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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사 합의 임시봉합, 실질 이익 성과급제 도입 시급
최보식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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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의언론=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 지역장 전무]
과거 삼성전자의 독주를 지탱해 온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른바 '원 코퍼레이션(One Corporation)'의 시너지였다. 스마트폰(DX) 부문이 시장을 호령하며 천문학적인 현금을 벌어들이면, 그 자금은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미래의 판도를 바꿀 반도체(DS) 부문의 대규모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로 수혈됐다. 완제품이 벌고 부품이 미래를 담보하는 이 유기적인 선순환 구조야말로 거대한 업황의 파도를 넘나들던 삼성전자 특유의 핵심 DNA였다.

최근 노사 간의 극적인 잠정 합의로 파업이라는 최악의 셧다운 위기는 간신히 모면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주주와 산업계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이번 합의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파업을 피하기 위해 통증을 일시적으로 억누른 ‘임시봉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창사 이래 초유의 파업 위기 이면에는 단순히 노동 강도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경쟁사가 쏘아 올린 파격적인 보상 철학이 촉발한 '포모(FOMO,

나만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증후군'과 '보상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성과급 갈등의 도화선은 SK하이닉스의 보상 체계 개편이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성과급 상한선을 없애고 산정 기준을 공개했다. AI 붐을 탄 HBM 시장 선점으로 직원들이 수억 원대 보상을 쥐게 되자, 이는 곧바로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강한 비교 의식을 촉발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반도체는 막대한 고정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수년 주기로 찾아오는 극심한 다운턴(불황)을 버텨내야 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호황기에 상한선 없는 보상을 남발하는 관행은 단지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전 산업계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재무적 리스크와 투자 재원 고갈: 호황기 기준으로 치솟은 보상 기대치는 불황기가 도래했을때 고스란히 기업의 재무적 부담과 극단적인 노사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경기 변동성이 큰 자동차, 조선, 화학 등 핵심 제조업 전반으로 번져 대기업들의 장기 투자 재원을 고갈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산업 생태계 및 공급망 붕괴: 대기업 간의 과도한 연봉 게임은 반도체 생태계의 허리인 중소·중견 협력사들의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대기업의 인상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 협력업체들은 고질적인 인력난을 넘어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되며, 이는 결국 한국 제조업 공급망 전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부서 이기주의와 기술 경쟁력 악화: 철저히 단기 실적과 사업부별 보상에 매몰된 문화는 부서 간 장벽을 높인다. "내 부서의 성과가 아니면 돕지 않는다"는 이기주의는 융합 기술이 필수적인 차세대 기술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며,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기술 초격차를 갉아먹는다.

여기에 노동조합의 강경 투쟁을 정당화해 주는 외부의 정치·법적 환경까지 맞물리면서 갈등의 불씨는 더욱 커졌다. 특히 사용자 개념을 모호하게 확대하고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극도로 제한하는 법적·제도적 움직임(

노란봉투법

)은 노사 간의 힘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파업을 해도 잃을 것이 없다"는 식의 면책특권 시그널은, 24시간 중단 없이 돌아가야 하는 반도체 라인을 볼모로 삼는 강경 행동주의를 부추기는 울타리가 되었다.

잠정 합의의 안도 뒤에 가려진 진짜 불씨는 보상 체계의 불평등과 모순이다. 비록 큰 폭의 흑자는 아니더라도 묵묵히 제 몫을 하며 이익을 낸 사업부 직원들이, 정작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사업부 직원들보다 훨씬 적은 성과급을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적자 부서가 호황기 기억만으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고, 흑자 부서는 소외되는" 구조를 방치하는 한 내부의 갈등은 멈추지 않는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명쾌한 논리적 해법은 ‘전사 공동 성과 풀(Pool)’과 ‘사업부별 독립 풀’의 이원화 구조를 과감하게 도입하는 것이다. 전체 성과급 재원의 일정 비율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사의 버팀목이 되어준 흑자 사업부와 전사 기여도를 반영해 '안정적 기본 성과급'으로 보장해야 한다. 반면,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성격이 짙은 부문은 호황기에 번 돈의 일부를 불황기 완충 장치로 강제 적립하는 '성과급 이연제(Clawback)'를 도입해야 마땅하다.

또 다른 시급한 과제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착시를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노조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요구하지만, 여기에는 거대한 함정이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나 환차손 등이 반영되어 실제 회사의 곳간에 남는 돈인 '당기순이익'은 적자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순이익에서 손실이 나고 있는데 장부상 영업이익이 났다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은 기업의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다.

따라서 성과급의 평가지표(KPI)를 영업이익이 아닌 '경제적 부가가치(EVA)'나 '잉여현금흐름(FCF)'으로 전환해야 한다. EVA는 영업이익에서 투입된 자본비용(투자금의 기회비용 등)까지 모두 차감하고 진짜 손에 쥔 '알짜 이익'을 뜻한다. 수십조 원을 투자해서 겨우 몇 조 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은 진정한 의미의 흑자가 아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을 따지는 EVA나 실제 회사 통장에 찍히는 현금 흐름인 FCF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면, 순이익이 적자인데도 성과급을 줘야 하는 모순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직원들 역시 자본의 현실을 수치로 직시하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 성과급 산정 기준으로 무조건 '영업이익'만을 고집하며 호황기 수준의 보상을 상시 요구하는 것은, 철저하게 노동자 측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오늘날 노동계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나 글로벌 반도체 공룡들은 상한선 없는 파격적인 성과급과 스톡옵션 제도를 운영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보상 제도 뒤에는 한국 노동계가 애써 외면하는 냉혹한 전제, 즉 "철저한 고용의 유연성(Employment-at-Will)"이 깔려 있다.

미국 기업들은 불황이 닥치거나 사업 기조가 바뀌면 경영적 판단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규모 해고(Layoff)를 단행한다. 호황기에 아무리 수억 원의 성과급을 주더라도,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고정비를 즉각적으로 줄일 수 있는 안전밸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기에 가능한 구조다.

반면 대한민국 대기업의 고용 구조는 극도로 경직되어 있다. 법적으로 정리해고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호황기에 올려놓은 기본급과 성과급 기준은 하향 조정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이처럼 고용은 한국식으로 철저하게 보호받으면서, 보상은 미국식으로 상한선 없이 달라고 요구하는 구조는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기업에 재앙과도 같다. 미국식의 유연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영업이익 기준으로만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은 기업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번 잠정 합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연봉 지상주의'로의 체질 변화라는 본질적 위기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단기적인 인재 이탈이나 파업 압박을 막겠다고 원칙 없는 '임시봉합'을 거듭하는 것은 삼성전자 답지도 않고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길이다.

기준은 투명하되 철저하게 기업의 생존과 장기적 현금 흐름에 연동되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지금 당장 고기를 나눠 먹을 것인가, 아니면 거위를 더 크고 건강하게 키워 지속 가능한 풍요를 누릴 것인가.

jinan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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