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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가 사랑한 작가, 피에르 위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과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는 매일같이 진짜와 가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답하기 어렵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를 예술로 탐구하는 작가 피에르 위그가 리움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 Liminal〉을 열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패션을 넘어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마스크를 통해 생성형 언어를 들려주는 ‘이디엄’(2024~진행 중). 인공지능에 의해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목소리, 금색 LED 마스크.
센서를 통해 끊임 없이 외부 데이터를 학습하고 진화하는 ‘리미널’(2024~진행 중). 실시간 시뮬레이션과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피에르 위그는 ‘리미널’이란 단어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정의한다. 그의 손길에서 태어난 작품은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스스로 진화한다. 예를 들어 신작 ‘리미널’은 센서를 통해 외부 데이터를 학습하고 끊임없이 변형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억을 쌓아가는 모습은 새로운 생명체를 보는 듯하다. 또 다른 신작 ‘이디엄’은 인간의 발성과 인공 신경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성된 기묘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보테가 베네타의 의상을 입은 이디엄의 목소리는 익숙한 의사소통 방식을 낯설게 만든다. 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무한히 확장되고 변형되는 인간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한다.
〈리미널〉 전시를 찾은 배우 김다미.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리미널〉(2025), 전시 전경.
물에 떠 있는 바위를 연출한 ‘캄브리아기 대폭발 16’(2018). 수조, 투구게, 화살게, 아네모네, 모래, 바위.
대형 영상 작품 ‘카마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해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계가 인간의 유해를 다루는 이 장면은 인간의 유한성과 기계의 무한성을 대비시킨다. 또 수족관 시리즈 ‘주드람 4(Zoodram 4)’ ‘주기적 딜레마(Circadian Dilemma)’ ‘캄브리아기 대폭발 16(Cambrian Explosion 16)’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생태계를 그린다. 정해진 조건 속에서도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 닮아 있다.
인간이라는 가면에 질문을 던지는 ‘휴먼 마스크’(2014).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스틸 이미지.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수정되며 발전하는 ‘카마타 Camata’(2024~진행 중). 실시간 시뮬레이션,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보테가 베네타는 이번 전시 후원을 통해 패션이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예술과 사회 담론을 확장하는 플랫폼임을 증명했다. 피에르 위그의 작품과 이를 후원한 보테가 베네타의 만남은 끊임없이 변모하는 현대사회를 비추며 진정한 럭셔리의 의미를 묻는다.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 〈리미널〉은 단순히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관람자는 스스로를 낯설게 인식하고, 새로운 현실을 상상하게 된다. 마치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간에서 우리는 무한히 확장되는 예술의 가능성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