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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5.18 LA 의용군 및 전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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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간직해 온 전보에는 짧은 영어 문장이 적혀 있었다. “Long live Korea. Long live Democracy(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 1980년 5·18 직후 미국 LA에서 받은 이 전보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보낸 것일까.

방송에 따르면 1980년 5월 당시 국내 언론은 보도 통제와 검열로 광주의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반면 외신은 계엄군의 시민 학살과 광주 상황을 해외로 실시간 타전했고 이를 접한 미국 교포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 한국민주학생총연합회(KSAD)를 중심으로 한 한인 대학생들은 광주를 돕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학생들은 “우리가 한국에 있었으면 광주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실제 광주로 향할 의용군 모집을 추진했고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이들까지 포함해 모두 17명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비자 문제 등으로 광주행이 무산되자 이들은 다른 방식의 행동에 나섰다. “같이 피를 흘리자”는 의미로 대규모 헌혈 시위를 벌였고 수백 명이 참여했다. 이어 1980년 5월 24일부터 사흘 동안 LA 적십자사를 점거하며 “광주에 피를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농성도 진행됐다.
그러나 결국 광주는 최종 진압됐고 현지 농성도 격론 끝에 해산됐다.
농성 뒷정리를 위해 남아 있던 당시 25살 대학생 김률 씨는 LA 적십자사 혈액원장으로부터 한국에서 온 전보 한 통을 전달받았다. 전보에는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김률 씨는 농성 해산 2~3일 뒤 해당 전보를 받았다고 기억했다.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지난해 12·3 계엄 사태를 보며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45년 전 기억을 다시 꺼냈다고 밝혔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전보 발신자를 찾기 위해 본격적인 추적에 나섰다.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외신기자와 미국 평화봉사단원,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외국인 선교사 단체 ‘월요모임’, 5·18 시민군과 연구자들까지 폭넓게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5·18 당시 LA 교포사회가 실제 의용군 파견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고 광주 최종 진압 직후 현지에 남아 있던 외국인 선교사가 참상을 기록한 육성 증언 녹음도 46년 만에 최초 발굴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마지막 전보 발신자를 찾는 과정을 따라가며 5·18 민주화운동이 남긴 연대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KBS 1TV ‘시사기획 창’ ‘5·18 46주년 기획 – 발신자를 찾습니다’ 편은 19일 밤 10시 방송된다.
※ 해당 글은 아무 대가 없이 작성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