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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은 문화의 모세혈관”…김포의 문화 향유 공간 ‘책방짙은’ [공간을 기억하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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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의 이야기(36)] 경기도 김포시 책방짙은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짙은의 책

2021년 김포시 장기동에 문을 연 ‘책방짙은’은 ‘좋아할수록 짙어지는’ 취향을 반영하는 서점이다. 약 9년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최수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결국 학원 문을 닫게 됐다. 이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용기’를 얻은 최 대표는 이를 손님,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서점 운영을 시작했다.

최 대표는 이 과정에 대해 “소설 속 화자가 사업 실패 이후 오히려 자유를 느끼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대목이 깊이 와닿았다”며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라고 말했다.

작은 동네서점이지만, 그만큼 나만의 취향을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향을 받은 조르바의 이름을 책방명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짙은’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최 대표는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끝까지 깊이 빠져드는 성향이 있다. 예전에 저를 소개하는 글을 통해 ‘무엇인가에 빠지면 짙어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는데, 책방도 ‘좋아할수록 짙어지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어우러지며 함께 짙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책방짙은의 책 또한 좁은 대신, 깊다. 대형 서점처럼 ‘많은 책’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취향이 분명한 큐레이션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특히 시집, 고전 문학, 그림책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예술, 소설과 에세이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매량보다는 책방의 정체성과 맞는 지를 고려하는가 하면, 독서 모임에 좋은 반응을 얻은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최 대표는 “모임과 연결되거나 창작자들의 영감을 북돋울 수 있는 책을 중점적으로 선보이고 있다”고 그 기준을 설명했다.
◆ 독자와 창작자 함께 ‘즐기는’ 김포의 문화공간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문화 공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김포에 대해 언급한 최 대표는 “우리 책방이 지역 주민들이 문화 활동을 즐기는 작은 거점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현재 책방짙은에서는 시 읽기 모임, 고전 낭독 모임, 그림책 모임, 글쓰기 모임, 책 만들기 모임, 커피와 차 모임 등 10개가 넘는 상시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마르셸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등 혼자서는 읽기 어려운 고전 작품들을 함께 읽으며 ‘완독’하는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최 대표는 이 같은 모임들에 대해 “작가와의 만남, 강연, 전시 등을 진행하면서 “김포에도 이런 공간이 있어서 좋다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는 후기를 전하면서 ”동네책방은 ‘문화의 모세혈관’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작은 동네 곳곳에까지 문화의 실핏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모임을 통해 취향을 나누는 것을 넘어, 이를 ‘활동’으로 연결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책을 만드는 책방’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짙은의 목표를 설명한 최 대표는 “창작그룹 짙은:을 통해 독립출판 작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책방에서 전시와 출판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책방의 활동을 기록한 매거진을 발간하는 등 지역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등 창작자들이 ‘짙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랐다.

즉 책방짙은이 최종적으로는 책을 넘어 예술 전반을 향유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곧 최 대표가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가장 큰 보람은 손님들의 변화를 볼 때 느낀다”며 “처음엔 온라인 구매에 익숙했던 분들이 이제는 책방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단골이 되고,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해주실 때 큰 힘을 얻는다. 책방 모임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아가 책을 출간하거나 전시를 여는 분들을 볼 때 기쁘다. 책방이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공간이 된다는 점이 책방을 계속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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