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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라고 변명하는 게 아니라...” 지지율 17% 납득하게 만든 125분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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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은 사과를 결심한 이유였다. 대통령은 “지난 2년 반을 돌아보고 앞으로 시작을 하는 가운데 국민들께 감사 말씀과 사과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구체성은 없이, 임기가 절반이 지났으니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비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국정 쇄신과 국정 기조 전환 요구에 대한 입장이었다. 대통령은 “좋은 질문인데 상세하게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하나 마나 한 답이었다. 인적 쇄신을 두고선 “시기는 좀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안 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세 번째 질문에서 ‘명태균’ 이름이 나왔다. 대선 이후 명씨와 정말로 소통을 끊은 거냐는 질문이었다. 앞서 대통령실은 당선 이후 명씨와 연락한 적 없다고 했는데 취임식 전날 대통령 육성이 담긴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에 축하 전화를 받고 수고했다는 얘기도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비서실이랑 얘기를 했는데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저렇고 얘기하기 어려우니 경선 뒷부분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며 책임을 참모들 탓으로 돌렸다.
이어 김 여사가 영부인 위치에서 명태균과 수시로 연락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대통령은 “제가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는 없는 거라 그냥 물어봤다. 본인도 많이 줄인 것 같고, 몇 차례 정도 문자나 했다고 얘기는 한다”고 답했다. 공천개입을 넘어 국정 개입 논란까지 벌어진 마당에 프라이버시 때문에 아내 휴대폰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공인으로서는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대통령은 “당에서 진행하는 공천을 가지고 제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고 또 인수위에서 진행되는 거를 꾸준히 보고 받아야 되고 저는 고3 입시생 이상으로 바빴던 사람”이라며 “당의 공천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누구를 공천을 주라 이런 얘기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22년 5월9일 명씨와 통화에서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 대통령 본인의 육성이 공천 개입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기엔 부족한 해명이었다.
대통령은 “오랜만에 몇 달 전에 저한테 많이 서운했을 것 같아서 저도 받았고 그래도 고생했다는 한마디 한 것 같고 무슨 공천에 관한 얘기한 기억은 없지만 했다면 당에 이미 정해진 얘기 그 시기에는 거의 정해졌을 것이고”라고 했다. 이미 정해진 공천을 명씨에게 이야기하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 대목에 대한 꼬리 질문이 없었다. 그런데 돌연 대통령은 “누구를 꼭 공천줘라-고 사실 얘기할 수도 있죠. 그게 무슨 뭐 외압이 아니라 의견을 얘기하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의견을 밝히면 상대방은 그걸 그냥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뒤죽박죽 해명의 결론은 ‘아무 문제 없다’였다.
김 여사 국정 개입 의혹에는 국민 인식과 괴리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게 잘하게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또 “집사람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거는 있다”고 했다. 아차 싶었는지 “아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국민들한테 걱정 끼쳐드린 건 무조건 잘못”이라고 했지만 이미 수습은 어려웠다.
김 여사가 ‘비공식 활동’에서 신중한 처신을 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거냐는 질의에는 “앞으로 부부싸움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기자회견장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이었다.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 보면 순진한 면도 있고, 제가 이거 제 아내라고 변명하는 게 아니라”라며 아내를 위한 변명을 시작했다.
대통령은 2021년 대선을 준비하던 때를 회상하며 “하루 종일 사람들 만나고 집에 와서 쓰러져 자면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5~6시인데 안 자고 엎드려서 휴대폰에 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미쳤냐,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그랬더니 ‘이렇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맙습니다-라든지 잘하겠습니다-라든지 답을 해줘야 한다’며 날밤이 바뀌어서 그렇게 했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는지 몰라도, 국민은 김 여사가 대통령의 휴대폰을 자기 휴대폰처럼 쓰고 있으며, ‘윤석열’ 대신 답장을 보내며 ‘윤석열’이 되어 소통했으며, 지금도 ‘윤석열’을 대신해 ‘윤석열’의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었다.
대통령은 “누구한테 도움을 받으면 말 한마디라도 인연을 딱 못 끊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된다는 그런 걸 가지고 있다보니 문제가 좀 생긴 것 같다. 나중에 무분별하게 이런 것이 언론에 까지고 이럴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은데 이게 전부 제 책임”이라고 했다. 올해 초 KBS와 녹화 대담에서 ‘박절하지 못해서’라는 해명에서 나아가지 못한 장면이었다. 대통령은 이날 “후보 시절과 또 당선인 시절과 대통령이 됨으로써 소통의 방식을 매정하지만 바꿔야 된다”는 당연한 말을 했는데, 이 말을 임기가 절반이 지나서야 했다.
그러나 보수신문에서조차 “김 여사를 방어하기 위한 궤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동아일보는 9일 「헌재도 합헌이라는데…前 국정농단특검 팀장의 이중 잣대」란 제목의 사설에서 “김 여사 특검법처럼 국민의 60% 이상이 찬성하는데도 대통령이 거부하고 여당이 반대해 특검이 불발된 전례는 찾기 어렵다”며 위와 같이 비판했다. 이 신문은 “야당 단독 특검 추천 방식도 국정농단 특검에서 먼저 적용됐고, 헌법재판소가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라며 합헌 결정한 사안”이라며 “국정농단 특검 당시 수사팀장을 맡아 수사 전반을 지휘했던 윤 대통령이 이제 와서 특검 위헌론을 펼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10%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에 대한 답변은 “축구선수가, 야구선수가 전광판 보고 운동하면 되냐, 안 보고 공만 보고 뛰고 공만 보고 때려야 한다는 얘기를 선거 때부터 계속했다. 제 마음에는 달라진 건 없다”였다. 윤-한 갈등을 풀어볼 생각이 없느냐는 질의에는 “언론에서도 좀 자꾸 갈등을 부추기는 것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돌연 “늘 초심으로 가야 된다”는 초심론을 꺼냈다. 국민 입장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초심을 잃었다는 의미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또 “일을 열심히 같이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지지 않겠냐”고 했는데 이 역시 한 대표가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뒤이어 “정치 오래 하다 보면 다 앙금이 있더라”고 말해,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갈등이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개원식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왜 불참했느냐는 질의에는 국회 탓을 했다. “난장판에 대통령이 가는 게 국회에 도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 뒤 더불어민주당이 동행명령권이나 탄핵을 남발한다면서 “국회로 오지 말라는 얘기”라고 했다.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 너 망신 줘야 하니까 국민들 보는 앞에 와서 무릎 꿇고 망신 좀 당해라. 이건 정치를 살리자는 게 아니라 정치를 죽이자는 얘기 아닌가 싶다”며 야당에 대한 적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에 대해선 “국회 일이니까 제가 왈가왈부하는 게 맞지 않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대통령은 이어 “자기를 의도적으로 악마화하고 억울함도 아마 본인은 가지고 있겠지만 그거보다 어쨌든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보고도 ‘국정 성과 이런 얘기만 하지 말고 사과를 좀 많이 하라’고. 이것도 국정 관여고 농단은 아니겠죠?”라고 답했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한 상징적 장면이었다. 대통령에게 그대로 희망을 걸고 있던 국민도 이 대목에선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기자회견 후반부 부산일보 기자의 질문은 가장 돋보였고 핵심에 가까웠다.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갖춰야 될 요건이 있다고 한다.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할지 명확하게 구체화하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대국민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쳐드렸다,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했다. 명태균 씨 관련 일에 대해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휴대폰을 바꾸지 못해서라든지 사람 관계에 대해서 모질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말씀했는데 그렇다면 마치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만한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 사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 우리에게 사과를 한 건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
부산일보 기자가 무엇에 대한 사과였는지 보충 설명을 요구했을 때가, 사실상 대통령에겐 마지막 반전의 기회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딱 집어서 잘못한 게 아니냐 지적해주시면 팩트에 대해서 사과를 드릴 거고. 저도 제 아내와 관련한 기사를 꼼꼼하게 다 볼 시간이 없다. 어떤 것을 딱 집어가지고 왜냐면 이것도 사실과 다른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되어서 기자회견 하는 마당에 팩트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 맞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는 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명확하게 뭘 잘못했는지 말하기 어렵다는 답이었다.
이밖에도 대통령은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에게 “하나 정도만 하자, 이제. 하나 정도만 해. 목이 아프다 이제”라고 반말하는 모습을 전 국민에게 보여줬다. NK뉴스 소속 외국인 기자의 한국어 질문에도 “말귀를 잘 못 알아듣겠다”고 반말해 무례를 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체코 원전이 헐값에 수주되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질의에는 “너무 무식한 얘기”라고 답하며 거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에서 국정지지율을 올릴 반전의 계기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기자회견은 허무하고 허탈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