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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밝힌 '미키 17'의 모든 것 "발 냄새 나는 SF"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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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왼쪽)과 봉준호 감독.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미키 17'은 SF영화이지만 동시에 인간 냄새로 가득한 영화예요.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미키는 평범하고 힘없고 불쌍한 청년이죠. 이렇게 새로운 장르로 만나게 돼서 더욱더 기대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죽음이 직업'인 미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SF 영화로 돌아온다. 그가 연출한 영화 '미키 17'은 지난 201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었던 '기생충' 이후 무려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참석한 가운데 '미키 17' 기자간담회와 영화의 일부를 공개하는 푸티지 상영이 진행됐다. 오랜만에 국내 취재진과 만난 봉 감독과 처음 내한한 로버트 패틴슨은 영화 제작 과정과 최근 반복된 개봉일 연기 등에 관한 질문에 답했다.

'미키 17'은 2월28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북미 공개는 이보다 늦은 3월7일이다. 다만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는 지난해부터 몇 차례나 개봉 시기를 변경해 궁금증을 안겼다. 그 과정에서

워너브러더스와 봉준호 감독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등 다양한 시선이 제기

됐다.

개봉 시기 변경과 관련해 "익사이팅했다"고 말문을 연 봉준호 감독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제 영화 중에 개봉 날짜가 변경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만큼 (개봉 날짜를 두고)배급사가 고민을 많이 한다"면서 "'미키 17' 같은 경우는 주목을 받아서인지 기사화가 많이 됐다"고 밝혔다. 영화 개봉 시기를 결정하는 건 배급사의 고유한 전략으로, 그동안 연출한 영화들 역시 개봉일이 연기되는 등 변화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배우조합 파업 등 현지 상황 때문에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들의 개봉일을 바뀌었어요. 저희 영화도 그 여파가 있었죠. 복잡한 여건과 상황들이 엮여 있었습니다. 재편집이나 재촬영은 없었어요. 과거에도 얘기했는데

워너와 '감독최종편집본'으로 계약

이 돼있어요. 창작의 권한(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을 존중했고, 상호 존중 하에 잘 끝났어요. 여러 외적 요인들로 인한 변화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 기쁩니다." (봉준호 감독)

로버트 패틴슨은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해 영화를 알리는 첫 행사를 봉준호 감독과 함께했다. 전날 내한한 패틴슨을 보기 위해 공항에서부터 수많은 팬들이 그를 반겼다. "(제가)한 번도 서울에 오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한국 관객들과 감독님을 만나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팬들이 "공항에 나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음이 따듯해졌다"고 덧붙였다.

과거 일부 엔터테인먼트 매체들을 통해 '로버트 패틴슨이 한국이 정착한다'는 소문이 제기되기도 했던 상황에도 답했다. '한국 정착설'에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저도 들었다. 아파트를 찾고 있다"고 농담을 하면서 "한국의 훌륭한 감독님과 배우들을 보면서 자랐고, 앞으로도 (한국과)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 봉준호 감독이 미키를 10번 더 죽인 이유는?

'미키 17'은 얼음으로 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인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모험과 위기를 다룬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소모품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 뒤 죽으면 다시 프린트(복제)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18번째 미키가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펼친다. 패틴슨 외에 스티븐 연, 나오미 아키에,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 등이 출연한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차기작을 선보이게 된 봉준호 감독.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봉준호 감독은 "미키의 직업 자체가 죽는 직업이다. 반복적으로 죽어야 한다.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임무를 부여받고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다"면서 "제목이 '미키 17'인데 17번 죽었다는 뜻이다. 극한 직업이다. 죽을 때마다 프린팅, 즉 출력이 된다. 복제인간과는 다르다. 서류 뽑듯이 인간이 출력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소 난해한 미키의 세계에 대해 부연했다.

"원작 소설의 핵심 설정도 '휴먼프린팅'입니다. 인간이 인쇄되는 거죠.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요. 극한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이라고 할까요.

자연스럽게 계급의 문제가 스며들 수 있지만 거창한 투쟁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 불쌍한 미키가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는, 성장영화의 측면에서 보면 재밌지 않을까 합니다." (봉준호 감독)

원작에서 7번 죽은 미키는 봉 감독의 손에 의해 17번 죽게 된다. 캐릭터의 설정도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역사 선생님이었던 미키는

영화에서는 과거 지구에서 마카롱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

로 등장한다. 사채업자의 위협 속에 우주로 떠난다. 7번의 죽음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봉 감독은 영화에서 미키가 "더 많이 다양한 죽음을 겪는다"고 했다. 또한 "원작은 과학기술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오로지 땀 냄새나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불쌍하고, 가엾은,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는 미키를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미키 17'에서 마크 러팔로는 얼음 행성 개척단의 사령관인 케네스 마셜 역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봉 감독은 "평생 악역을 해본 적 없던 마크 러팔로가 위험하지만 귀여움으로 군중을 사로잡는 독재자로 나온다"면서 "처음에는 왜 자신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 건지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즐거워했다"며 캐스팅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패틴슨 "봉준호 감독 수준, 전 세계 5명밖에 안 돼"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 17과 미키 18을 통해 1인 2역을 연기했다. "미키 17이 멍청하고 불쌍하다면, 미키 18은 예측 불가능한 기괴한 카리스마를 뽐낸다"고 밝힌 봉 감독은 "소심한 미키에서 광기 어린 미키, 그 둘이 다 되는 배우로 처음부터 패틴슨을 생각했다. 본인도 이상한 걸 하고 싶어했다"고 웃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였다"고 돌이킨 패틴슨은 "봉 감독이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거대한 스케일에서 가볍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을 찍는데 이런 SF영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

지금 전 세계에서 봉준호 감독 같은 분은 4, 5명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봉 감독의 영화를 보면 세계관이 정말 특별하다. 개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도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

'살인의 추억'을 오래전에 봤는데 말도 안 되는 것과 심각한 상황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런 영화를 하고 싶었고, '미키 17'에 저를 생각한다고 했을 때 빠르게 손을 들었다"

고 이야기했다.

패틴슨은 '미키 17'의 작업 과정에 대해 "굉장히 체계적이고 봉 감독이 자신감 있게 실행을 한다. 원래 시퀀스보다 더 적게 촬영했다. 몇 장면씩 재촬영하는 작업에 익숙한데 '미키 17'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몇 주 지나니까 익숙해지고 자유를 느꼈다.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다. 일주일 지나고 '이 현장 최고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현장 편집본을 보여준 것도 굉장히 좋았다"고 회상했다.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는 나오미 아키에가 연기한다. 봉 감독은 "

25년 감독 경력 최초로 사랑 이야기를 한다

"면서 "인간이 출력되는 와중에 사랑을 한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만든 멋진 사랑의 테마도 있다. 이 영화를 멜로라고 하면 뻔뻔스럽겠지만 사랑의 장면들이 있다. 그게 제일 뿌듯했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로버트 패틴슨. '미키 17'을 홍보하기 위해 처음으로 내한했다. 정유진 기자
로버트 패틴슨. '미키 17'을 홍보하기 위해 처음으로 내한했다.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 AI시대에 대비하는 봉준호 감독의 자세는?

'미키 17'은 205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유에 대해 봉 감독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겪게 될 이야기"라며 "그만큼 현실감 있고 우리 피부에 와닿는 SF다.

우리끼리 농담처럼 '발 냄새 나는 SF영화'

라고 했는데, 근미래로 끌어당기고 싶었다"고 짚었다.

"불과 10년 전에 챗GPT 같은 AI를 상상하지 못했잖아요. 2~3년 후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예측하기 무척 어려워요. 영화 속 이야기가 SF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가 겪을지 모르는 상황이죠. 논두렁에서 형사가 경운기 타는 영화(살인의 추억)를 찍다가 이런 영화를 찍으니까 갑자기 갭(차이)이 느껴지네요. 하하!"

AI(인공지능)로 인해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봉 감독 역시 "살아남기 위해 AI가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알파고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이세돌 전 바둑기사가 알파고를 굴복시킨 '신의 한 수'가 있더라고요. 그런 수를 세 페이지에 걸쳐 하나씩 등장시키는 시나리오를 쓰자는 마음입니다.

AI가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매년 한 번씩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영화 업계에서도 지금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예민하면서도 무시무시하죠."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기간 봉준호 감독의 전담 통역사로 주목받은 최성재(샤론 최)가 통역을 맡았다. 최성재는 '미키 17' 촬영 현장에서도 봉 감독의 전담 통역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키 17' 기자간담회 현장.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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