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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3억~4억 원대 집을 사면 죽는 병에 걸렸어?”
위키트리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줄짜리 도발적인 질문의 파장이 부동산 커뮤니티를 넘어 맘카페와 SNS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를 고집하는 일부 수요를 향해 “눈높이를 낮추면 선택지는 충분하다”는 취지의 글이다. 댓글창은 순식간에 뜨거운 공방으로 달아올랐다.
논쟁의 발단은 한 블라인드 이용자가 최근 올린 장문의 글이었다. 그는 “청년·신혼·무주택 세입자들이 집이 없어 절망한다”라면서 “그게 혹시 서울 핵심지 신축만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파주 운정, 김포한강신도시 등지의 2010년대 준신축 아파트 매물의 가격을 캡처한 사진을 함께 올렸다.
가격 정보에 따르면 경기 파주시 목동동과 야당동 일대의 전용 84㎡ 아파트의 가격은 3억6000만~4억원 선이다. “커뮤니티, 지하주차장, 4베이 구조, 학군·상가·배달 인프라까지 갖춘 집이 이 가격”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글쓴이는 “서울 외 지역은 아예 선택지에서 지워놓고 ‘집이 없다’고 하는 건 과장”이라며 “3억 원대 집도 충분히 살 수 있는데 왜 모두가 강남·마용성만 보느냐”고 지적했다.
곧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비판성 댓글의 핵심은 ‘서울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냐’는 반발이었다.

한 이용자는 “직장이 서울인데 왕복 두세 시간 통근을 감수하라는 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아이 키우며 출퇴근까지 감당하면 삶의 질이 무너진다”고 썼다. 또 다른 댓글은 “결국 집값은 자산인데 서울과 외곽의 상승 여력이 같다고 보느냐”며 “같은 돈이면 서울 소형이라도 들어가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특히 직주근접 문제는 가장 큰 쟁점이었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에게 경기 외곽으로 나가라는 건 삶의 기반을 옮기라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학군, 의료, 문화시설, 인적 네트워크 등 ‘도시 인프라의 밀도’가 단순한 가격 비교로 환산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원글에 공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신축 아니면 집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더 문제”라거나 “자산 상승만 기대하며 무리하게 대출 끌어안는 게 더 위험하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예전 세대도 외곽에서 시작해 점차 갈아탔다”며 “처음부터 강남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오히려 청년을 더 좌절시킨다”고 적었다.
결국 댓글창은 ‘서울은 상징이자 자산’이라는 인식과 ‘거주 안정이 우선’이라는 현실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 됐다.
이번 논쟁은 단순한 지역 비하나 자존심 싸움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집값 상승기와 하락기를 반복하며 형성된 ‘서울 불패’ 학습효과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외곽의 가격 조정이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의 경우 3억~4억원대 매물이 적지 않지만, 실수요자들은 향후 가격 흐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지금 외곽을 샀다가 더 떨어지면 어떡하냐”는 걱정과 “서울은 결국 다시 오른다”는 기대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 다른 배경에는 세대 간 인식 차도 깔려 있다.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서울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현재 2030세대는 고점 논란 속에서 ‘잘못 사면 평생 발목 잡힌다’는 공포를 안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집이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인생의 승패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이냐 수도권이냐의 선택이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근 시간·교육 환경·자산 가치·심리적 안정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결정이라는 점도 다시 확인됐다.
집값 그래프보다 더 가파른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일지 모른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위로로 들릴지, 또 다른 압박으로 들릴지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집을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가장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