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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찍먹파’인데”… 교사들 죽음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악성 민원 현실
시사위크
2023년 서울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또 한 명의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5월 22일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고(故) 현승준 교사는 유서에 학부모와의 갈등과 지속적인 민원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교권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 ‘스승의 날’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가운데, 현 교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교육 현장에서는 “달라진 것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학생들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교사들 짓누르는 악성민원의 그림자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교사 A씨(48)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서이초 사건 이후 약 6개월 정도는 반짝 조용한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이후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악성 민원이 들어오고, 결국 교사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말도 안 되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지난달에는 급식으로 탕수육이 나왔는데, 자기 아이는 ‘찍먹’을 좋아하는데 왜 소스를 다 부어놨냐는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체감상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런 민원이 들어온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 교사들의 경우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로감과 압박이 훨씬 크다고 입을 모은다.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 보다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기간이 긴 데다, 학부모와의 관계 역시 장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교사 B씨(40)는 “15년 정도 교직 생활을 했는데, 점점 교사들의 소명 의식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는 시도보다 ‘오늘 하루도 조용히 안전하게 지내자’는 마인드가 강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이 뭘 하려는 생각도 안 들고, 의욕이 없으신 분들도 많다. 젊은 교사 중에선 이직 하는 경우도 은근 많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학부모 민원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휴직, 병가, 휴가 사용이 정말 많다”며 “민원을 넣는 부모님이 10명 중 1~2명꼴인데 그로 인해 교사들의 의욕이 많이 꺾이고 협조적인 학부모까지도 피해를 보게 되는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악성민원으로 인한 교사들의 고충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2025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 가운데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전체 438건 중 199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울러 교육 현장에서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질문에는 ‘학생‧학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교권이 침해될 때’라는 응답이 67.9%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 과반 넘는 교사 우울 증상 호소… “교사 전담 심리 상담가 필요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단순한 불만 제기를 넘어 교사들의 정신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녹색병원이 교사 6,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교사 직무 관련 마음(정신) 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3.2%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경도 우울 증상은 24.9%, 심한 우울 증상은 38.3%였다. 특히 학부모 상담 횟수가 많을수록 우울 증상 비율 역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경기도 안양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C교감(51)은 “지원이 있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학교마다 전문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비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분들도 계시긴 한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려면 ‘출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그렇다보면 (치료를 받는다는 게) 티가 난다. 선생님들끼리 그런 일이 좀 창피할 수밖에 없다”며 “치료를 받기 위해선 자기 수업을 대신해 줄 다른 선생님을 구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상대방에게 설명해주는 것도 힘들고 상황을 이해 안 해주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 “학부모 악성민원, 맞고소 가능해져야”

그러나 현장 교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C교사(47)는 “교육부 정책은 학교 현장에 와보지 않고 만드는 정책이다. 학교에 대해 1도 모를 것”이라며 “어린 아이들이 있는 학교는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정말 촘촘하게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제기하는 사적민원을 제도적으로 차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장애 학생처럼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아이만 특별하게 봐주길 원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벌금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교권정책본부 국장은 “학부모들이 교육청,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등 다양한 온라인‧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부당한 악성 민원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악성 민원에 대한 맞고소제를 통해 불합리한 민원은 국가가 법률과 제도로서 처벌을 하는 게 필요하다”며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되면 소송 주체가 교사가 된다. 교사가 심적인 피해자이며 동시에 정당한 교육활동을 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입증 책임을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국가가 A부터 Z까지 악성 민원에 대한 소송을 책임지고 법적‧도덕적‧행정적 책임을 지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