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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新 마을버스 보고서⑧] 공영제, 강원의 혈관을 잇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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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아무 데나 세울 수 있는게 아닙니다. 정해진 정류장에 멈춰야 하죠.”

-‘버스 정류장(Bus Stop, 1956)’-

시사위크=박설민·김두완·정소현 기자

  마릴린 먼로 주연의 ‘버스 정류장(Bus Stop, 1956)’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미국 몬태나주 시골 마을에 사는 카우보이 ‘보’가 도시에서 온 가수 ‘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 장소는 ‘마을버스 정류장’이었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마을버스는 지금도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중한 이동수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금난과 이용객 감소 등 문제로 점차 노선이 사라지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한 마을버스들이 있다. 바로 강원도 지역의 ‘공영제 마을버스’다.

◇ 안정된 직장은 버스기사를 웃게 만든다

지난달 21일, 취재팀이 찾은 곳은 ‘문막읍행정복지센터’. 이곳은 공영제 마을버스인 ‘누리버스’의 첫차가 출발하는 곳이다. 보라색의 깔끔한 디자인의 ‘누리버스’ 기점이자 차고지인 셈이다. 평일엔 오전 7시 35분에 첫차가 시동을 켠다.

누리버스는 원주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읍면 벽지지역 마을버스다. 총 12개의 노선에서 6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다. 버스는 15인승 규모 중형버스다. 지난 2019년 5월 7일 운행을 시작했다.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으로 인한 원주시 내 시내버스 노선 감축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타 지역 마을버스와의 가장 큰 차별점은 ‘공영제’ 운영버스라는 점이다. 마을버스 운영방식은 크게 △민영제 △준공영제 △공영제 3가지로 나뉜다. 민영제는 민간업체가 노선(면허권)을 소유해 버스서비스를 공급한다. 정부 재정도 지원되지만 주 운영비 부담은 민간업체가 맡는다.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표준 운송원가에 따라 버스 운영비용을 지원하고, 버스 사업주는 노선사용권을 지자체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반면 공영제는 정부, 지자체가 마을버스 노선을 소유,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다. 주로 버스공사, 공단 등 독립 운영기구를 따로 설치해 운영한다. 민간업체 중심으로 운행되는 민영제·준공영제와 달리 국가 기관이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공영제 마을버스는 버스기사들의 직업 안정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일반 민영제 마을버스와 달리 공영제 마을버스 기사는 준공무원 신분으로 분류된다.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시, 공단에 소속돼 있어서다. 때문에 직업 안정성이 높아 버스기사들의 피로도, 업무 부담 등이 크게 감소한다.

원주시에서 누리버스를 운행하는 고욱현 버스기사도 마찬가지다. 고욱현 기사는 그간 시내버스 운행을 하다 지난 2021년 12월에 누리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수익은 일반 민영제 시내버스보다 적었다. 하지만 3년간 누리버스를 운행하면서 피로와 부담감은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고욱현 기사는 “아무래도 시나 군에서 관리하는 공영제 마을버스의 경우 버스기사 입장에서는 직업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며 “운행 횟수도 시내버스보다 많지 않아 업무 피로,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 공영제 후 이용자 수↑… 관광객 유치효과도 ‘톡톡’

공영제는 버스기사뿐만 아니라 이용객의 서비스 품질도 대폭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안정적 재정과 운영 덕분이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강원도 정선군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와와버스’가 대표적이다.

와와버스는 지난 2020년 6월 ‘버스완전공영제’ 시행에 따라 운행을 시작한 마을버스다. 총 35대가 현재 운행 중이다. ‘와와버스’라는 이름은 정선군 캐릭터 ‘와와군’에서 따온 것이다. 때문에 각 마을버스마다 담비를 닮은 귀여운 와와군이 그려져 있다. 와와군은 정선군 아라리숲을 지키는 요정이다.

버스완전공영제 기반 와와버스의 도입 이후 버스 이용자 수도 크게 증가했다. 정선군에 따르면 와와버스 이용객 숫자는 2022년 7월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1% 증가했다. 처음 와와버스가 도입된 2020년과 비교해선 올해 기준 155% 이용자 수가 늘었다. 정선군 교통관리사업소는 내년도에는 200% 정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봉호 정선군 교통관리사업소 공영버스운영팀장은 “민간 운수회사에 버스 운영을 맡겼을 때는 어르신들이 시골에서 정선군 시내로 한번씩 내려오시려면 만원이 넘는 버스비가 들었다”며 “와와버스 도입 후 어르신들은 버스비를 낼 필요가 없고 젊은 층도 1,000원만 지불하면 돼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영제 버스의 또 다른 장점은 ‘버스 관리’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정선군 교통관리사업소에는 와와버스를 정비할 수 있는 수리 센터가 설치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차장도 구비돼 ‘원스톱’으로 버스 관리가 가 가능했다. 버스기사들은 운행을 마친 후 사업소 내 센터로 버스를 이동시킨 후 정비 및 검사, 세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현봉호 팀장은 “공영제 이전 정선군 마을버스 관리를 위해 민간 운수회사에서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가져다 놓고 관리소를 운영했다”며 “하지만 공영제 추진 이후 국도비 지원을 통해 부지를 새로 확장하면서 지금과 같은 관리 인프라를 갖출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업성과에 힘입어 정선군은 올해 말까지 와와버스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다. 친환경 저상 전기버스 2대를 추가 도입한다. 이를 통해 총 35대의 공영버스 중 12대를 친환경 저상전기버스로 확대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2030년까지 공영버스 전 차량을 친환경 전기버스로 교체 완료할 예정이다.

아울러 공영제 마을버스는 관광객 유치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공영제 마을버스인 ‘하늘내린 마을버스’는 전국 등산객들에겐 ‘필수코스’로 꼽힌다. 방태산과 원대리 자작나무숲 등 주요 등산·관광코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동할 수 있어서다.

하늘내린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한 버스기사는 “하루에 탑승하는 승객 중 90% 이상이 등산객분들”이라며 “등산동호회 등을 통해 마을버스 탑승 시간, 요령 등 정보를 공유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적자는 넘어야 할 산… 중국산 전기버스 정비문제도 해결해야

다만 공영제가 마을버스 활성화 및 지방 교통망 인프라 확충의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여전히 시내버스에 비해 이용자 수가 적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재정적으로 지자체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고욱현 기사는 “정선군 누리버스는 하루에 약 40에서 50명 정도의 승객이 탑승하는데 젊은 층은 거의 없고 대부분 노인분들”이라며 “일반 시내버스에 비하면 인원 수도 굉장히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제군 하늘내린 마을버스기사 역시 “현재 운영되는 마을버스는 마을 주민들 편의를 위해서 시내버스가 안 들어가는 노선 위주로 편성된 것”이라며 “하지만 영리 목적으로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고 마을과 지역을 위한 봉사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운수업체보단 안정적이지만 마을버스 정비 및 관리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최근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전환되는 ‘전기버스’의 경우 관리가 더욱 어렵다. 대다수 전기버스 부품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데 이를 수리할 수 있는 전문기사를 지자체에서 고용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54.1%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중국 버스제조사 22개사 중 20개사는 배터리 검사를 위한 배터리정보시스템(BMS)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현봉호 정선군 공영버스운영팀장은 “정선군 와와버스도 전기차로 전환이 시작됐는데 현대자동차에서 전기버스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때문에 대부분은 현재 중국산이라 고장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와와버스도 1대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를 못해 3개월째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며 “해당 배터리를 고칠 수 있는 정비기사는 우리나라에 몇 명 없어 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영제 버스는 관련 시설물들은 보수하거나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 많아 초기 비용은 많이 들어간다”며 “확정적인 적자 상황에서 공영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주민 편의 확충을 위한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가 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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