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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얼마면 당신을 붙잡을 수 있나요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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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하는 가게가 한둘이 아니다. 길목마다 내려앉은 간판들을 보던 어느 날, 문득 위기감을 느껴 애정하는 동네 카페로 달려가 건재함을 확인하고 커피를 샀다. 추운 날씨를 핑계로 동선이 짧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한동안 이용했던 나를 반성했다. 수년 전 처음 이 카페를 좋아하게 된 이후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이미 응원의 메시지를 써두었다. ‘동네에 이 카페가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소규모지만 다양한 메뉴, 칼같이 지키는 영업시간, 한결같은 매장과 음식 상태까지 이제 존경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홀로 키운 마음과 달리 내가 실제로 전한 것은 작고 꾸준한 구매와 애플리케이션에 써둔 한 줄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간판이 떨어지고 그 문을 다시 열 수 없게 된다면 무척 슬프겠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몇 년 전에 읽은 해외 청소년 소설에서 기억에 남은 부분이 있다. 종종 웃긴 티셔츠를 입는 교사에게 학생들이 묻는다. “선생님, 그런 옷은 어디서 사요?” 교사는 “친구가 만드는 옷인데, 응원하며 구매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친구인데도 사야 하느냐”고 묻고, 교사는 교육자답게 대답한다.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게 바로 어른의 경제활동이야. 어른이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져 버린단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른들은 평생 돈을 어디다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하다가 죽는 것 같다. 소비는 필연이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응원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서도 돈을 쓴다. 무엇에 더는 돈을 쓰지 않을지도 결단해야 한다. 부의 양극화를 처음 공부했던 20대 초반에는 몇 년간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중 가장 지점이 많은 브랜드를 무작정 불매해 보기도 했다. ‘편의상 다 끊을 수는 없고, 일단 제일 잘되는 업체에 내 돈까지 쓰지는 말자’는 단순한 결정이었다. 이후 불의한 여러 사건이 터지면서 불매 기업 목록은 늘어났고 내 소비 원칙도 세밀하게 조정됐다. 사랑도 분노도 소비로 표현되는 세상이니 약간은 번거로울 의무가 있을 것이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사지 않아야 하는지를 고심하는 사이, 소비 윤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넓어졌다. 자연을 뒤덮은 버려진 옷 무덤과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일상의 소비방식을 바꿨다. 전 지구적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문제 삼은 결과 그게 무엇이든 웬만하면 사지 않는 방향을 택한 이들도 늘고 있다. ‘대기업 규제 안 하면 다 소용없어! 소상공인만 죽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소비행위가 별로 멋있게 느껴지지 않자 즐거움도 덜해졌다. 한동안 외식을 절제하고 검소한 식생활을 유지해 보기도 했다. 배춧잎을 끓인 묽은 국을 몇 끼째 먹으니 어쩐지 ‘탐욕스러운 도시의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좀 덜어낸 기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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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몇 주 사이 사무실 앞 단골 샌드위치 가게의 최애 메뉴가 사라졌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판매하는 비건 샌드위치였다. 주에 고작 한두 개씩 사 먹었을 뿐이지만, 혹시 내가 비인기 메뉴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건 아닐까? 그런 템페 샌드위치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그 맛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한동안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슬픔이란 참으로 가벼운 것이다. 최애 메뉴가 없어진 뒤 그 가게를 찾지 않게 됐고, 몇 달 후 가게가 통째로 없어진 것도 나중에 알았다.

‘비건 샌드위치 단종 사건’은 상징처럼 뇌리에 남았다. 소비 윤리를 생각하는 인구의 소비가 실제로 줄어들 때 어떤 종류의 다양성이 가장 먼저 사라질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기쁘게 하는 대부분의 것이 대중적이거나 유망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판매고를 기대하기 어려운 책, 식당에서 절대 ‘베스트’가 되지 않는 메뉴, 골치 아프지만 중요한 질문과 실천들. 때문에 작고 특별해 보이는 상품이나 생각들에 의식적으로 지갑을 열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할 필요를 항상 느낀다. 꼭 소비가 아니어도 위태로운 존재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보답을 받을 때도 있다. 앞 샌드위치 가게는 떠나보냈지만 다른 단골집에서는 실제로 목소리를 보탠 결과 “메뉴 다시 하려고 합니다. 꾸준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사업주의 응답을 들었는데 이만한 기쁜 일도 달리 없겠다 싶었다.

“계속 책 내주셔야 해요. 계속 살 거예요.” 소규모 출판인으로서 나 또한 이런 말을 듣는다. “그럼요!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은 진심이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간판을 내리는 모든 자영업자 역시 손님의 응원으로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부딪혀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경기는 어렵고, 자재값은 오르고, 사람들의 소비 패턴도 바뀌어 어느 자영업이든 힘들단다. 나도 익히 느끼고 있다. 종이값과 제작 단가가 오르니 책값도 오를 수밖에 없는데 책의 사회적 역할과 독서 인구는 작아지니,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수상쩍은 마음은 잠시 치워두고 배추도 사고 외식도 하고 책도 산다. 어디서 무엇을 살까? 좀 멀지만 오늘도 들렀습니다.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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