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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왕열 9년 만에 임시 인도, 옥중 마약 밀수 구조적 한계 확인
아주경제
은 수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도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남긴 범죄는 가볍지 않다. 경찰은 박왕열이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필로폰 4.6㎏을 밀수하고, 30억원 상당의 마약을 국내에 유통한 혐의를 확인했다. 공범만 236명에 달한다.
이 사건의 본질은 명확하다.
감옥에 있어도 범죄를 멈추지 않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막지 못하는 시스템이다.
감옥 안에서 조직을 움직였다
박왕열은 필리핀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텔레그램 닉네임
로 활동하며 국내 마약 유통을 지휘했다.
국내에서는 '던지기' 수법이 활용됐다.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좌표를 전달하면 구매자가 회수하는 방식이다.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으로 퍼졌다.
이 같은 '옥중 범죄'는 얼마나 이례적일까.
태국 지사를 보유한 메가엑스 법률사무소의 전형환 대표변호사(형사·마약범죄 전문)는 단정적으로 말한다.
"동남아 교도소에서 수감자가 휴대폰을 반입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실제 동남아 교정시설에서는 금전 제공을 통해 휴대전화 반입, 외부인 출입, 심지어 사적 공간 조성까지 가능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교도관 급여가 낮고, 외부 감시가 부족한 구조에서 교도소는 통제 공간이 아니라 거래 가능한 공간으로 변질된다.
범죄는 감옥에서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통신이 가능하다는 수준이 아니다. 교도소 자체가 범죄 네트워크의 거점이 된다는 점이다.
전 변호사는 박왕열 사건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도주, 현지 범죄, 옥중 원격 범죄라는 3단계가 한 인물에게 순차적으로 나타난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실제로 박왕열은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 이후 탈옥과 도주를 거치며 범죄를 확장했고, 수감 이후에는 마약 유통으로 영역을 넓혔다.
즉, 범죄는 끊기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 형태를 바꿔 진화한다.
동남아에서 한국까지…마약은 이렇게 움직인다

전 변호사는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마약 흐름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먼저 공급 단계다.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접경 ‘골든 트라이앵글’이나 필리핀 현지에서 필로폰 등이 생산된다.
다음은 유통 단계다.
국제 택배, 항공 화물, 선박 컨테이너를 이용하거나, '지게꾼'이라 불리는 운반책이 체내나 수하물에 숨겨 반입한다. 최근에는 텔레그램 등 암호화 메신저와 가상화폐가 결합되면서 추적이 더 어려워졌다.
마지막은 판매 단계다.
국내 유통책이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주문을 받고, '던지기' 방식으로 마약을 전달한다.
전 변호사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급–유통–판매가 국가별로 분리된 구조입니다. 물리적 거리가 오히려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 됩니다."
이 구조에서는 총책이 해외, 심지어 교도소 안에 있어도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국경은 차단선이 아니라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완충지대가 된다.
왜 9년 동안 못 잡았나
그렇다면 왜 박왕열은 9년 동안 국내로 송환되지 못했을까.
핵심은 '주권'이다.
전 변호사는
"한국 수사기관의 권한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만 행사된다"
며
"해외에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상대국 동의 없이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
고 설명했다.
범죄인 인도 조약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상대국이 거부하면 송환은 불가능하다. 코리안데스크 역시 수사권이 없는 연락관 역할에 그친다.
결국 박왕열 송환이 9년이나 걸린 것은,
수사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의 문제였다.
임시 인도…최선이지만 한계
이번 송환은 '임시 인도'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 뒤 다시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는 절충안이다.
전 변호사는 이를
"현실적 제약 속 최선의 방법"
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동시에 한계를 짚었다.
"정상회담 수준의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제도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모든 사건을 정상외교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왕열은 빙산의 일각"

전 변호사는 단언한다.
"박왕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동남아 교도소에 수감된 한국인 중에서도 외부와 연결된 채 범죄를 이어가는 사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약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온라인 사기, 불법 도박까지.
범죄 유형만 달라질 뿐 구조는 같다.
동남아는 이미 한국을 겨냥한 초국가 범죄의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문제는 실행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전 변호사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수사 공조 강화다.
단순 연락관이 아닌 실질적 수사 권한을 가진 인력을 상주시키거나 합동수사 체계를 상설화해야 한다.
둘째, 해외 수감자 관리다.
현재는 해외 교도소에 수감된 한국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파악할 시스템 자체가 없다. 정기적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범죄인 인도 제도 개선이다.
조약 대상 국가를 확대하고, 마약·보이스피싱 등 초국가 범죄에 대해서는 간이 인도 절차를 도입해 속도를 높여야 한다.
전 변호사는 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박왕열 한 명을 데려오는 데 9년이 걸렸다.
그 사이 국내로 유입된 마약과 범죄 피해는 고스란히 남았다.
같은 구조가 유지된다면 다음 범죄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