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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 3주기, 시설 보완됐지만 책임자 처벌과 추모는 과제
투데이신문
안전은 여러 겹의 방어막이 서로를 지탱할 때 보장된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은 이를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 불렀다. 겹겹이 세워둔 방어막에는 저마다 치즈처럼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지만 평소에는 서로 엇갈려 있어 사고를 막아준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구멍들이 한 줄로 나란히 맞춰지는 순간이다. 위험이 모든 방어막을 순식간에 통과할 때, 우리의 안전은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렵다. 연쇄적인 실패의 맞물림이야말로 참사의 본질이다.
2023년 7월 15일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참사 또한 그랬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부실 관리와 미흡한 대응으로 인한 명백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집중호우라는 자연재난 위에 제방 관리 부실, 지하차도 통제 실패, 기관 간 상황 전파 미흡, 현장 대응 지연이라는 문제가 차례로 겹쳤다. 미호강 임시 제방과 하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임시 제방의 유실에 따른 미호강의 범람 사실과 궁평2지하차도의 침수 가능성에 대한 보고 체계가 미흡했다. 통제 기준을 충족했음에도 예방적 조치가 시행되지 않았고 사고 직전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유사한 명칭으로 인해 궁평2지하차도가 아닌 궁평1지하차도로 오인 출동을 했다.
그 결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송 참사는 ‘예측할 수 없었던 재난’이 아니라 여러 개의 안전망이 동시에 무너져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 각 층에서는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고 시설들을 보완하는 등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정말 치즈의 구멍은 완전히 메워졌을까. 오송 참사 3주기를 맞아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남았는지 살펴본다.

국토교통부는 2024년 4월 ‘도로터널 방재지침’ 개정을 통해 지하차도가 U자형이면서 하천 500m 이내 등 침수 우려가 큰 곳에 있는 경우 진입 차단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에 충청북도는 도내 지하차도 41곳 중 40곳에 자동 차단시설 설치를 완료했고 나머지 1곳도 7월 중 설치를 마칠 예정이다.
관련자 처벌도 일부 이뤄졌다. 미호강의 기존 자연 제방을 무단으로 절개하고 부실하게 임시 제방을 쌓은 시공사 현장소장과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감리단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는 실정이다. 전국적으로는 오인 출동 재발 방지를 위한 명칭 개선이 빠르게 이뤄진 반면 정작 참사가 발생했던 궁평지하차도의 명칭은 여전히 변경되지 않았다. 궁평 1, 2지하차도를 관할하고 있는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참사 발생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칭 변경을 서로 떠넘기고 있어 미흡한 행정력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적 참사의 최소한의 위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다. 하지만 기소된 40여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건은 극소수였으며 여전히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미호강 제방 무단 훼손과 관리·감독 소홀 등의 혐의로 기소된 40여명 가운데 판결이 확정된 건 4명에 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범석 전 청주시장과 이상래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서재환 전 금호건설 대표 등은 책임을 부인하면서 관련자 처벌과 진상 규명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의 지휘·통제 체계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 최은경 공동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족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지 않아 실종자 가족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문의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큰 혼란을 겪었다”며 “재발 방지 대책뿐 아니라 참사 발생 직후 가족 지원 체계와 안내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송 참사 이후 일부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이어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악성 댓글과 허위사실 유포,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른바 ‘2차 가해’에도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참사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희생자들의 행동을 문제 삼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는 게시글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이 같은 2차 가해가 참사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고 호소했다. 이에 희생자와 유가족을 존중하고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인식 역시 함께 성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희생자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 역시 부족하다. 청주시청 임시청사 별관 복도에 위치한 시민 분향소가 그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 전부다. 그마저도 시청 구내식당 등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위치해 있고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실정이다.
참사 발생 3년이 지난 현재에도 추모 조형물과 추모 공간 설치는 지연되고 있다. 먼저 장소 선정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논의 초기 거론된 궁평2지하차도 인근과 KTX 오송역 등은 국가철도공단의 난색으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또 다른 후보지 오송 만수공원은 추모시설이 공원시설에 포함되지 않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조형물 설치를 위해 어렵게 장소를 선정해도 예산 삭감으로 사업이 무산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과 11월 충청북도와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 등은 추모 조형물을 도청 연못 정원 한편에 설치하기로 합의해 5000만원의 예산을 추경안에 편성했다. 그러나 당시 충북도의회의 다수당이었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주도로 2차례 모두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무산됐다.
최 공동대표는 “장소를 정하는 데 정말 쉽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장소를 정했음에도 예산 삭감에 부딪히니 안 되는구나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추모 공간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경각심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시민분향소가 어느 공간 하나 없이 길 복도에 있는 게 너무 열악하고 마음이 아파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전했다.
지속적인 요청에도 지자체 관할에는 공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유가족은 외쳤다. 최 공동대표는 “공간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데 도나 시에서는 청사 내에 공간이 없다고 한다”며 “외부 공간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지자체장이 바뀔 경우 예산 문제로 인해 운영이 중단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외부 공간 조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유가족 상당수는 사고의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재난·참사 피해자 회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송 참사 유가족의 93.33%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해당 조사 결과는 참사 발생 약 3년이 지난 시점에도 유가족 대부분이 치유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담을 통한 정서적 해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한 채 약물 처방 중심으로 이뤄진 심리 지원을 두고 실효성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많다. 최 공동대표 역시 “초기 심리치료가 적절하게 제공되지 못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게 돼서 심리치료를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3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 공동대표는 △유가족 심리치료 지원 확대 △추모 공간·추모 조형물 조성 △책임자에 대한 신속하고 합당한 처벌 △같은 형태의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선 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오송 참사를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반복될 수 있는 재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침수 피해 역시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정상만 원장은 본보에 “기후변화 시대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송 참사처럼 짧은 시간에 폭우가 집중돼 발생하는 침수 피해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침수 가능성이 있는 시설물에 대한 대응 대책이 절실하다”며 미래 기후 관련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재차 당부했다.
그러면서 “폭우와 홍수 경보 발령 시 작동할 수 있는 차량 진입 차단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면 유관 기관 간의 협업을 통해 신속한 차량 통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며 “미리 준비하면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주시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본보에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며 현재에는 다목적 CCTV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풍수해 생활권 정비 사업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 사업도 추진 중”이라며 “상습 침수 구역의 경우에도 지구 지정을 통해 추가적으로 도비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장섭 청주시장도 지난 6일 주간업무보고회에서 기후 이변으로 재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만큼 모든 부서가 위험 요인을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오송 참사 이후 지하차도 차단시설이 보완되고 재난 대응 체계도 일부 개선됐다. 하지만 참사가 남긴 과제는 안전대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지원 체계, 희생자를 기억하는 추모 공간, 끝까지 이어지는 진상 규명과 책임 이행 역시 참사를 마주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는 그 몫이 아직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유가족이 먼저 요청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설은 보완됐지만 후속 행정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더디다. 안전 설비를 고치는 일은 다음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일 뿐이다. 남겨진 이들이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사회가 스스로 그들의 곁을 지키는 날이야말로 사회적 참사가 남긴 상처가 진정으로 아무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