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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2 18일 넷플릭스 공개, 24년 만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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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는 흥행에 그치지 않았다.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시각효과상, 음향상을 수상하며 5관왕을 달성했다. 러셀 크로우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호아킨 피닉스의 폭군 연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등장한 로마 배경의 드라마와 영화 상당수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따라붙을 만큼, '글래디에이터'는 고대 사극 장르 전체의 기준점이 된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최고 흥행작이었으나, 15년 후 '마션'에 의해 그 기록이 경신됐다.
전작의 흥행 요인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가족과 명예를 잃고 노예로 전락한 장군 막시무스가 폭군에 맞서는 복수극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 고대 콜로세움과 전투 장면을 사실감 있게 재현한 웅장한 스케일, 그리고 러셀 크로우와 호아킨 피닉스의 팽팽한 대립 구도다. 한스 짐머의 OST가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묶어냈다는 점도 빠지지 않는 평가다.

'글래디에이터 Ⅱ'는 전작의 직접적인 후속편이다. 시간적 배경은 전작 주인공 막시무스가 콜로세움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 약 20여 년이 흐른 서기 210년대다. 역사적으로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콤모두스 암살 이후 내란을 수습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게타 형제가 공동 황제로 로마를 다스리던 세베루스 왕조 전기에 해당한다. 게타가 제위에 있던 해가 211년, 카라칼라가 사망한 해가 217년이니 작품의 시대 배경은 서기 21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전작 막시무스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인물 '루시우스'(한노)다. 폴 메스칼이 연기하는 루시우스는 로마군에 의해 아내와 터전을 모두 잃고 노예로 전락한 뒤, 강한 권력욕을 지닌 야심가 마크리누스의 눈에 띄어 검투사로 발탁된다.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거듭하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마침내 로마의 운명을 건 결전을 준비하게 되는 구조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덴젤 워싱턴이다. 그는 검투사들을 이용해 로마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야심가 마크리누스 역을 맡았다. 비평가들은 덴젤 워싱턴의 연기가 이 작품을 서사시적 스펙터클로 끌어올린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주인공 루시우스 역의 폴 메스칼은 '애프터썬',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등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연기파 배우다. 여기에 페드로 파스칼이 로마 시민에 충성하는 장군 아카시우스 역으로 출연하며, 전작에도 등장했던 루실라 역의 코니 닐슨이 루시우스의 어머니로 재등장해 두 작품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잇는다.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는 각각 조셉 퀸과 프레드 헤킨저가 연기하며, 가학적이고 무자비한 폭군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반면 "전작의 분위기와 캐릭터 설정에서 벗어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한 후속작", "아카데미 5관왕을 달성한 전작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개연성 부족과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전개가 아쉬운 점으로 반복 지적됐다. 결론적으로 시각적 완성도와 액션 연출에서는 대체로 합격점을 받았으나, 서사의 깊이에서는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로마의 검투사 문화는 기원전 105년부터 서기 404년 공식 경기가 폐지될 때까지 약 500년간 실존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흥행을 위해 각색한 부분도 적지 않다. 역사 기록과 고고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검투사의 세계를 짚어본다.
매 경기마다 누군가 죽었을까
영화에서는 검투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한쪽이 목숨을 잃는 장면이 반복된다. 하지만 역사 연구는 다른 결론을 가리킨다. 역사가 조지 빌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후 1세기 기준으로 100번의 시합에서 200명의 검투사 중 19명이 사망해, 1회 경기당 생존율이 90%를 넘었다.
그 이유는 경제적 논리에 있었다. 검투사는 양성소 주인에게 고가의 자산이었다. 숙식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년간 훈련시킨 검투사가 경기마다 사망하면 양성소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경기는 한쪽이 항복하거나 심판 판정으로 부상자가 생기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영화처럼 매 경기 죽고 죽이는 구조는 흥행을 위한 각색에 가깝다.

"엄지를 내리면 사형"…사실은 정반대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황제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 검투사를 죽이고, 위로 올리면 살려주는 장면은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1872년에 그린 그림 '폴리케 베르소'에서 비롯된 오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실제로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고, 영화 속에서 콤모두스 황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막시무스를 살려준다.
엄지손가락을 내리는 제스처가 실제로 죽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는지에 대한 논쟁은 역사학계에서 지금도 이어진다. 이 주제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서양고전학 교수 안토니 코르베이유에 따르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이 검투사를 죽이라는 신호였고, 주먹을 쥔 채 엄지를 집게손가락에 누르는 제스처가 살려주라는 의미였다. 유베날리스의 기록에도 "엄지를 세워 뒤로 젖히면 패자를 죽인다"고 나와 있으며, 고전학자 존 메이어의 번역본에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면 찔러 죽이라는 신호, 바닥을 가리키면 무기를 버려 살려주라는 신호"라고 기술돼 있다. 즉,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 실제 역사 기록이 정반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검투사는 모두 노예였을까
영화 속 막시무스처럼 전쟁 포로나 노예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투사의 세계는 단순히 강제로 끌려온 자들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자유민 출신으로 스스로 서약서에 서명하고 검투사가 된 이들도 존재했으며, 이들은 자신을 타인의 종으로 낮추고 로마 시민권이 제공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선언과 같은 계약을 맺었다. 명예와 금전적 보상을 노린 자원자들이었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콤모두스 황제는 직접 경기장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 속 폭군 콤모두스는 창작된 캐릭터가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검투 경기에 집착해 직접 경기장에 섰던 황제였고, 이 지나친 검투사 집착 때문에 민심을 잃고 정적들이 암살을 도모하게 됐다. 다만 황제가 직접 뛰는 경기는 안전하게 조율된 형식이었음은 물론이다.

영화 속 검투사들은 하나같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기록과 고고학 연구는 다른 체형을 가리킨다. 검투사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즐겨 먹지 않던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고, 이 때문에 '보리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르데아리'라고 불렸다. 오스트리아 메드유니 비엔나와 스위스 베른대 공동 연구팀은 터키 에페소스에서 발굴된 기원전 2~3세기 검투사 유골을 분석해 당시 식생활을 규명했다.
경기 중 상처로 피를 흘리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검투사의 체형은 근육질보다 살집 있는 체형에 가까웠다. 고탄수화물 식단이 이러한 체형 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두꺼운 피하지방층이 칼날에 베였을 때 주요 혈관과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규칙과 자본이 지배한 '프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뛰어난 검투사는 오늘날의 스포츠 스타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딴 기념품이 거래됐고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경기 방식도 단순한 살육이 아니었다. 그물과 삼지창을 쓰는 레티아리우스, 무거운 갑옷과 방패를 든 무르밀로처럼 무장과 전투 방식에 따라 유형이 철저히 나뉘었고, 상성을 고려한 매치업으로 관객의 흥미를 극대화했다.
지난해에는 영국 요크 인근 로마 시대 무덤에서 발굴된 젊은 남성의 유골에서 사자 이빨 자국이 확인되기도 했다. 연구를 이끈 티머시 톰슨 아일랜드 메이누스대 교수는 이 발견이 검투사가 실제로 맹수와 싸웠다는 첫 물리적 증거라고 밝혔다.
로마의 검투사 문화는 기원후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금지법이 만들어졌고,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점차 쇠퇴했다. 거듭된 금지령에도 열성 관중의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았고, 전 제국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6세기에 이르러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