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읽음
나홍진 신작 호프, 칸 경쟁 부문서 한국형 SF 대작 공개
위키트리
0
영화 '호프'의 한 장면.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김소미 씨네21 기자가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 신작 '호프'를 보고 씨네21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꺼낸 말이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17일 밤 프랑스 팔레 드 페스티벌 그랑 뤼미에르 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이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김 기자는 전했다. 충격과 혼종에서 오는 당황, 그리고 즐거움. 김 기자는 "즐거운 당황이었다"고 했다.
'곡성'(2016) 이후 꼬박 10년. 나홍진 감독의 네 번째 장편 '호프'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제목은 영단어 '희망(Hope)'이자, 극 중 배경인 호포항의 영문 표기다. 나 감독의 네 편 모두 칸에서 공개됐지만 경쟁 부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격자'(2008)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2011)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비경쟁 부문에 각각 초청됐다. 공교롭게도 올해 칸 심사위원장은 박찬욱 감독이다. 박 감독이 칸에서 '올드보이'로 국제적 인정을 받을 때 심사위원장이 '펄프 픽션'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였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겹쳐 보인다.

김 기자는 영상에서 '호프'의 의미를 "규모의 영화로서 국제 무대에 존재감을 드러낸 한국 영화"로 짚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그간 서구에서 바라보는 한국 영화의 트레이드마크가 장르적 긴장감, 이야기의 밀도, 강렬한 정서였다. '호프'는 그 결이 다르다고 한다. 한마디로 규모의 영화다. 한국 영화 사사상 최대 규모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광활한 야외 로케이션과 실물 크기의 파괴 세트, 그리고 압도적인 스턴트 시퀀스로 채워져 있다. 김 기자는 "한국 영화가 규모의 영화로서 국제 무대에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건 굉장히 새롭게 여겨진다"고 했다. 한국 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 오른 것은 2022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 4년 만이다.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어촌 마을. 반공 표어 현수막이 곳곳에 걸린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호포항이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출장소장 범석이 마을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냥과 낚시로 하루를 보내는 건달 청년 성기(조인성) 일당도 처단에 나선다. 영화는 이 두 여정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외계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약 45~50분에 걸친 전반부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김 기자는 강조했다. "아무도 호랑이를 보지 못했고, 봤다는 말도 진의를 알 수 없으며, 모두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고 설명했다. '곡성'의 연장선에서 찾아낸 '현혹의 상태'가 이 전반부에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이 범석의 후배 순경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뤼미에르 대극장은 물론 바로 옆 드뷔시관에서도 큰 박수갈채가 터졌다. 김 기자에 따르면 영화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도 호쾌하고 터프한 액션을 선보인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규모감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제 캐스팅도 화제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 부부가 외계 생명체로 등장한다. 비칸데르는 황후 조르, 패스벤더는 전투 종족 마베이요 캐릭터를 맡았다. 테일러 러셀과 캐머런 브리튼도 주요 외계인 역을 소화했다. 이들은 고대 언어 기반의 독자적 언어 체계를 갖춘 지성체로 설정됐다.
'호프' 출연 배우들.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김 기자는 "모션 캡처와 페이셜 캡처는 훌륭하게 활용돼 배우들의 연기가 생생히 반영됐으나, 그 외양에서 배우들의 특질이 얼마나 느껴질지는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외계인의 외양은 '프로메테우스'를 부분적으로 연상시키고, 마블의 어떤 존재들과도 닮은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CGI 논란에 대해 그는 "초반부에는 아쉬움이 있었고 중후반부는 꽤 준수하다"면서 "개봉 전까지 편집과 함께 보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CGI의 기술적 실패와 영화의 미학적 실패는 구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오히려 생산적으로 논의될 부분은 '한국형 SF 괴수물의 크리처 디자인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봤다.

김 기자가 '호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꼽은 것은 ‘의미를 비우는 움직임’이다. 외계 생명체 등장 이후 영화는 망설임 없이 질주하고, 징치하고, 처단하고, 전투한다. 캐릭터들은 많은 경우 대화 대신 단말마 비명이나 욕설을 내뱉는다. 대사와 정보, 의미값이 대폭 제거된 영화라는 것이다.

"반공을 외치던 시절 맹목적 폭력이 있었듯 침입한 존재를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처단하려 하고 그 응징에서 쾌감을 느끼는 모습이 묘사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스스로 설정한 적이 이미 풍경이 돼버린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마치 다른 적을 발명해낸 이후 전투를 치르는 것 같다"는 독법이다.

스펙터클하고 야성적인 전투 이후 어떤 공허함이 남는다고 했다. '곡성'이 해석의 무한 증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흩뿌린 영화라면, '호프'는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고 공허함을 남기려는 영화 같다는 것이 김 기자의 인상이다. "‘호프’는 의미를 잃은 영화일까요, 아니면 의미의 자리를 비운 영화일까요?" 김 기자는 이 질문을 영화를 볼 관객에게 남겼다.

세계 초연 직후 외신들의 반응도 쏟아졌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데이비드 루니 비평가의 리뷰를 통해 '호프'를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 숨 돌릴 틈 없는 속도감, 또렷하게 구축된 인물들로 단숨에 관객을 끌어당기는 보기 드문 액션 스릴러"라고 평했다. 거의 전 장면이 대낮에 펼쳐지는 드문 액션 스릴러라는 점도 언급했다.

데드라인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으며, 할리우드가 만든 동종 영화를 오히려 압도한다"고 썼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영상미, 마이클 에이블스의 오케스트라 음악, 유상섭 무술감독의 스턴트 조율이 할리우드도 부러워할 수준이라고 했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나 감독이 전반부 1시간을 놀라운 에너지와 정밀함으로 연출했다"며 "괴수 영화의 스릴과 자동차 추격전, 슬랩스틱 코미디, 근육질 액션 안무를 뒤섞어 거칠고 신나는 스펙터클을 빚어냈다"고 평가했다.

버라이어티는 마지막 3분의 1이 숨 가쁘고 기이한 속도를 되찾으며, 모든 것이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하이웨이 추격전으로 절정에 달한다고 평하면서도, 영화가 주제적 무게나 정치적·철학적 서브텍스트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칸 경쟁 부문에 다소 어색하게 걸쳐 있다고 지적했다.

평론 사이트 넥스트베스트픽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교차한 듯한 영화로 묘사하며 "전반 1시간은 시작부터 압도적이고, 마지막 3분의 1에서 다시 한 번 강렬한 액션 시퀀스로 포효한다"고 호평했다.

반면 인디와이어는 나홍진의 이 블록버스터 괴수 영화가 형편없는 각본과 '미이라 2' 이후 최악 수준의 CGI 효과로 인해 무너진다고 혹평했다.

나홍진 감독은 칸 기자회견에서 속편 집필이 이미 완료됐다고 밝히며 "가능하면 속편을 만들겠다"고 했다. 나 감독은 '죠스', '리쎌 웨폰' 등 할리우드 영화들을 두루 참고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다만 "칸 방문 하루 전까지도 사운드 작업을 했을 만큼 시간이 부족했다"며 개봉 전 추가 작업이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