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 읽음
배우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 고종 독살설 관련 과거 글 재조명
위키트리
0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13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뒤늦게 재조명받고 있다.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 / 유튜브 'KBS 히스토리''

2013년 5월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에는 '익명이니까 고백할수있는데'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글쓴이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고종황제 독살 의혹을 받는 어의라고 밝히며 4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적었다. 이어 텔레비전에도 짧게 이름이 나온 적 있다며 집안이 대대로 잘살았고 일제강점기에도 별다른 탈 없이 지낸 것을 보면 증조할아버지를 시작으로 할아버지도 친일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덧붙였다. 글쓴이는 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부끄럽다는 심경도 함께 남겼다.

당시 게시글에는 글쓴이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성 댓글이 달렸다.

2013년을 기준으로 4년 전인 2009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KBS '역사스페셜'에서 '고종황제, 그 죽음의 진실' 편이 방영됐다. 해당 글의 시점과 방송 시점이 겹치면서 두 사안이 같은 인물을 가리키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고종 독살설 어의' 관련 글.

KBS '역사스페셜'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제시한 새 자료를 토대로 고종 독살 의혹을 다뤘다. 이 명예교수가 찾아낸 자료는 일제강점기 일본 궁내성 관리였던 구라토미의 일기다. 1919년 10월 30일 자 일기에는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테라우치가 2대 총독 하세가와를 통해 고종에게 어떤 사안을 설명하려 했지만 고종이 이를 수락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윤덕영과 민병석 등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풍설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소개됐다. 방송은 이를 근거로 대표적 친일파로 꼽히는 윤덕영과 민병석이 고종 독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짚었다.

방송에서 다뤄진 윤치호 일기에 따르면 고종의 시신 상태는 심각했다.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 했고 이가 빠지고 혀가 닳아 있었으며 목에서 복부까지 30센티미터가량 검은 줄이 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법의학적으로 독살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으로 소개됐다. 고종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식혜로 알려져 있으며 방송은 현대 법의학을 통해 사인을 추적하는 내용도 다뤘다.

조선총독부는 고종이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발표 시점부터 의혹이 제기됐다. 일제의 공식 발표는 1919년 1월 22일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전에 고종의 사망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의 급서와 독살설은 이후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고종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해 대한제국 황실의 독립 의지를 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라토미 일기에는 일본이 고종의 독립 호소 시도를 사전에 파악하고 막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독살을 감행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고종은 독립운동가 이회영을 통해 중국 망명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방송에서 언급됐다.
'이방자수기'에서 언급된 안상호(하영의 증조부) 이름. / 유튜브 'KBS 히스토리'

방송에 따르면 안상호라는 이름은 고종 독살설을 다룬 '이방자 수기'와 '이왕궁비사'에도 등장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는 수기에서 조선총독부가 시의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적었다. 궁내부 사무관을 지낸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도 회고록 '이왕궁비사'에서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민병석과 윤덕영이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와 모의해 안상호에게 명해 독을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안상호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와 동일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개업의로 알려진 안상호는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을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당한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고 박영석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 '이완용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이완용은 병원으로 옮겨져 안상호, 박종환 등의 치료를 받았고 목숨을 건진 뒤 이듬해인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 즉 경술국치 체결에 앞장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상호는 슬하에 4남 3녀를 뒀으며 이 가운데 넷째 아들 안부호 씨가 배우 하영의 할아버지다. 이런 가계도가 공개되면서 2013년 여성시대에 글을 올린 네티즌이 하영과 같은 집안의 친척일 가능성이 온라인상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다만 해당 글의 작성자가 실제로 하영의 친인척인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4년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짧게 이름이 언급됐다는 표현이 KBS '역사스페셜' 방영 시점과 겹치는 만큼 정황상 개연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정도다.
'이왕궁비사'에서 언급된 안상호(하영의 증조부) 이름. / 유튜브 'KBS 히스토리'

증조부의 친일 논란이 불거지자 하영 측은 지난 10일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하루 만인 다음 날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소속사는 안상호 선생이 친일단체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입장이 뒤바뀐 과정 자체가 논란을 키운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이번 논란을 두고 학계의 신중론도 나왔다.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안상호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흐름에 대해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심 소장은 고종 독살설은 암살설이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풍문에 불과할 뿐 역사적 사실로 간주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배우 하영. / 뉴스1

심 소장은 특히 한 방송 프로그램의 스핀오프에서 법의학자까지 동원해 독살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제하고 방송을 만든 사례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냉정히 말해 10년간 일본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던 고종을 갑자기 일본이 독살할 이유 자체가 없다며 당시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심 소장도 안상호의 행적 전체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는 안상호가 당시 엘리트였고 친일파가 다수 참여했던 대정실업친목회 등 단체에 소속돼 있었던 점, 그리고 일본이 시정 홍보에 그의 집안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만년의 그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고종 독살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과 친일 단체 평의원을 지낸 이력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