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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장동혁의 ‘맹탕 쇄신’, 그 뒤에 숨은 ‘대안 부재’의 공포
투데이신문
하지만 당 안팎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윤석열 절연’을 계엄, 탄핵 도강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장 대표의 쇄신안 발표에 대한 국민의힘 반응은 엇갈립니다. 주류들은 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탄핵의 강도 건너겠다고 선언한 만큼 ”이제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장 대표의 뜨뜻미지근한 쇄신안에 대해 비주류 소장파들은 ‘속에서 열불이 난다’고 표현할 만큼 격앙돼 있습니다. ”아직도 장 대표가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인지 부조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자회견은 익히 예상 가능한 수준.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쇄신이라는 단어는 국민들이나 정치권에서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때 의미가 있다. 국민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파격적인 자기 쇄신안을 내놓을 때 반응한다. 그래야 ‘이제 야당이 좀 변하겠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의 자기방어밖에 없었다. 야당 대표는 정국을 주도해나가는 예민한 정국 인식 능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정국을 주도해나갈 때 국민들이 응원해주고 지지한다. 이만큼 반성했으니 봐달라는 식의 투정으로는 안 된다.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지금의 당 지지율을 보면 정말 한가한 소리다. 장 대표는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그 기회를 허망하게 날리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계엄의 강을 건너겠다”는 메시지는 장 대표 자신이 1년 넘게 붙들고 있던 ‘의회 폭거 맞선 계엄’ 논리의 사실상 철회를 뜻하기 때문에 지지층들에게 “윤석열을 버리진 않되 사건 자체는 버리는” 어정쩡한 배신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큽니다.
윤 전 대통령과의 명시적 절연이 빠진 만큼 윤석열 정권의 내란 책임을 당 차원에서 인정하고 끊어낸 사과라기보다는 6·3 지방선거를 앞둔 전술적 거리 두기, ‘선거용 사과’ 정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현장의 싸늘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가 이런 ‘맹탕 쇄신’을 과감하게 내놓는 배경에는 국민의힘이 처한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대안 부재’라는 공포입니다.

이렇게 장동혁 체제를 밑에서부터 뒤흔들 만한 강력한 대권주자가 부상하지 않다 보니 “불만은 많지만 갈아탈 사람도 없다”는 묘한 자포자기 분위기가 점차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오는 6월 지방선거라는 거대한 파도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당장 장동혁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대위를 꾸리거나 전당대회를 다시 치르기엔 물리적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선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폭풍우 한가운데서 선장을 바다에 던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당 내부에서조차 “장동혁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쓴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어정쩡한 상황은 장 대표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동시에 그를 지탱하는 역설적인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현 지도부를 흔들 경우 당은 걷잡을 수 없는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장동혁 체제‘를 유지하며 지방선거까지 버티는 것이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합의한 암묵적인 카르텔인 셈입니다.

이렇게 장 대표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과거와의 단절 없는 미래 선언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미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극우 인사와의 협력은 아군을 선별적으로 선택하겠다는 모순의 전략입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장동혁 대표의 사과는 쇄신을 위한 신호탄이 아니라 지방선거라는 인질극 속에 갇힌 보수 정당의 ‘생존 신고’였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이 장동혁의 가장 큰 무기이자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가진 가장 큰 비극입니다.
과연 이 불행의 뫼비우스 띠를 제1야당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죽어야 산다는 것, 그 단순한 진리를 장동혁 대표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의 제왕이 되려 하지 말고 보수 재건의 밑거름이 되려 할 때 진짜 사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