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읽음
이동진 5점 브루탈리스트, 12월 12일 넷플릭스 공개
위키트리
바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을 석권한 브래디 코벳 감독의 '브루탈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다다. 극장 개봉 당시 3시간 35분이라는 압도적 러닝타임과 청불(19세 미만 관람불가) 등급을 달고도 평단을 완전히 장악한 이 작품이 이제 안방극장으로 들어온다.
다음 달 12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브루탈리스트'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헝가리 출신 유대계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겨우 빠져나온 그는 194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망명하지만, 이민자의 현실은 냉혹하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품은 채 바닥부터 삶을 재건하던 그 앞에 부유한 산업가 해리슨 리 반 뷰런(가이 피어스)이 나타난다. 해리슨은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기념비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제안하지만, 후원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지배와 통제가 두 사람의 관계를 뒤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한 예술가가 거대 자본과 이민자 차별, 그리고 자신의 내면적 파괴 사이에서 어떻게 존엄을 지켜나가는지를 약 30년의 시간에 걸쳐 담아낸다. 라즐로는 완전히 허구로 창조된 인물이지만, 영화가 실제 역사와 당시 이민자의 현실을 세밀하게 끌어온 만큼 실존했던 건축가처럼 느껴진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국내 영화 팬들에게 이동진 평론가의 별점 5점 만점은 사실상 보증수표로 통한다. 그가 '브루탈리스트'를 향해 남긴 한 줄 평은 "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과거는 어디에 맺히는가."
였다. CGV 언택트톡 상영에서도 그는 이 작품을 직접 추천하며 고전이 될 운명을 타고난 영화라는 평가를 내놨다. '빛'은 주인공이 갈망하는 예술적 이상을, '과거'는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비극이 한 인간의 영혼에 남긴 흔적을 의미한다. 이동진의 별점 5점은 영화가 이 두 가지를 스크린 위에 어떻게 구현해냈는지에 대한 답이다.
'브루탈리스트'는 2024년 9월 1일 제81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됐으며, 브래디 코벳 감독이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베네치아 영화제 공개 당시 현장 매체에서 평점 최상위권을 달리며 황금사자상 최고 유력 수상작 중 하나로 점쳐졌고, 코벳 감독은 역대 베네치아 영화제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됐다.

이후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드라마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에이드리언 브로디)을 수상했다. 그리고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미국 영화연구소는 '브루탈리스트'를 2024년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브루탈리스트'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는 2003년 '피아니스트'로 당시 만 29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홀로코스트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유대계 예술가를 연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전쟁과 체계적인 억압이 트라우마,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타자화를 남겼다"며 "저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포용적인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에서 홀로코스트 속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연기해 오스카를 받았던 브로디가, 다시 22년 만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역할로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영화사적으로 이례적인 기록이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라즐로 토스는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예술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인물로, 브로디는 이민자의 희망과 상실, 예술가의 야심과 붕괴를 폭넓게 소화해냈다는 평을 받는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를 받쳐주는 조연진도 만만치 않다. 가이 피어스는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하는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 역을 맡았다. 후원자의 인자한 가면 뒤에 숨겨진 자본가의 지배욕을 차갑게 그려내며,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펄리시티 존스는 라즐로의 아내 엘제벳으로 등장해 전쟁으로 갈라진 부부가 삶을 재건해가는 과정을 강인하게 표현했다. 거대 자본을 쥔 해리슨과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라즐로 가족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이 영화 서사를 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브루탈리스트'의 인터미션은 라즐로가 미국에 어렵게 정착한 후 서서히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는 전반부, 건축물을 만들어나가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갈등을 겪으며 피폐해져가는 후반부 사이에 들어간다. 감독 브래디 코벳은 '인디와이어'에 "개인적으로 3시간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 나도 인터미션이 필요했다. 관객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극장에서는 화면에 타이머가 표시되며 15분의 인터미션이 진행됐다. 넷플릭스 시청 시에도 이 타이밍을 활용해 잠시 멈추고 전반부의 내용을 되새긴 뒤 후반부로 넘어가는 방식을 권장하는 영화 팬들이 많다. 21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숏폼에 익숙한 시청자들도 전반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영화의 호흡에 빨려 들어간다는 후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 제목인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는 건축 사조 '브루탈리즘(Brutalism)'에서 유래했다.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 브루탈리즘은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몸체와 장식보다 기능에 초점을 맞춘 투박한 건물 구조가 특징이다. 영화는 이 건축 양식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과 미국의 시대적 공기를 설명하는 시각적 메타포로 활용한다. 가공되지 않은 거친 콘크리트처럼 전쟁의 상흔을 날것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라즐로의 삶, 그리고 개인을 압도하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오만함이 이 건축 양식에 겹쳐진다. 반이민 정책 속에 혐오와 차별이 극단화한 도널드 트럼프 1기 집권기(2017~2021)가 감독에게 영감이 됐다고 알려져 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제로 브루탈리즘 건물들을 철거 대상으로 공공연히 지목해온 바 있다.

'브루탈리스트'는 현대 영화로서는 매우 드물게 비스타비전 카메라와 35mm 필름으로 촬영됐다. 비스타비전 필름 전용 카메라는 1961년 말론 브란도 감독·주연의 '원 아이드 잭' 이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방식이다. 브래디 코벳 감독은 "1950년대라는 시대에 접근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마찬가지로 그 시기에 개발된 필름으로 촬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스타비전은 필름을 가로 방향으로 주행시켜 일반 35mm보다 넓은 네거티브 면적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웅장하고 깊이 있는 공간감과 아날로그 특유의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은 이 의도적인 기술적 선택에 대한 영화계의 공식 인정이기도 하다.
'브루탈리스트' 제작비는 1000만 달러(약 145억원)로, 같은 해 개봉한 '조커 2' 같은 블록버스터의 20분의 1에 불과한 저예산이다. 3시간 35분 분량의 시대극을 해외 로케이션과 필름 촬영으로 완성한 것 자체가 놀랍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개봉을 앞두고 AI 활용 사실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브루탈리스트' 편집자 다비드 얀초는 제작 과정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펄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보정하고 건축물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AI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얀초는 AI 음성 생성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소프트웨어 회사 리스피처의 기술을 이용해 헝가리어를 좀 더 현지인처럼 들리게 보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헝가리어가 모국어인 자신의 음성을 AI 모델에 주입해 배우들의 헝가리어 방언 발음을 돕는 데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브래디 코벳 감독은 "AI 활용은 에이드리언과 펄리시티의 연기를 보존하려는 것이 목표"라며 "배우의 연기를 대체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티모테 샬라메, 레이프 파인스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