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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제’ 도입 논란… 사법개혁인가, 권력 재편인가
시사위크
재판소원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 신뢰 회복을 명분으로 재판소원제(이른바 4심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헌정 질서가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란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대법원의 최종심 권한을 헌법재판소로 이관하는 구조적 변화를 수반한다. 사법개혁의 명분으로 추진되는 이 논의가 결국 헌정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혁인가, 권력 이동인가’라는 논쟁이 커지고 있다.
◇ 개혁은 명분, 권력 이동은 현실… 미묘한 경계선
2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국감)에서 ‘재판소원제’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그대로 폭발했다.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은 “민주당의 자칭 법원 개혁 방안은 사법 파괴 선언”이라며 “△대법관 증원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재판소원 도입은 민주당 의지대로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 임기 안에 26명 중 22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할 수 있게 되는 구조”라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을 바꿔 대통령 무죄 만들고, 민주당 세상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개혁의 이면에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맞서 민주당 의원들은 재판소원제의 취지를 설명하며, 사법개혁이 사법 장악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이성윤 의원은 “재판소원은 모든 판결을 다시 심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절차를 위반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한 경우에 한정된 제도”라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감에 출석한 법원장들의 답변도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원범 대전고등법원장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은 “재판소원제는 헌법상 ‘사법권은 대법원과 각급 법원에 속한다’는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법개혁 논의의 핵심은 ‘개혁의 명분’과 ‘권력 이동의 효과’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민주당의 공식 개혁안(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대법관 증원, 대법관추천위 개선, 법관평가제 의무화, 판결문 공개 확대, 영장 사전심문 도입 등 사법 투명성과 국민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청래 대표가 재판소원제를 지도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개혁안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다. 재판소원제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게 돼 대법원의 ‘최종심’ 지위는 사실상 약화된다. 사법개혁의 명분 아래 사법 권력의 중심이 대법원에서 헌법재판소로 이동하는 셈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 제도개혁이지만 그 결과가 헌정 질서의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쟁점은 제도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제도가 권력의 균형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제 논란이 사법개혁의 차원을 넘어 헌정 구조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 기본권 보장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대법원의 최종심 권한이 헌법재판소로 일부 이전될 경우, 사법부의 위상과 삼권분립 원칙을 둘러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판소원제는 사법개혁의 완성일 수도, 헌정질서 재편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