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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AI 도입 성과, 제조 현장 비용 52.4억 절감
EV라운지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AX 성과 발표회’를 열고 그동안 추진해온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의 주요 성과와 향후 방향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챗 프로’를 일반 임직원에게 개방했다. H 챗 프로는 챗GPT,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모델을 선택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현재 이용자는 약 3만명, 현대차·기아 일반·연구직 임직원의 약 80%가 해당된다.
AI 활용 범위를 특정 개발자나 IT 조직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 임직원까지 확대하면서 문서 작성과 자료 분석, 정보 검색은 물론 코드 작성 등 다양한 업무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경영진이 직접 참여하는 AI 교육과 사내 AI 커뮤니티도 운영하고 있다. 현업 구성원이 AI를 직접 활용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문화를 조직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진은숙 현대차그룹 ICT 담당 사장은 이날 “AI는 활용 도구이지 목적 자체가 아니다”라며 “AI를 이해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해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는 실제 업무 현장에서도 구체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를 내고 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지난해 말 남양기술연구소에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수십 년간 축적된 차량 충돌시험 결과와 이미지, 해석 자료 등을 통합 검색하고 과거 유사 사례를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AI 기반 연구개발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연구원이 필요한 자료를 직접 찾아보고 과거 시험 결과와 비교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AI 도입 이후 사례 탐색과 분석 자료 검토 시간이 약 90% 단축됐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AI가 과거 경험과 지식을 현장의 의사결정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 현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자동화가 직접적인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는 차량식별번호(VIN)를 AI가 자동으로 판독한 뒤 실제 차량 정보와 생산시스템에 등록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대조하는 시스템이다. 작업자가 직접 차량 정보를 확인하고 입력하던 과정을 AI가 자동화하면서 오류 가능성을 줄이고 생산 과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현재 국내외 현대차·기아 생산거점 약 70곳에 적용,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 공장에서 연간 52억4000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AI를 제조 원가와 생산 효율을 직접 개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생산라인의 부품 공급 과정에도 AI가 적용됐다. 대차 정렬 최적화 기술은 생산라인에서 부품을 운반하는 대차의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복잡한 이동 경로를 최적화하고 설비를 자동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대차 정렬 문제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86% 줄였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비효율을 AI로 찾아내고 최적화하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했다.
현대차그룹은 AI를 전문 개발자만 활용하는 기술에서 현업 직원이 직접 업무에 적용하는 기술로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조 특화 AI 에이전트 생태계인 ‘E-포레스트: 폴라리스’다. 엔지니어들이 품질·생산·설비·물류 등 각 업무에 필요한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업에서 필요한 기능을 AI 개발 조직에 별도로 요청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구성원이 직접 업무에 맞는 AI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제조 현장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업무를 AI로 빠르게 전환하고, 현업의 아이디어가 실제 업무 혁신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AI 활용 범위는 제조 현장을 넘어 서비스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해외 정비 현장에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정비 지원 AI 서비스’가 적용됐다. 정비사가 차량의 오류 코드나 증상을 입력하면 AI가 과거 정비 기록과 관련 기술 정보를 분석해 예상 원인과 대응 방안을 제안한다. 숙련된 정비사의 경험과 과거 정비 데이터를 AI를 통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정비 대응 시간이 42% 단축됐다.
고객 대응 업무에도 AI가 적용됐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고객 리뷰를 AI가 자동으로 분류하고 적절한 답변을 제안하는 ‘고객 리뷰 대응 자동화 솔루션’을 구축했다. 기존에는 고객 리뷰 한 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35분이 소요됐지만 AI를 적용하면서 5분으로 줄었다. 건당 처리시간이 30분 줄면서 약 85.7%의 처리시간 절감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현재 전체 고객 리뷰의 85% 이상을 AI 기반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다음 달부터는 전체 고객 리뷰 대응 업무의 자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해당 시스템은 17개 언어를 지원해 글로벌 시장에서 접수되는 고객 의견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답변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AI를 빠르게 업무 현장에 적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년간 추진해온 DX가 있다. 그룹은 2018년부터 일하는 방식과 데이터 활용 환경을 바꾸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왔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이 돼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라와 두레이, 컨플루언스 등 SaaS(사스) 기반 업무관리·협업 플랫폼을 도입해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조직 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과거에는 개인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에 머물던 업무 정보가 담당자 개인의 지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차그룹은 공동 문서 작성과 업무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해 개인의 경험과 지식이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글로벌 협업 환경도 구축했다. 특히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각 조직에 흩어진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생산·판매·품질 등 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활용하고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대차그룹은 AX 전환을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의 변화로 보고 있다. 진 사장은 “기술 패러다임은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등 계속 변화해왔다”며 “생성형 AI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가 의사결정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해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차량과 로보틱스, 제조 현장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시대에도 현재 구축한 AX 기반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피지컬 AI는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차량과 로봇, 공장 등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 AI 모델뿐만 아니라 양질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학습시키며 현장에서 다시 데이터를 축적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대차그룹은 외부의 우수한 AI 모델과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보안과 데이터 보호가 중요한 영역에서는 내부 AI 모델과 학습 플랫폼을 구축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도 확대한다. 그룹은 약 500MW 규모의 새만금 데이터센터 부지를 확보, 오는 2029~2030년 구축을 목표로 AI 인프라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차량 개발과 생산,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활용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진 사장은 “현대차그룹은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해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라며 “AI뿐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기술도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의 AX 전환은 특정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에 내재화된 경쟁력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라며 “앞으로 중소기업의 AX 전환도 지원해 산업 생태계 전체의 AI 활용 저변을 확대하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