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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권 반도체 추진, 부지 미확정 공시와 원전 필요
최보식의언론
하이라이트는 호남을 겨냥한 1천조 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다가올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텃밭의 표심을 묶어두려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권력의 부름에 불려 온 글로벌 기업 총수들은 그 웅장한 청사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훌륭한 병풍이 되어주었다.
딱 이틀이 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SK하이닉스가 슬그머니 '정정 증권신고서'를 띄웠다. 권력자의 거창한 선언에 대한 자본시장의 답변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건조했다.
"서남권 부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규모와 일정은 달라질 수 있다. 장래 시장 상황과 전력·용수 등 여건에 따라 실현되지 아니할 수도 있다."
행정지도로 둔갑한 정치적 청구서에 멱살을 잡혔던 주식회사가, 투자자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는 공시 제도의 뒤로 숨어 다급하게 구조 요청을 타전한 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이 묵직한 팩트의 쐐기를 박았다.
"호남 반도체 단지에는 원전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이재명이 며칠 전 트위터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르짖던 'RE100'과 '풍부한 태양광' 몽상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 치명적인 반박이다. 날씨 따라 출력이 널뛰는 태양광 패널 따위로는 24시간 단 0.1초의 정전도 허락하지 않는 팹의 심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기업가이자 공학자의 선전포고다.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의 기저 전력이 없다면, 반도체 공장 역시 텅 빈 콘크리트 상자에 불과하다는 이치를 권력자의 면전에 대고 똑똑히 가르쳐준 것이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병치해 보면, 2026년 대한민국 경제가 얼마나 작위적인 촌극으로 굴러떨어졌는지 투명하게 폭로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책상 위 행정지도에 선을 그어 수백조 원을 배분하며 표밭을 다진다. 반면 자본과 공학은 그 모래사막 위에 반도체를 구울 전기도, 초순수도, 당장의 고객 수요도 없다고 조용히 비명을 지른다. 정치인이 입술로 남발한 가짜 어음을, 시장이 팩트라는 도장으로 깔끔하게 부도 처리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엇갈린 텍스트의 행간에서 아주 무겁고 익숙한 범죄의 뼈대를 발견하게 된다.
기업들이 공식적인 문서와 엔지니어의 입을 통해 인프라와 수요가 담보되지 않아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수백조 원의 자본을 책임지는 주식회사가 스스로 투자의 타당성에 붉은색 경고등을 켜둔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권력이 자신의 표 계산기를 위해 이 몽상을 기업에 강제로 집행하도록 윽박지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시장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권력의 완장으로 짓누르고, 글로벌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치명적인 손실 리스크를 억지로 떠안기는 행위. 우리는 이것을 경제 정책이라 부르지 않는다. 법전은 이 낡고 오만한 폭력을 정확히 '직권남용'이라 호명한다.
#반도체클러스터 #SK하이닉스 #산업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