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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렌탈 패밀리', 슴슴하고 깊은 사람 이야기에 파격 한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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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예 여성감독 히카리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더웨일)의 연기파 브렌든 프레이저를 내세운 인간미 넘치는 작품을 공개했다.
영화는 일본에 사는 외국인의 삶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필립(브렌든 프레이저)은 7년을 도쿄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에 섞이지 못한 모습이다. 그의 삶 또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전문 배우이지만 일감을 찾지 못하고 인형탈 알바 따위나 구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중 에이전시 소개로 '렌탈 패밀리'를 알게 된다. 역할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돈만 내면 어떤 역할이든 완벽히 수행해준다. 집에서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간단한 일부터 실제 결혼식에서 신랑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사장 타다(히라 타케히로)는 '외국인 배우'라는 희소성을 탐내고 필립에게 입사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서비스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남의 현실에 함부로 끼어들어 그들 삶을 망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돈 때문에 수락하기는 했지만 결혼식장에서 '사케나 홀짝이는' 간단한 역할마저 실패할 위기에 처한다. 죄칙감에 화장실로 숨어버린 그를 에이스 직원 아이코(야마모토 마리)가 찾아 설득해 끝내 임무를 완수하게 만든다.

그녀의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업에 대한 자부심은 사건을 끝내고 확인하는 '고객의 행복한 눈빛'이 원천이다. 하지만 몰이해를 이유로 행동을 거부하는 필립에게 그녀는 "일본인을 이해 못하는 외국인"이라며 원망 섞인 말을 던진다.

하지만 아이코의 평가와 무관하게 필립은 렌탈 업계에서 희귀한 외국인으로서 단숨에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다. 의뢰자의 가족과 한동안 함께 지내는 일이다. 그런데 다들 '한성깔'한다.
외신 기자를 가장해 만났지만 글쟁이를 싫어한다고 면전에 뱉어버리는 괴팍한 노배우 키쿠오(에모토 아키라),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자신을 버리고 고국으로 가버린 아빠를 미워하는 미아(섀넌 마히나 고먼). 첫만남부터 그는 진땀을 뺀다. 앞으로 펼쳐진 험난한 미래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뭐든지 극단으로 나눠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환상을 파는 낮과 집에 돌아와 쓸쓸히 맥주를 홀짝이는 현실의 밤, 완벽히 계약한대로 익숙하게 움직이는 일본인과 이를 이해 못하고 당황하는 외국인, 그리고 신과 인간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에서 알게 모르게 편안함과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 극이 시작하고 한동안 각 요소 간 괴리에서 느껴지는 파격과 공감이 재미의 원천이다.
중반에 접어들며 키쿠오는 안정적인 구도에 어깃장을 놓는다. 에모토 아키라는 '파괴신'과 같은 키쿠오를 한 캐릭터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연기했다.

때로는 말 안듣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이고, 때로는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는 관록을 표출하고, 또 때로는 청춘으로 돌아간 것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키쿠오를 자신만의 색채로 표현해냈다. 일본의 역할 대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끌어간 전반부에서 키쿠오의 무게감이 어느새 극을 장악한다.

브렌든 프레이저 또한 특유의 맑은 눈빛으로 필립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일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외국인이 어느새 중심을 잡고 본인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을 과장 없이 진실되게 표현했다. 조용히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는 브렌든 프레이저 장점이 잘 드러났다.
두 배우의 연기에서 우러난 깊은 맛은 훌륭했지만 이분법적 접근이 지나쳐 내용이 단조로워진 점은 아쉽다. 일본 문화에 일정 수준 이해도를 갖추고 있는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극 전반부를 '독특한 소재' 하나만으로 끌고 가기에는 동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일본인과 외국인의 갈등 구도, 그리고 일본 문화에 서서히 젖어드는 외국인이라는 컨셉 또한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과하지 않은 전개, 배우들의 강력한 연기력과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이를 전달하는 음악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한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추가하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욘시와 작곡가 알렉스 모서스가 만든 감각적인 선율은 필립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이시킨다.

'렌탈 패밀리'는 일본 사회 단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사람과 사회를 담백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표현한다는 히카리 감독 명성에 맞게 불편함 없이 웃고 울 수 있다. 25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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