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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좌파”, “역겹다” 트럼프·머스크의 ‘입틀막’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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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부 비판 칼럼을 쓴 언론인의 실명을 언급하며 “즉각 해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정부효율부(DOGE) 비판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역겹고 잔인하다”고 했다. 언론인을 향한 정부 차원의 압박이 강해지자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강경한 접근 방식은 50년 전 닉슨 대통령이 시도한 언론탄압(crackdown)과 유사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현지시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워싱턴포스트(WP)의 유진 로빈슨은 무능하다!(INCOMPETENT) 급진적인 좌편향으로 국제개발처(USAID)의 낭비, 사기, 부패를 정당화하려는 걸 보니 너무 슬프다. 그는 즉시 해고돼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유진 로빈슨은 WP에서 40년 이상 근무한 배테랑 칼럼니스트다. 2009년엔 미국 대선 관련 칼럼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진 로빈슨은 지난 6일 「공화당 의원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These Republicans should be ashamed of themselves) 칼럼을 썼다. 일부 트럼프 내각 장관들의 결격 사유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음에도 인준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들의 실명, 과거를 거론하며 의원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내용이다.

유진 로빈슨은 “(장관) 후보들 중 그 직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력서만으로도 결격 사유”라며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의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 경력에 매우 잘못된 일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개발처(USAID)의 해외 원조 프로그램을 없애려는 일론 머스크를 저격한 대목도 있다. 유진 로빈슨은 “선출되지 않은 무책임한 머스크는 비당파적인 시민 서비스를 궁극적으로 파괴하려고 하고 있다”며 “초당적 지지를 받아온 해외 원조 프로그램이 도끼 찍듯 잘려 나갔는데 민주당만 이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소속 언론인을 비판하자 WP는 “유진 로빈슨은 45년간 정직하고 꼼꼼한 보도와 논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럼니스트”라며 “독립적인 취재와 자유 언론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언론인과 언론사를 지지하는 것처럼 유진 로빈슨을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진 로빈슨을 언급한 당일(7일) 일론 머스크도 자신의 엑스에 특정 언론인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 캐서린 롱의 정부효율부 비판 보도에 대해 머스크는 “그(캐서린 롱)는 역겹고 잔인한 사람”(She’s a disgusting and cruel person)이라고 했다.

캐서린 롱은 7일 「인종차별적 게시물로 사임한 정부효율부 직원」 기사에서 20대 정부효율부 직원 마르코 엘레즈가 “돈을 주더라도 나와 같은 인종이 아닌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엘레즈는 WSJ가 백악관에 입장을 요구하자 사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등 권력을 쥔 인물들의 비판 보도 대응이 정권 차원의 ‘언론 길들이기’와 궤를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NYT는 트럼프 정부 이후 진행된 공영방송 PBS 예산 지원 중단 검토, 연방통신위원회(FCC)의 CBS 방송 무편집 원고 요구 등을 언급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통적인 언론인을 향한 강경한 접근 방식을 고수하면서 약 50년 전 대통령(닉슨)이 시도했던 언론탄압을 재현하고 있다”고 했다.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 프로그램을 취소시키는 등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WP를 비롯한 다수의 기성 언론과 시종일관 긴장 관계에 있었다. 미디어 규제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앤드류 슈워츠먼은 NYT에 “닉슨 이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정부 권력을 사용한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NYT는 “WP는 워터게이트 보도를 훌륭하게 해냈고 백악관의 분노로 처음엔 조심스러워 했던 CBS 등 다른 언론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차별화해서 보도했다”며 “당시엔 유력 언론이 사실상 유일한 플레이어였고 대중들의 압도적 신뢰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이 스스로 실수하고 보수 진영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신뢰도가 급락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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