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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없어 쫓겨난 소년, 약속 지킨 28년 차 교사 고백
위키트리
흑백에 가까운 어두운 스튜디오, 단 하나의 조명 아래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담담하게,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남성의 고백에 진행자는 끝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방송에 출연한 이는 올해로 28년 차를 맞은 베테랑 초등학교 교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꿈을 이루고 평생을 아이들 앞에 서 온 그였지만, 그 꿈의 시작점에는 지우지 못한 깊은 상처와 눈물겨운 약속이 자리하고 있었다.
촌지라는 이름의 폭력, 복도에 남겨진 소년
그의 모교는 서울의 A 초등학교다. 불행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사고로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면서 시작됐다. 가장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가난은 어린 소년의 어깨를 짓눌렀다.
당시 교육계에는 '촌지'라는 부조리한 문화가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은근한 차별과 불이익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소년은 단지 촌지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실 밖 복도로 쫓겨났다.

또래 친구들이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들을 때, 소년은 차가운 복도 바닥에 홀로 앉아 책을 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사답지 못한 교사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왜 내 잘못인 줄만 알았습니다."
"너가 참아다오"… 어머니의 가슴 무너지는 눈물
복도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는 이유를 물었다. 소년은 결국 사실을 털어놨다.
며칠 뒤 담임교사는 소년을 다시 교실로 들여보냈다. 소년은 그것이 다행이라 여겼지만, 곧 잔인한 진실을 알게 됐다. 가난한 어머니가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해 교사의 손에 촌지를 쥐여줬던 것이다.



돈으로 산 교실 안의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2학기가 되자 소년은 다시 복도로 쫓겨났다. 이번에도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다. 돌아온 것은 깊은 한숨과 미안함이 섞인 눈물이었다.

"엄마가 옷에 구멍이 났는데 새 옷도 못 사고 있다. 지금은 도저히 촌지 줄 돈이 없다… 네가 조금만 참아다오."
소년은 그날 이후, 차가운 복도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어머니의 무너진 가슴을 함께 느껴야 했다.
졸업식 날, 모서리에서 건넨 평생의 약속

남성 출연자의 눈시울이 붉어진 건 졸업식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였다. 2월의 어느 날, 화기애애한 졸업식장 한쪽 모서리에서 어머니와 소년은 단둘이 서 있었다. 촌지를 듬뿍 낸 다른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교사 주위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을 때, 소년의 가족은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그 쓸쓸한 졸업식장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평생의 유언과도 같은 말을 건넸다.
"너는 꼭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라. 그리고 절대로 돈 받지 말고, 어렵고 힘든 애들이 있으면 도와줘라."
그 한마디가 소년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자신처럼 가난하다는 이유로 복도에 쫓겨나 눈물 흘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돈이 아닌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주는 진짜 선생이 되겠다는 결심.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의 꿈은 그렇게 눈물 속에서 피어났다.
"단 한 번도 부끄러운 돈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고, 마침내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지난 28년 동안 시대적 한계로 간혹 체벌한 적은 있었지만, 어머니의 당부대로 촌지만큼은 단 일 원도 받지 않았다고 그는 당당히 고백했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제자들에게 결코 물려주지 않겠다는, 어머니와 맺은 처절한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담담한 고백이 끝나자, 진행자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상처받았던 소년이, 가장 따뜻한 빛을 내는 스승이 되어 돌아왔다. 그의 28년 교직 생활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리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여정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