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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타울리의 파리 하우스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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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타울리(Dan Thawley)는 동시대 산업에 진정성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면서 이름을 알린 패션 에디터이자 저널리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큐레이터다. 프랑스 파리가 거점이지만, 댄은 전 세계를 끊임없이 여행하며 활약해 왔다. 댄 타울리와 연락할 때 첫 문장은 항상 ‘지금 어디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종종 그의 파리 집을 두고 ‘피에-타-테르(Pied-à-Terre; 임시 거처)’가 더 어울린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호주 태생의 댄 타울리는 지난 10년간 〈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 A Magazine Curated by〉 편집장으로 매 호마다 특별한 디자이너와 협업해 창의적 비전을 선보였고, 패션의 문화적·예술적 이해와 해석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작가와 컨설턴트, 아트 디렉터로 더 넓은 트렌드와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댄 타울리는 패션을 넘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다. 올해 3월 파리에서 댄이 기획해 처음 선보인 디자인 페어 ‘매터 & 셰이프(Matter & Shape)’는 그만의 관점으로 큐레이션한 결과물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패션과 디자인을 넘나들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댄 타울리의 ‘피에-타-테르’, 그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댄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이 집은 흡사 자신만을 위한 갤러리처럼 댄 타울리의 취향에 맞는 사물로 가득했다. 파리가 올림픽으로 들썩이던 어느 날 댄은 알제리 여행에서 돌아왔고, 바로 다음날 상하이 그리고 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또 다른 여정을 앞두고 있었다.
오일 페인팅은 알렉스 포튼(Alex Foxton)의 작품. 세라믹 조각 ‘Centrotavola Chalk 30H’는 파예 투굿이 비토시(Bitossi)를 위해 고안한 것. 빈티지 프렌치 사이더 프레스는 앙투안 비요르(Antoine Billore)의 디자인.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작업과 크리에이터들을 만난다. 요즘 당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은
언제나 현지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행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다. 직접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무수한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앱과 가이드가 있지만 세계의 특정 지역 혹은 도시를 찾아 현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움과 공예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건축에 대한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팁을 따르며 독특한 문화와 생활방식을 경험하는 것과는 절대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파리에 있는 이 집에도 댄 타울리의 개인적 스타일과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는지
책이나 여행에서 가져온 기념품, 나와 친구들이 존경하는 이들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운 좋게 수집한 것도 많다. 끝없는 진화 과정에 있는 물건과 에페메르(Éphémère; 짧게 존재하는 것)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집이다. 물론 내가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집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지만(웃음).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패브릭을 사랑하는데, 사진 예술가 집단인 ‘파자마(PaJaMa)’가 1930년대에 촬영한 엽서 크기의 사진 그리고 미국 예술가 패트릭 캐롤(Patrick Carroll)이 뜨개질로 쓴 시 작품은 나에게 특별한 영감을 준다.
파란 커버의 책은 이언 해밀턴 핀레이(Ian Hamilton Finlay). 종이로 정교하게 제작한 나뭇잎 형태의 아트워크는 토마스 드 팔코(Thomas de Falco)의 작품. 블루 크리스털 문진은 스와로브스키. 핑크 프로스티드 글라스 화병은 베르 드옹쥬(Verre d'Onge). 오벌 세라믹 디시는 아르미타노 도밍고(Armitano Domingo). 인센스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우븐 머시룸은 노마(Noma).
수많은 책과 오브제가 넓지 않은 집 곳곳에 있다. 당신의 성격이라면 이 모든 것이 무질서하게 정리돼 있을 것 같진 않다. 생활공간 디자인과 미학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집에 들여놓을 물건을 선택하고 배치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나 개념이 있다면
집 자체를 하나의 제단으로 여기고 여기에 어우러지는 작은 물건들의 모음을 생각한다. 컬러와 질감의 조화 또는 세라믹이나 유리 같은 비슷한 재질, 아니면 크기와 비율을 생각해 재미있게 배치한다. 한 책장에는 빈티지 병과 꽃병들이 오름차순으로 배열돼 있고, 몇몇 꽃병에는 대리석 알이 놓여 있어 높이와 형태를 재미있게 표현한다. 나는 작은 물건을 꾸준히 수집하고, 아주 겸손한 것과 럭셔리한 것을 대조시키는 것도 흥미롭게 생각한다. 이곳의 물건은 내가 여행에서 가져온 추억의 조각을 모은 것에 가깝다.
토기 화병은 호주 원주민의 세라믹 베이스, 벽에 붙인 그림은 존 데리언(John Derian). 조개 모양의 세라믹 디시는 교토의 야마혼에서 산 것. 그레이 컬러의 디캔터는 테레지엔탈 글라스(Theresienthal Glass).
패션 매거진 편집장에서 디자인 컨설턴트, 큐레이터이자 아트 디렉터로 역할을 전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항상 디자인과 예술에 관심 있었다. 패션과 함께 일찍부터 시작된 관심이었다. 〈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는 객원 디자이너가 선택한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물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고 〈월페이퍼 Wallpaper〉와 〈AD〉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의 네투노(Nettuno) 해변에 있는 집 내부 사진을 의뢰하거나, 잡지를 위해 숨겨진 카라바조(Caravaggio)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거나, 포르투니(Fortuny)와 지노리 1735(Ginori 1735) 같은 브랜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했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매터 & 셰이프’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과정은 내가 계획을 세운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패션 에디토리얼 세계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 기술이 디자인 컨설팅과 큐레이션 접근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를 만들며 여러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배운 접근방식과 인쇄 잡지의 큐레이션에서 많은 디자이너들가 보여준 고급스러운 엄격함 그리고 다양한 미학은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고, 물건을 모으거나 이야기할 때 거기에 담긴 역사와 맥락을 생각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런 경험이 나만의 취향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책장은 기에름 에 샤브롱(Guillerme & Chambron). 책장 위의 세라믹 화병은 엘리스 게틀리페(Elise Gettliffe). 레진으로 만든 달걀은 피에르 지라우동(Pierre Giraudon). 캔들 스틱은 이딸라. 오르페오 타기우리(Orfeo Tagiuri)가 그림을 그린 체어는 아르텍. 사진 프레임은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작품.
패션 산업과 디자인 세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나 오디언스의 참여 측면에서 패션과 디자인 세계의 차이점과 유사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두 세계 모두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 세계는 종종 사람과 그들의 몸에 대해 ‘양식화’된 이미지를 다루기 때문에 패션쇼나 이미지를 위해 일종의 연기가 동원되거나 포토숍으로 거울 효과를 더하는 등의 프로세스를 통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디자인은 좀 더 구체적이다. 패션계와 같은 방식으로 추후 포토숍 작업을 하거나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핀으로 옷을 고정할 수 없다. 두 분야 모두 창작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제대로 보여주려 하고, 관객들도 점점 장인 정신에 대해 배우고 있다. 디자인에는 패션이 배워야 하는 영속성이 있다. ‘세컨드 핸드’ 마켓 문화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빈티지 가구나 오브제를 온라인에서 사고파는 방식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는 패션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일반적으로 패션은 너무 빠르고, 디자인은 너무 느리게 느껴진다. 패션이 브랜드, 디자이너, 에디터들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디자인 역시 패션의 뒤를 좇으며 점점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디자인 세계는 개념이나 오브제에 대해 실질적인 질문을 하고 비판하는 데 더 익숙하다. 패션은 종종 무엇이 멋지고 새로운지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그 영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
폴딩 체어는 프라마(Frama). 누드 프레임은 코코 카피탄. 조각된 우든 박스는 빈티지 제품.
큐레이터로서 작업한 프로젝트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에 구찌가 홍콩과 베이징, 타이페이에서 주최한 사진·디자인·예술 전시 시리즈 큐레이션 작업을 요청받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비전을 매거진과 브랜드를 위해 표현하고 세트 디자인과 움직이는 이미지, 골동품 같은 요소로 옷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몰입형 경험을 만들기 위해 구찌 팀과 협력했던 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2023년에는 파리에서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1960년대 레 아르크(Les Arcs) 스키장을 위해 고안한 카펫 디자인의 원본, 그녀의 미공개 드로잉에서 영감받은 카펫 컬렉션을 론칭하면서 샤를로트 페리앙의 그림과 스케치, 개인 물건으로 구성된 작은 전시가 열렸는데 이를 큐레이션했다. 올해는 인디아 마다비의 프로젝트 룸에서 〈포린 플라워스 Foreign Flowers〉라는 전시가 열려 수집 가능한 디자인과 순수 미술에서 전통적이지 않은 꽃에 대한 나만의 개념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와 이야기를 탐구할 수 있는 자유와 자원을 제공받았고, 이를 미적·교육적 방법으로 선보일 수 있어서 내겐 중요했던 프로젝트였다.
패션 신에서 일했던 배경이 디자인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역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패션계에 뛰어난 컬러 마스터들이 있다. 그들의 작업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색채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과 하이더 애커만(Haider Ackermann)의 쇼, 뉴욕에서 샌더 락(Sander Lak)과 함께한 시스 마르잔(Sies Marjan)의 작업, 전 발렌티노 디자이너인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에르뎀(Erdem)과 함께 매거진을 만든 것은 내 사고와 큐레이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패션은 다른 창작세계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특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때로는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복제할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패션계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주변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는 우아한 방식을 가르쳐줬다.
스파이럴 램프는 잉고 마우러. 초는 시흐 트루동. 인센스 버너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머스터드 컬러의 세라믹 플레이트는 라 튈라 루(La Tuile à Loup) 제품.
아트 디렉터와 큐레이터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이 두 역할의 주요 차이점은
아트 디렉션은 제품과 브랜드, 이벤트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창조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큐레이터는 자신의 창작물이나 다른 사람의 창작 개념을 전시나 프로젝트로 통합하는 일이다. 큐레이션은 교육적 접근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주제에 대해 청중을 가르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반면 아트 디렉션은 주제를 신화화하고 때로는 실제 가치 이상으로 미화한다. 둘은 매우 다른 영역이다.
가까운 미래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나? 지금 한창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2025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파리 튈르리 정원에서 열릴 ‘매터 & 셰이프’ 두 번째 에디션을 위해 작업 중이다. 이번에는 규모가 좀 더 커졌고, 많은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참여할 것이다. ‘매터 & 셰이프’가 열리는 동안에는 인디아 마다비의 프로젝트 룸으로 돌아가 ‘가정성’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큐레이션을 구상할 예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과 함께 2025년 가을에 출간될 기념 서적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내년에 펼칠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기대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