 청년 여성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적은 점, 가부장적 직장 문화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에 더해 남녀 간 인구중심점 사이의 거리가 주택 가격이 크게 상승한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후반에 더 가파르게 멀어진 것을 미루어볼 때, 주택 가격 상승과 혼인율 감소도 하나의 요소로 판단된다.
2013년 서울 강남구의 성비는 87.0이었고, 옹진군의 성비는 205.2였으나 2023년에는 서울 마포구의 성비가 82.5로 더 낮아지고, 옹진군의 성비는 247.0으로 더 높아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에 더해, 수도권 내부에서도 청년 남녀의 거주지가 점점 더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 격차가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소인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서로 마주칠 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지역문제와 젠더문제가 교차하며 갈등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초지역에서 청년 여성이 청년세대를 대표함에 따라 여성 친화적인 정책이 시행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청년 남성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남초지역의 일자리 대책 등은 주로 남성이 수혜자일 가능성이 높고 이에 대해 청년 여성은 불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공통의 문제의식이 누적되면서, 느슨한 사회적 그룹이었던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치적 집단화되는 토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간 격차가 앞으로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초지역에는 청년 여성이 선호하는 시설과 서비스가 더 많이 생기고, 이는 더 많은 청년 여성을 유인하는 식의 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공간적 균형을 회복하고 다양한 세대와 성별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필자 소개
박소현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국유화된 종자와 세계화된 토지: 한국 딸기 산업의 집약적 원예의 출현에 대한 분석' 연구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농촌 공간을 포함한 비핵심지역에서의 인간-환경 상호작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