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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공백 심화 속 ‘형사특례’ 법안, 국회 통과 주목
투데이신문
17일 취재에 따르면 국회는 이날과 오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선거구 획정안과 민생법안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도 상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여야 합의로 추진됐고 상임위와 법사위 문턱도 이미 넘은 만큼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르면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법안 추진은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의료사고 발생 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처벌을 제한하는 특례 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사법 리스크가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관련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6만2594건으로 전년보다 24.7% 늘며 최근 5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조정·중재 신청 역시 증가세를 보이면서 의료사고를 둘러싼 분쟁 해결 수요가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술 관련 사건이 전체의 46.1%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보였는데 외과·신경외과·산과 등 필수의료와 맞닿은 분야에서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의료분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필수의료는 인력 부족을 심하게 앓는 분야기도 하다. 올해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주요 필수의료 진료과 지원은 사실상 붕괴 수준에 가깝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인원 중 산부인과는 188명 모집에 1명, 흉부외과는 65명 모집에 2명만 지원했다. 소아청소년과는 206명 모집에 5명, 외과는 215명 모집에 10명, 내과는 700명 모집에 27명 지원하는 데 그쳤다. 응급의학과 역시 224명 모집에 7명만 지원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의료진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기소 제한 특례다. 다만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 설명의무 이행,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것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전부터 논란은 적지 않다. 환자단체와 시민사회는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에 대해서까지 형사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환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시민모임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와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는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가족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에도 이번 개정안이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손해배상만으로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를 막는 제도는 우리 법 체계에 유례가 없다”며 “소방, 경찰처럼 고위험 공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종에도 없는 형사면책 특혜를 의료인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과 과도한 특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료계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현장에 적용될 세부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해 실질적인 보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소아진료처럼 환자 상태가 급변하거나 제한된 정보 속에서 판단해야 하는 필수의료 영역에서는 사후적으로 ‘예측 가능성’이나 ‘통상적 진료’를 기준 삼아 책임을 따지는 방식이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회는 “환자나 수술 부위를 혼동해 수술한 경우, 수술 후 체내에 이물질을 남긴 경우, 혈액형이 맞지 않는 수혈을 한 경우 등 객관적으로 명백한 잘못은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있지만,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필요한 진단이나 치료를 하지 않은 경우’나 ‘통상적인 진료 수준에서 현저히 벗어난 경우’ 같은 표현은 해석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문제는 소아진료에서 더욱 크게 발생할 수 있다. 소아 환자는 성인과 달리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진료 과정에서도 보호자의 설명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사안이지만 필수의료 위기 대응 차원에서 제도 도입 자체는 더 미루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법안의 완성도와 별개로 의료분쟁 조정의 틀을 우선 마련한 뒤 시행령과 시행규칙, 후속 입법을 통해 보완해 나가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법안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공감대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본보에 “그동안 의료분쟁조정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내용을 어떻게 담느냐를 두고 입장이 갈렸던 것”이라며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단 법을 제정한 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처럼 논의만 계속하다 보면 결론을 내기 어렵다”며 “이미 본회의까지 올라온 상황인 만큼 일단 마무리를 짓고 이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덧붙였다.
필수의료 인력난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필수의료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 수단이 필요한데 이 법안도 그 중 하나”라며 “정책이라는 것이 기대를 100% 충족시키기는 어렵지만 현재 할 수 있는 대안은 모두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