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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 무사, 8월 1일 넷플릭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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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한민국 영화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던 전설적인 대작, 김성수 감독의 영화 '무사(武士)'가 오는 8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찾는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천만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김성수 감독과, 그의 오랜 영화적 동반자인 배우 정우성이 20여 년 전 완성한 이 대서사시는 당대 한국 영화 역사상 전례가 없던 규모의 제작비와 전편 중국 현지 올 로케이션 촬영이라는 도전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무사’ 스틸컷. / CJ ENM MOVIE 제공

영화 '무사'는 픽션이 아닌 실제 역사적 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획됐다. 시대적 배경은 고려 우왕 1년인 서력 1375년으로, 한반도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기 직전의 혼란기였고, 중국 대륙 역시 주원장의 명나라가 원나라 세력을 밀어내며 새로운 패권을 장악해가던 격변기였다. 당시 고려는 공민왕 시해 사건과 명나라 사신 살해 사건 등으로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관계 회복을 위해 명나라로 향했던 고려의 사신단 일행은 간첩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사막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길 도중 원나라 기병의 기습으로 명나라 호송 군사들이 전멸당하면서 고려 사신단은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된다. 사신단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부사 이지헌(송재호)이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 노비이자 호위무사인 여솔(정우성)을 천민의 신분에서 해방해 주며 갈등과 운명의 축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용호군의 젊은 장수 최정(주진모)이 이끄는 고려 무사 일행은 객잔에서 원나라 기병들에게 납치당한 명나라 부용공주(장쯔이)와 마주하고, 고려로 돌아갈 배와 명분을 얻기 위해 공주 구출 작전을 감행한다. 그 대가로 다수의 동료 무사가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무사들은 원나라 군대의 추격을 받으며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사투를 벌인다.
‘무사’ 스틸. / CJ ENM MOVIE 제공

'무사'의 캐스팅 라인업은 지금 봐도 화려하다.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에 더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던 장쯔이가 합류하며 한중 합작 대작의 위용을 갖췄다. 명나라 부용공주 역에 장쯔이를 캐스팅하는 과정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00년 당시 장쯔이는 장예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과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통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던 신예였다. '무사' 제작진은 부용공주 역할에 장쯔이가 적임자라 판단하고, 서극 감독의 '촉산전'을 촬영 중이던 그녀를 중국 현지에서 만났다.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첫 만남을 가졌지만, 계약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조건과 마주쳤다. 장쯔이 매니지먼트 측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촬영 중 하루 최소 12시간의 수면 시간을 보장할 것이라는 조항이 담겨 있었다. 밤샘 촬영과 연속 촬영이 다반사였던 당시 한국 영화 제작 현장 여건상 수용이 어려운 조건이었다. 크랭크인을 두 달 앞둔 시점이라 배우 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작진은 배우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부용공주 역을 다른 배우로 교체할 예정이라는 소문을 중국 영화계에 흘렸다. 소문을 접한 장쯔이는 사흘 만에 제작진에 직접 연락해 매니저 개입 없이 한국 제작진의 요구 사항을 전폭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수면 시간 조항을 삭제한 채 계약을 마쳤다. 이 과정을 거치며 '무사'는 주연 배우 리스크를 넘어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 ‘무사’ 스틸컷. / CJ ENM MOVIE 제공

'무사'의 제작 규모는 당시 기준으로도 독보적이었다. 순제작비 55억 원, 총제작비는 7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이 투입됐다. 중국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면서도 도달한 액수라는 점에서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대 규모다.

촬영은 2000년 8월 6일 시작해 같은 해 12월 22일 크랭크업까지 총 149일간 이어졌다. 닝샤(은천), 위린, 산하이관, 싱청 등 중국 대륙의 사막과 계곡, 해안 토성을 오가며 촬영이 진행됐다. 매일 새벽 5시에 시작되는 일정 속에서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혹한, 시야를 가리는 모래바람이 촬영을 방해했지만 김성수 감독은 현장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촬영을 강행했다.

현장에서 소비된 자원 규모도 상당하다. 동원된 스태프 수는 최대 300명에 달했고, 인원이 워낙 많아 스태프가 아닌 외부인이 촬영장을 며칠간 따라다녀도 눈치채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침 대용으로 소비된 컵라면은 1만 4900여 개, 마신 생수병은 5만 9600병을 넘었다. 사용된 필름 길이는 일반적인 한국 영화의 7배인 35만 자에 달했다. 전투 장면이 많은 영화 특성상 부상자가 속출해 베이징 의과대학 출신 의료진 2명이 촬영장에 상주했고, 부상자 치료와 의약품 구입에 지출된 비용만 5000만 원에 이르렀다.
영화 '무사’ 스틸. / CJ ENM MOVIE 제공

'무사'의 액션은 기존 중국식 무협 영화와 궤를 달리한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완성한 액션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어 액션이나 장풍 같은 허구적 연출이 없다. 대신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 말 위에서 벌이는 마상 전투, 쇠와 쇠가 부딪치는 검술과 창술, 타격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리얼한 전투 장면을 화면에 담았다.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음악을 맡았던 사기스 시로 감독이 맡았다. 대륙의 스케일을 담은 오프닝 곡부터 전투 장면의 긴박한 비트, 여솔과 부용공주의 감정선을 대변하는 서정적인 멜로디까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영화 전반의 완성도를 뒷받침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여솔 역의 정우성은 창을 휘두르며 공주를 지키는 무사를 연기했고, 최정 역의 주진모는 계급적 한계와 명예 사이에서 고뇌하는 장수를 그렸다. 진립 역의 안성기는 사신단의 중심을 잡는 베테랑 무사로 극의 균형을 잡았다. 당시 신인이었던 배우 유해진은 주진군 무사 두충 역으로 출연했고, 원나라 장수 람불화 역은 배우 우영광이 맡았다.

개봉 당시 '무사'는 스크린 확보 문제와 15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서울 관객 85만 명, 전국 기준 약 2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다.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도 관객을 모으며 K무비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김성수 감독의 이후 필모그래피에서 이어지는 사실주의 액션 연출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무사’ 포스터. / CJ ENM MOVIE 제공

'무사' 특유의 묵직하고 날 것 그대로의 액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칼을 뽑아 든 무인들의 사투를 좋아한다면 만족할 만한 사극 액션 영화가 있다. 와이어를 배제한 실전형 액션의 쾌감과 비장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나라 정예 부대에게 납치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활 한 자루만 들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렸다. '무사'가 광활한 대륙에서 펼친 쫓고 쫓기는 생존 투쟁이었다면, 이 영화는 숲과 계곡을 배경으로 속도감 있는 추격전을 보여준다. 화려한 검술 대신 활이라는 무기를 극한까지 활용해 타격감을 극대화했고, 류승룡이 연기한 청나라 장수 쥬신타의 카리스마는 '무사'의 람불화(우영광)를 연상시킨다.

임진왜란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이자 검술 실력자인 천영(강동원)이 적으로 다시 만나 칼끝을 겨누는 이야기다. 신분제 한계 속에서 고뇌하는 무사들의 모습이 '무사' 속 최정(주진모)과 여솔(정우성)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강동원의 수려한 검술과 박정민의 묵직한 베기 액션이 대조를 이루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사실적인 전쟁 묘사가 특징이다.
'전,란'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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