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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美中 과학의 국수주의, 한국은 어디로 가나


지난주 전 세계가 중국에서 나온 논문 두 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판젠웨이(潘建伟) 중국과학기술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초소형 위성을 이용해 베이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약 1만3000㎞ 거리에서 세계 최장거리 양자암호통신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양자암호통신은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주일 뒤 의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성과가 발표됐다. 중국 공군 제4군사의대와 시징대 의대 연구진은 역시 네이처에 작년 세계 최초로 사람에 이식한 돼지 간이 정상적으로 담즙을 분비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면역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돼지 유전자 6개를 편집했다. 돼지 간을 인간화(化)한 셈이다. 이종(異種) 장기 이식은 만성 환자가 이식용 인체 장기를 구하기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과학 굴기崛起·우뚝 섬)가 이제 완전히 실현됐을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중국의 과학 논문 발표 건수는 2019년부터 미국을 추월했다. 논문의 양뿐만 아니라 질과 연관된 피인용 횟수에서도 그해 처음으로 미국을 앞섰다. 하지만 지난 2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중국 과학의 장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실렸다.
호주 국립대 공공정책과의 앤드루 케네디 교수는 중국자연과학재단(NSFC)의 연구비에서 개인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2012년 절반을 차지했지만 2023년 35%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미중(美中) 기술전쟁이 심화하면서 과학자의 순수한 호기심보다 국가 주도의 우선순위에 따라 투자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케네디 교수는 이런 움직임을 국가의 단기적 목표에 치중하는 국수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학자의 호기심이 없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에서 인류를 구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나 양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꿀 혁신은 불가능했다”며 “과학이 점점 더 국수주의적으로 변하는 세상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국수주의화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성부서(DOGE)가 과학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과학자들은 이탈 움직임까지 보였다. 네이처지가 미국 과학자 165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75.3%가 연구비 삭감 후 미국을 떠날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특히 경력 초기 단계의 연구자들에서 이주 희망자가 가장 많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세계 과학계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상위 1% 과학자 명단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36.4%와 20.4%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 과학자 10명 중 6명이 두 나라에 있는 셈이다. 그런 나라들이 개인 연구자에게 돌아가는 연구비가 좀 줄어든다고 흔들릴까. 정부가 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까. 과학자들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웃 일본이 그 증거이다.
일본은 연구자 수에서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인 나라이다. 하지만 20년 만에 과학 경쟁력이 곤두박질쳤다. 피인용 횟수 상위 10%인 논문 수가 2000년 세계 4위에서 2021년 세계 13위로 떨어졌다. 일본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는 개인 연구비 투자 감소가 질적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대학의 개인 연구비 지출은 미국과 독일에서 약 80%, 프랑스는 40% 증가했다. 한국은 4배, 중국은 10배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0% 증가에 그쳤다. 일본이 개인 연구개발(R&D) 투자에 주춤하는 사이, 경쟁국들이 연구비를 늘리면서 추월했다.
최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 과학의 문제점을 이중삼중(二重三重)으로 겪었다. 정부는 R&D 예산 효율화를 내걸고 2024년 예산을 5조2000억원(16.6%)이나 삭감했다. 정부가 과학 연구비를 줄인 것은 처음이었다. 연구 능력과 무관하게 무차별하게 진행한 예산 삭감은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같은 미래 인력에 가장 큰 피해를 안겼다.
과학의 뿌리부터 흔들리자 정부는 올해 다시 R&D 예산을 증액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 R&D는 인공지능(AI)·반도체, 양자기술, 첨단바이오 등 ‘3대 게임체인저’와 국가전략기술 중심으로 증액됐다. 정부가 우선순위로 잡은 분야에 투자를 늘렸지 개인 연구자가 지원할 과제 수는 오히려 줄었다. 케네디 교수가 과학의 국수주의라고 비판한 내용 그대로이다.
과학은 수많은 과학자의 호기심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난다. 코로나 19 대유행기에 중국의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급증을 세상에 알리고 바이러스 시료를 미국과 유럽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서구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해독하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 동료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덕분에 백신이 1년도 안 돼 개발돼 인류를 구했다. 양자컴퓨터도 100년 전 정부 도움 없이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스스로 한 데 모여 양자역학을 논의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정부는 그런 과학자들을 뒷받침해야지 앞에서 이끌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일본 과학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미국과 중국의 과학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부 주도의 과학정책을 과감하게 과학자들에게 넘기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 과학도 외국을 좇아가기만 하는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