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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고, 국민연금에 18억 배상 확정
알파경제
표면적으로는 삼성증권이 국민연금공단에 약 18억 67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적 결론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국내 금융권과 산업계 전반을 향한 묵직한 경고장이 담겨 있다.
대형 금융사고 발생 시 "담당 직원의 단순 실수였다"거나 "일탈 직원을 퇴사 조치했으니 회사는 할 도리를 다했다"는 식의 관행적 꼬리 자르기나 면피성 해명이 더 이상 법적·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최고 법원이 명확히 판시한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법원이 배당 업무 담당 직원들의 실수에 대해 삼성증권의 사용자 책임을 명백히 인정했다는 점이다.
당시 사고의 발단은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다. 직원이 우리사주 조합원에게 현금배당(주당 1000원)을 해야 할 것을 주식배당(주당 1000주)으로 잘못 입력한 이른바 팻핑거(Fat Finger·입력 오류)였다.
당시 법원과 시장이 분노한 지점은 최초의 오입력이 아니었다. 당시 직원 계좌에 회사 전체 발행 주식의 30배가 넘는 28억여 주라는 비정상적인 유령 주식이 전산상 입고됐다. 그럼에도 삼성증권에는 걸러내거나 차단할 방어 시스템이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주식을 실제 시장에 내다 파는 모럴 해저드까지 보였다.
대법원은 직원의 과실과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개인의 실수를 제어하지 못한 헐거운 시스템 자체에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

과거 금융권에서는 횡령이나 불완전판매, 대규모 전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차적으로 개인의 일탈이나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개인의 악의적 일탈을 회사가 24시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다"며 해당 직원을 징계 또는 해고하고 형사 고발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기관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이번 판결은 금융회사의 얄팍한 변명이 자본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음을 시사한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이번 판결은 금융사고 발생 시 어떤 직원이 실수했느냐가 아니라 왜 시스템이 그 실수를 막지 못했느냐로 책임의 무게추가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준다"며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짐을 싸서 나간다고 회사의 법적·도의적 책임이 사라지는 시대는 끝났다"고 분석했다.

현금배당과 주식배당의 전산 프로세스를 완전히 분리하고, 총 발행 주식 수를 초과하는 입고나 주문 자체를 시스템 단에서 원천 차단하도록 다중 방어선을 구축했다.
대표이사 직속 최고소비자책임자(CCO) 신설 등 조직 정비도 단행했다. 그 결과 굳게 닫혔던 국민연금과의 거래 관계를 회복하며 일반거래 1등급 증권사로 정상 복귀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해당 판결을 계기로 여의도 증권가가 내부통제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금융권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둔 시점이라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증권사는 매일 천문학적인 규모의 고객 자산과 주문을 처리한다. 사람이 개입하는 이상 휴먼 에러를 확률상 제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내부통제의 본질은 임직원에게 실수나 일탈을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훈계나 사후 징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을 때 혹은 고의적인 일탈이 시도됐을 때 그것이 고객 자산의 손실이나 시장 교란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물리적·시스템적으로 원천 차단하는 촘촘한 거름망을 치는 것이 진짜 내부통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