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시청률로 조용히 사라진 줄 알았던 한 범죄 스릴러가, 종영 3개월 만에 넷플릭스에서 ‘역주행’ 곡선을 그리며 존재감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 TV 편성 당시 성적표만 보면 ‘흥행 참패’에 가까웠지만, 글로벌 OTT 환경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가가 시작됐다.역주행의 주인공은 배우 이주영·지승현·구준회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단죄’다. 지난해 12월 31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 작품은 공개 이틀 만인 1일 ‘대한민국 오늘의 TOP 10 시리즈’ 3위에 올랐고, 7일 기준으로는 7위를 기록 중이다. 새롭게 공개되는 국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도 한 주간 상위권을 유지하며, “뒤늦게 입소문을 탔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죄’는 보이스피싱 사기로 가족과 인생을 모두 잃은 무명 배우 하소민(이주영)이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 ‘일성파’에 잠입해, 딥페이크 기술을 무기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범죄, 보이스피싱 등 동시대 사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8부작 범죄 스릴러로, 빠른 전개와 현실 밀착형 소재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아이러니는 방영 당시 성적이다. ‘단죄’는 웨이브·드라맥스에 편성돼 지난해 9월 처음 공개됐지만, 첫 방송 시청률 0.2%로 출발한 뒤 방영 내내 0%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최저 0.1%, 최고 0.4%를 기록했고, 마지막 회도 0.3%로 조용히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방송 지표만 놓고 보면 ‘기대 이하’라는 결론이 쉬웠던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OTT에서 반응을 끌어올린 배경에는 장르와 소재의 결합이 있다. 보이스피싱과 딥페이크 범죄는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실의 위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지금 진행형 공포’로 체감되기 쉽다. ‘단죄’는 이 지점을 전면에 배치하며, 복수극의 쾌감과 사회 문제의 불편한 질문을 함께 밀어붙인다. 웨이브가 “‘단죄’가 보이스피싱과 딥페이크 범죄라는 첨예한 사회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룬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배우진의 몰입도도 관전 포인트다. 이주영은 보이스피싱으로 삶이 무너진 뒤 딥페이크를 활용해 복수를 설계하는 하소민을 연기하며, 감정선과 액션을 동시에 끌고 간다. 구준회는 엘리트 형사 박정훈 역으로 극의 추적 서사를 보강하고, 지승현은 보이스피싱 설계자 마석구를 맡아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이주영은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소민이를 연기하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액션 연기를 하며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꼈고, 시청자분들께도 이 작품을 통해 통쾌함이 전해졌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히며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제작 여건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다. ‘단죄’는 통상 국내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 수준의 제한된 예산 속에서 라이징 배우 중심의 캐스팅이 진행됐지만, 넷플릭스라는 유통 환경에서는 ‘과거 성적표’가 곧바로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았다. 제작사 타이거스튜디오 관계자는 YTN Star에 “TV 방영 당시 수치만 보면 실패에 가까웠지만, 작품의 메시지와 완성도는 언젠가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며 “넷플릭스에서의 역주행은 시청자들이 ‘단죄’가 던지는 질문에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고 전해졌다.넷플릭스의 노출 구조도 역주행의 촉매로 거론된다. 관련 장르를 선호하는 이용자에게 콘텐츠가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시청이 누적되며 순위 상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된다. 극장 흥행에 실패했던 영화 ‘살인자 리포트’가 넷플릭스 공개 후 인기 영화 순위 정상까지 올라 재조명된 사례가 언급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7일 오후 3시 기준 넷플릭스 코리아가 집계한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순위는 1위 ‘흑백요리사’, 2위 ‘은애하는 도적님아’, 3위 ‘모범택시3’, 4위 ‘프로보노’, 5위 ‘캐셔로’, 6위 ‘자식 방생 프로젝트 합숙 맞선’, 7위 ‘단죄’, 8위 ‘아이돌아이’, 9위 ‘러브 미’, 10위 ‘자백의 대가’ 순이다. ‘단죄’가 이들 사이에서 한 주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TV 시청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소비 지형”을 다시 확인시킨다.시청률 0%대의 ‘참패’였던 작품이 단 3개월 만에 넷플릭스에서 역주행을 기록한 ‘단죄’. 조용히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다시 선택받는 순간, 드라마의 평가는 방송 성적표가 아니라 ‘발견되는 속도’로 다시 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