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도 그렇다. 오래된 플랫폼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다림과 작별의 여운이 남아 있고, 낡은 의자에는 수많은 삶의 체온이 스며 있다. 빠른 것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지만, 마음은 느린 풍경을 그리워한다. 간이역은 단순히 기차가 머물던 장소가 아니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게 한 만남의 공간이었다.여유가 있거나 한가로운 분위기에 취하고 싶을 때면 강변을 따라 이어진 구불구불한 옛 도로를 선택하는 것은 나만의 휴식 방법이다. 농원에 닿는 시간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창밖으로 흐르는 남한강의 윤슬과 여유롭게 떼지어 나는 철새들을 눈에 담고 싶어서다. 강물을 동무 삼아 달리다 보면 팔당댐을 지나 시간이 박제된 공간인 능내역에 닿는다. 기차도 지나지 않는 폐역이지만, 얼마 전까지 주변은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 묘한 자력이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라며 손짓했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한 능내역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노출콘크리트로 세련되게 지어진 2층 카페는 문을 닫은 지 오래인지, 유리창엔 뿌연 먼지가 내려앉았고 주차장 구석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번성했던 능내역의 흔적은 이제 빛바랜 간판과 녹슨 철제 의자들 속에 숨어 숨을 고른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차갑지 않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발길이 떠난 자리를 보드라운 햇살과 바람이 채우며, 역사는 비로소 제 본연의 고즈넉한 평온을 되찾은 듯 푸근하다.능내역 맞은편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봄바람이 무색하게 한숨을 깊게 쉬며 전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요즘은 통 손님이 없어요. 게다가 저 먼 나라 전쟁 소식에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더 나빠져 전기세 무서워 등 하나 맘 놓고 켜지 못하고 장사하려니 참 막막하네요." 5월 중순의 화창한 볕 아래에서도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깊다. 평일이라 그런가. 자전거길 위에는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들이 드문드문 바퀴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갈 뿐, 역 마당은 적막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활기는 ‘속도’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희미한 잔향만 남아 있다. 붉은 벽돌의 역사驛舍와 그 앞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라이더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역의 사연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듯, 오로지 자신의 페달을 밟는 힘과 질주에만 집중하며 앞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간다.간이역 의자에 앉아 지난 시절을 회상해 본다. 능내역은 1956년 5월,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역무원 없는 간이역으로 첫 기적을 울렸다. 주변에 다산 정약용 유적지와 같은 명소가 많아 한때는 수도권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보통역으로 승격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운길산역'이라는 신설역이 생기면서 능내역의 철길은 끊겼다. 산을 뚫어 터널이 생겨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한강 변을 감돌아 지나가며 차창 밖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풍경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수십 년간 비바람에 씻겨 하얗게 바랜 낡은 나무 의자의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거친 나뭇결 사이로 세월이 새겨놓은 깊은 골이 느껴진다. 그것은 오래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이 남긴 지문 같기도 하고, 멈춰버린 기차의 숨결이 오래된 흔적처럼 배어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레일 위를 구르는 육중한 쇠바퀴의 진동이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던 이들의 척추에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리라.장날이면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흙 묻은 보따리들의 묵직한 중량감을 의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알이 굵은 감자와 태양의 빛깔을 머금은 붉은 고추, 이른 아침 밭에서 갓 캐온 도라지들이 보따리 속에서 달그락거린다. 살아있는 생활의 온기를 객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리라. 그것은 단순히 농작물의 무게가 아니라, 한 가정을 지탱해 온 가장의 책임감이자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지극한 사랑의 무게였다. 기차가 들어온다고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보따리 매듭을 다시 한번 조였을 것이다.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던 순간마다 마디 굵은 손등이 나무 팔걸이를 짚었고, 의자는 그들의 고단한 삶의 온기를 묵묵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 시절 능내역은 타인과 타인이 만나 비로소 우리가 되는 간이정거장이었다. 서로의 보따리 무게를 눈으로 가늠하며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보태던 농밀한 관계를 전철의 편리함과 무심함으로 맞바꾸고 말았다.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도로가 새로 뚫리고, 기술이 진보하자 세상은 숨 가쁘게 달라졌다. 기차가 다니던 시절의 영화는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의 일터 또한 몰라보게 변했다. 전화교환원, 버스 차장, 톨게이트 수납원 같은 직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나 데이터 분석가, AI 엔지니어 같은 생소한 이름들이 채우고 있다. 기차표를 끊어주던 역무원의 친절한 손길 대신, 차가운 키오스크와 모바일 앱이 우리를 안내한다. 시간은 흘러 흙 묻은 보따리를 쥐고 있던 거친 손마디에는 매끄러운 액정을 부지런히 두드리는 얇고 하얀 손가락들이 스친다. 최첨단 라이딩 유니폼을 차려입은 이들은 순간의 궤적처럼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에게 이 낡은 의자는 잠시 차오른 숨을 고르거나 SNS에 올릴 인증샷을 찍기 위해 머무는 사물일 뿐이다.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능내역 같은 공간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 '버려진 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길 옆에 수줍게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들꽃은 사람의 눈길이 그립지 않을까. 그러나 어쩌랴. 강물 위에 보석처럼 부서지는 오후의 윤슬은 속도에 홀려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은 무심함을 견뎌야만 한다. 그것은 오직 멈춘 자에게만 허락되는 풍경이다. 세상은 더 빨리, 더 멀리 가라고 등을 떠밀지만, 정작 우리가 도착해야 할 곳은 볕 좋은 의자 한 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오래된 것들이 허물어져도, 이 낡은 나무 의자는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릴 것이다. 기꺼이 등을 내어주는 의자의 환대처럼, 나의 글 또한 세상의 속도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간이역이 되기를 꿈꾼다.이곳을 스쳐 가는 이들이 앞만 보고 내닫느라 자신의 소중한 ‘정情’과 ‘영혼’마저 길 위에 흘려두고 떠나지 않았으면 한다. 능내역의 볕은 여전히 따사롭고, 오래된 의자의 벌어진 나뭇결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빛난다. 비록 기차는 오래전에 멈추었으나, 사람의 발길이 머금는 능내역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