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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될까봐 막나” 금서였던 ‘적의 입’ 이제 누구나 본다
미디어오늘
1970년 ‘반국가단체 간행물’로 간주했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지난달 30일부터 신분 확인도, 서약서도 없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노동신문을 국민들한테 못 보게 막는 이유가 뭐냐. 국민들이 선동에 넘어가 빨갱이가 될까봐, 그거 아니냐”면서 “우리 국민을 믿어야지 국민들 의식 수준을 너무 폄하하는 것”이라고 북한 자료 개방을 주문한 뒤 정부가 노동신문을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재분류한 결과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로 ‘북한자료 공개 확대’를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국립대학 도서관 등 노동신문이 비치된 곳에서 열람·복사만 할 수 있어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 통일부는 “VPN(가상 사설망)을 통한 우회 접속이 만연한 상황과 우리 사회 성숙도 및 체제 자신감을 고려할 때 현행 규제와 현실의 간극이 극심하다”며 “일반 국민들이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한 사이트 차단 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학계와 언론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이해 제고를 위한 정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속 차단 조치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 접근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북한 및 통일 관련 공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의 자유로운 활용 가능성을 축소 시킨다”며 지난달 12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역시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전 SBS 북한전문기자는 “대통령도 얘기했다시피 우리 국민의 수준을 볼 때 선동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대통령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안보 위해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안정식 전 기자는 다만 “향후 남북 통합 국면에서 남북 상호 언론개방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를 미리 써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전했다. 안 전 기자는 이어 “처음엔 신기해서 (북한매체를) 볼 수 있겠지만 몇 번 보면 재미없을 거다. 매일매일 김정은이 훌륭하다는 쓸데없는 소리를 걷어내고 몇몇 문장에 담긴 숨은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북한매체 개방과 관련한 여론은 어떨까. 경향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전국 성인 1010명에게 북한 매체 접근 개방 여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50%가 ‘현재와 같이 일반 국민의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40%는 ‘일반 국민도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고 답했고, 11%는 ‘모름·응답 거절’로 나타났다.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의견이 다수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선제적 북한 매체 개방을 통해 북한사회에도 해외 매체 개방을 압박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점, 국가보안법 아래 제약받던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더욱이 윤석열정부 통일부도 2023년 1월 노동신문 PDF 파일의 온라인 공개 방침을 발표하는 등 북한매체 개방을 추진했던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사안은 더 이상 진보·보수의 영역이 아니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앞서 윤석열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이 동독언론들의 열람을 허용했음에도 동독의 선전에 현혹되지 않았듯이 우리 국민들도 북의 노동신문을 보며 그냥 믿고 현혹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 체제가 어떤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며 “북의 자료에 대해 개방할 때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