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 읽음
성수동 대신 광장시장, MZ와 외국인 몰리는 팝업 명소
위키트리

광장시장은 그 반대편에 있다. 120년 된 시장의 낡은 지붕, 들쭉날쭉한 간판, 좁고 복잡한 골목. 거기서 열리는 팝업은 세련된 팝업 공간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이질감'을 준다. 팝업이라는 소비 형태가 광장시장이라는 장소와 만나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빈대떡 가게 곁에서 제주 맥주를 잔에 채우고, 육회 좌판 부근에서 타코와 데킬라를 즐기는 경험은 성수동 건물이 모방할 수 없다. MZ세대가 찾는 건 '팝업'이 아니라 '콘텐츠'이고, 광장시장은 그 수요와 정확히 맞물려있다.
뉴트로(New-tro) 감성이 트렌드를 주도한 지는 이미 수년이 됐지만, 광장시장의 흡인력은 단순한 복고 취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은 살아있는 시장이다. 꾸며낸 복고가 아니라 1905년부터 이어져 온 생생한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이 연출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을 잡아끈다.
광장시장에서 열리는 팝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전통시장에 팝업이 들어왔다'는 신기함 때문만이 아니다.
성수동의 팝업은 보통 넓은 공간을 통째로 임차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러나 광장시장의 자리는 협소하다. 장시간 대기가 어렵고 이동 동선이 좁다.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김밥대장 팝업은 사전 결제 후 알림톡으로 수령 시간을 안내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소비자는 김밥을 주문해두고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온다. 팝업이 시장 전체를 체험하는 동선의 일부가 된 셈이다. 비좁은 장소가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로 바뀌었다.
브랜드들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과일가게 컨셉의 젤리 브랜드는 성수동 대신 이곳을 택했다. 시장 안 실제 과일가게처럼 젤리를 담은 상자를 쌓아 진열하고, 간판도 주변 점포들과 이질감 없이 맞췄다. 이 팝업이 화제가 된 건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장소에 녹아든 치밀한 맥락 설계 덕분이었다. '이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팝업'을 만드는 것이 트렌드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의 타코·칵테일 팝업이 광장시장에서 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OTT가 만들어낸 셰프의 서사와 노포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섞이며 새로운 볼거리가 됐다. 방문객들은 음식 섭취를 넘어 SNS에 공유할 장면을 체험한다.
전통시장 안에 스타벅스와 올리브영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이 문장이 낯설게 읽힌다면, 아직 광장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목격하지 못한 것이다.
통상 대형 프랜차이즈의 전통시장 입점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동반해왔다.
그러나 광장시장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스타벅스 광장마켓점은 광장시장 상인회와의 상생 협약을 거쳐 입점했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목당 상생 기금을 적립하며, 해당 기금은 광장시장 상생협의회와 협의를 거쳐 시장 내 상생활동에 사용된다. 매장 콘셉트도 '시간을 추출하는 커피상회'라는 레트로 테마로 시장의 분위기에 맞췄다.

올리브영 광장시장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외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시장 안에서 데오드란트 하나, 선크림 하나 살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장 상인들의 필요가 먼저였고, 상인회 차원에서 유치를 추진한 결과였다. 2025년 기준 올리브영 전국 매장에서 외국인 구매액은 1조 원을 돌파했고, 방한 외국인 10명 중 9명이 올리브영을 찾는다. 광장시장 안에 올리브영이 생겼다는 건, 외국인 관광 동선으로 전통 먹거리와 K뷰티, 쇼핑이 한 지붕 아래 묶였다는 의미다.
한국 MZ들이 팝업 투어를 위해 광장시장을 찾는 동안, 외국인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같은 공간에 모이고 있다. 두 흐름이 교차하는 풍경이 지금 광장시장의 가장 독특한 면이다.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에 광장시장 칼국수가 소개된 이후 190여 개 나라의 시청자들에게 이곳은 한국의 음식 문화를 체험하는 장소로 각인됐다. 빈대떡, 육회, 칼국수, 마약김밥으로 이어지는 먹거리 동선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일종의 '서울 버킷리스트'처럼 공유된다. 먹자골목에서 들리는 언어는 이미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가 뒤섞인 지 오래다. 평일 점심에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이 골목에서, 방문객 대다수가 외국인 관광객인 날이 생겨났다.
'이불 골목'도 화제다. 광장시장 한켠의 이불 골목은 대만, 싱가포르 등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불 쇼핑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현지에서 퍼졌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에도 이불을 끼고 사진을 찍으며 본국 가족과 영상 통화로 가격을 확인하는 외국인들이 줄을 잇는다.

서울에 여행 온 미국인 에밀리(29)는 빈대떡 골목 한켠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틱톡에서 광장시장 영상을 수십 개는 봤는데, 직접 오니까 화면이랑은 완전히 달라요. 냄새, 소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걷는 느낌. 이건 영상으로는 절대 못 느끼죠. 이게 제가 서울에 온 이유예요."

물론 광장시장이 모든 면에서 이상적이지는 않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과 함께 일부 매장의 불친절한 응대, 가격표 미부착, 비싼 메뉴 강요 등의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팝업이 늘어나면서 기존 상인들과의 갈등도 조심스러운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광장시장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이 흥미로운 건, 이곳이 '만들어진 명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팝업이 넘쳐나는 시대에 가장 강력한 팝업 공간은 애초에 팝업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광장시장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빈대떡 기름 냄새, 좁은 골목, 할머니 상인과 인스타 감성의 20대, 이불을 이고 가는 외국인이 뒤섞이는 공간이 역설적으로 지금 서울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장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