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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시대①] ‘국민 잡지’ 샘터 무기한 휴간…종이 매체의 내일을 묻다
투데이신문세대가 지날수록 아이들은 종이만의 감성을 경험하기 어려워지고 종이 매체만이 갖는 매력을 아는 이들이 사라질수록 종이 매체의 위치는 위태로워진다. 투데이신문은 본 기획을 통해 저물어가는 종이 매체를 부활시킬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샘터의 휴간은 국내 ‘종이로 읽는 문화’가 쇠약해져가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70년 4월에 창간된 월간 샘터는 생활 속 수필과 체험기, 시와 콩트까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싣는 ‘국민 잡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는 1970년 창간 이후 빠르게 국민 대표 교양지로 등극했다.
이후 월 판매량이 50만부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독자층을 형성했다.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서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샘터는 종이 잡지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의 정점을 보여줬다.
이런 샘터가 멈춰 선 이유는 최근 몇 년의 적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샘터의 위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누적된 마모에 가까우며, 이 같은 샘터의 생애는 한국 종이 잡지의 흥망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국내 종이 잡지 시장의 기반이 흔들리는 동안 샘터는 여러 차례 방향을 바꾸고 생존 전략을 시도했지만 미디어 시장의 변화 앞에 점점 체력이 닳아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외환위기를 전후로 자금난을 겪게 된 샘터는 1999년 판형 변경을 통해 변화에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후 국민 독서량이 급감하고 독서 환경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며 잡지를 소비하는 습관 자체가 흔들리면서 샘터뿐만이 아니라 도서출판 고려원 등이 판매 부진으로 부도 처리되는 등 출판 산업이 전체적인 부진을 겪었다.
2019년 이후 샘터는 휴간을 검토할 만큼 재정난이 깊어졌고 당시에는 독자들의 구독 참여와 기업 후원으로 가까스로 발행을 이어갔다. 샘터는 2021년 ‘MZ 친화’ 리브랜딩을 통해 제호·표지·편집 방향을 손보며 단행본형 잡지에 가까운 형태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2026년 1월호를 끝으로 샘터는 다시금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샘터는 휴간 이유에 대해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샘터 한재원 편집장은 “가장 큰 건 독자들이 온라인 매체에 익숙해지면서 종이 잡지를 덜 찾게 된 점이다. 그 영향으로 반품이 늘고 입고량이 줄면서 유통이 점점 협소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종이 잡지를 찾는 독자가 줄어 유통과 판매가 위축되는 가운데, 종이값·잉크값 등 제작비는 계속 오르는데 정기 구독자는 줄어드는 것이 가장 부담이었다”고 짚었다. 한 편집장은 한샘을 되살리기 위해 회사 재정 복구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세이집 단행본 출간과 필사 책 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샘터의 명문장을 알리고자 준비 중이다.

샘터를 포함한 여성중앙, 월간 인물과사상 등 유망한 잡지들이 시대의 변화 속 발행을 잠정 중단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종이 잡지 생태계의 위기는 디지털 시대 도래로 인한 오프라인 유통망 약화, 광고 체계의 변화, 비싸지는 인쇄비 등 다양한 원인으로 초래됐다.
먼저 잡지는 종이 매체이나 국내 오프라인 유통망 자체가 점차 약해져 왔다. 그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서점 수다. 최근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한국서점편람’ 집계에 따르면 2003년 3589개였던 서점 수는 꾸준히 감소했고, 2320개를 기록한 2019년부터 크게 늘지 않고 유지세를 보이고 있다.
광고 체계의 변화도 잡지 매체 쇠락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잡지 생태계에서 광고는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판매 부수가 흔들려도 광고가 버텨주면 지면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광고 시장의 중심은 종이에서 디지털로 이동했다. 방송통신광고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온라인 광고비는 10조1011억 원으로 전년 대비 7.9% 증가했다. 반면 전통 매체 영역은 정체 혹은 감소 흐름을 보였다.
잡지업계 내부에서도 광고 감소에 대한 타격이 매출에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잡지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잡지산업 총매출액은 5315억원으로 2년간 21.1% 하락했고 잡지 매출에서 광고 비중은 31.2%로 나타났다.
조사를 보면 잡지업계 총지출액은 4669억원으로 2년간 18.3% 감소했고 평균 발행부수는 6544부(2021년)→3947부(2023년)로 약 40% 줄었는데도 비용 항목 중 인쇄제작비 비중(40%)이 여전히 가장 컸다. 같은 조사 요약에서도 업계가 비용 증가와 매출 감소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짚었다.
광고와 독자는 줄고 종이는 비싸지며 유통은 좁아지는 흐름이 잡지가 설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일대 미디어출판학과 한주리 교수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그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종이 매체 전반의 가격이 해마다 오르고 있다”며 “다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원가가 뛰어도 소비 위축에 대한 부담 때문에 판매가를 충분히 인상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서율 하락도 원인으로 거론되는데, 이 역시 경기 둔화로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 한 요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떤 비즈니스 분야인지를 막론하고 향후 시장은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소비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큐레이션을 접목한 형태의 비즈니스가 확대될 것”이라며 “잡지 산업에 있어서도 종이가 갖는 물성적 특성을 활용해 소장 가치를 가진 오브제로서의 잡지 출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시장조사 및 컨설팅 기업 Fact.MR의 최근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잡지 시장,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전문 잡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전문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는 출판물이 견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향후 단순 구독 형태보다 멤버십 비즈니스로의 확장을 통해 ‘잡지를 읽는 사람’만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잡지협회(이하 협회)는 “잡지는 문학·예술·과학·산업·생활 전반을 아우르며 시대의 기록을 남기고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원천이 돼 왔지만 여전히 정책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며 “디지털 전환과 AI 시대를 맞이한 지금도 충분한 지원과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현 시점 잡지 생태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독자에게 닿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일 것”이라며 “앞으로 잡지는 단순한 종이 매체를 넘어서 신뢰받는 전문 콘텐츠 브랜드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깊이 있는 읽기 경험과 맥락이 담긴 정보 제공이야말로 잡지가 다시 선택받는 길”이라며 “협회 차원에서는 AI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디지털 유통 연계, 대형 포털 사이트와 제휴 서비스 등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자책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국민 독서실태조사를 보면 2023년 기준 성인의 전자책 이용률은 19.4%로 매년 소폭 상승하거나 유지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를 중심으로 전자책 이용률은 51.9%에 달해 세대가 지날수록 전자책 이용률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반면 종이책 독서율은 매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성인의 종이책 이용률은 32.3%로 2021년에 비해 8.4%p 감소했다. 이처럼 종이책 이용률은 2013년 이래 매해 하락하고 있다.
샘터의 무기한 휴간과 독서율 하락에서 보이듯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종이 매체 산업의 기반을 빠르게 흔들고 있다. 이 가운데 업계와 전문가들은 종이 매체가 대량 유통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취향 기반 큐레이션, 소장 가치 강화, 커뮤니티·멤버십 확장 등으로 ‘신뢰받는 전문 콘텐츠 브랜드’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