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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 논란에 조상 찾기 열풍, 족보·친일사전 검색 급증
위키트리
성씨와 본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뿌리를 찾아서'는 최근 이용자가 몰리며 접속 장애와 복구가 반복되고 있다. 1997년 개설된 이 사이트는 성씨와 본관, 인물 등을 한글 또는 한자로 입력하면 해당 성씨의 유래와 역사, 주요 인물을 확인할 수 있는 족보 정보 사이트다. 평소에는 문중이나 중장년층이 주로 찾던 서비스였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접속자가 폭증하면서 서버 자체가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접속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새벽 시간대에는 검색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진다는 이용자들의 경험담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이는 낮 시간대 트래픽이 얼마나 몰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색량 지표도 이런 열기를 뒷받침한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뿌리를 찾아서' 검색량 지수는 100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1년 사이 최고치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특정 기간 검색량이 가장 많은 날을 100으로 놓고 상대적 수치를 산출하는 방식을 쓴다. 지난해 이맘때 검색량 지수가 거의 0에 수렴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검색량이 엄청나게 뛰었다. 평상시라면 관심조차 없었을 족보 사이트가 하루아침에 최고 관심사로 떠올랐다.
같은 기간 '친일인명사전' 검색량도 25배로 늘었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8월 들어 친일인명사전 앱 다운로드 수는 전월 대비 2.5배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친일인명사전 앱은 앱마켓에서 1만원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도 다운로드 수가 급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유료 앱임에도 이 정도 증가폭을 보였다는 건 그만큼 자발적이고 진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수치는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진 시점과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친일파 후손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진 시점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하영 논란의 발단은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 같은 사랑'에 출연한 하영이 배우 정해인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료인 집안이라고 소개한 데서 비롯됐다. 방송에서는 대대로 이어져 온 명망가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가 1916년 친일 단체로 분류되는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자랑스럽게 소개됐던 가문의 역사가 뒤집혀 조명되면서 대중의 반응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안상호는 과거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집안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하며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고 밝힌 내용도 함께 재조명됐다. 다만 안상호는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등재 여부를 두고도 온라인에서는 해석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온라인에서는 안상호의 다른 행적과 하영의 학력,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하영의 언니로까지 관심이 번졌고 드라마 '각시탈'에 등장하는 안상호로 추측되는 인물의 일화가 함께 공유되기도 했다.
하영의 본관인 순흥 안씨를 '뿌리를 찾아서'에 입력하면 주요 인물로 증조부 안상호가 등장한다. 사이트는 안상호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고종 독살설에 휘말린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근대 의학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기록된 인물이 동시에 친일 행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면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복잡한 시선이 얽히는 모습이다.

관심의 방향은 하영 개인의 논란을 넘어 각자의 조상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뿌리를 찾아서'가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공유되면서 이용자들이 직접 자신의 성씨, 시조, 본관, 주요 인물을 검색해보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 사이트는 본관을 검색하면 시조 소개, 성씨의 주요 인물,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명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타인의 논란을 지켜보다가 문득 '내 조상은 어땠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번 사태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족보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 역시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족보 자료를 제공하는 '한국인의 족보' 관계자는 최근 들어 20·30대의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자신의 본관이나 가계의 뿌리가 궁금하지만 족보가 한자로 쓰여 있어 이를 확인하려는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과거 족보가 중장년층과 문중의 관심사로 여겨졌다면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직접 찾아보려는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이 높아진 관심을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경우 제적부와 족보 등 관계 서류를 갖춰 국가보훈부에 후손 확인을 신청할 수 있다. 후손으로 확인 및 등록되면 정부가 보관하고 있던 훈장 등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뿌리 찾기 열풍이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실제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심사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상의 부끄러운 과거를 확인하려는 움직임과, 자랑스러운 과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같은 사이트, 같은 검색창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번 현상의 배경에는 역사 기록의 디지털화가 자리한다. 과거 역사학자나 전문 연구자의 영역에 머물렀던 일제강점기 관보, 매일신보, 친일인명사전, 독립운동가 서훈 데이터베이스 등 1차 사료가 모두 디지털화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검증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대중이 더 이상 수동적인 역사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역사적 기록을 직접 추적하고 검증하는 흐름이 이번 사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몇 년 전이라면 도서관이나 전문 기관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했던 자료를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이런 대중적 검증 열풍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문의 역사나 배경은 개인이 누리는 주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작동한다. 몇 대째 이어지는 전문직 가문이나 명망가라는 수식어는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게 신뢰와 호감을 더하는 요소로 소비돼 왔다. 문제는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환되던 가문의 역사 뒤에 일제강점기 기득권 유지나 협력 행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대중이 이를 불의하게 축적된 자본이 대를 이어 세습된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논란 이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가계가 어떤 역사적 맥락 위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타인을 단죄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나의 뿌리는 떳떳한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려는 자발적 정체성 탐색 행위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이 같은 뿌리 찾기가 조상의 행적을 후손의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상 연좌제가 금지된 만큼 조상의 친일 행위만으로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후손이 조상의 부정한 행적으로 얻은 부나 지위를 자랑스럽게 소비하거나 왜곡, 부인하지 않는 한 개인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과 집단적 공격은 개인 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지점은 가계의 독립운동 혹은 친일 여부를 기준으로 국민을 도덕적으로 서열화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의 뿌리를 파헤쳐 정적을 공격하거나 사적 보복의 무기로 삼는 방식은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고 소모적인 갈등만 야기한다. 이와 함께 사소한 혐의만으로 과도한 자학에 빠지거나 상대를 매장하려는 흐름과, 반대로 근거 없는 역사 부정으로 일관하는 흐름이 동시에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경계해야 할 지점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는 단칼에 분류하기 힘든 복잡성을 지닌다. 역사 학계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친일 행위를 평가할 때 핵심 기준으로 삼는 것은 행위의 적극성과 지속성, 반복성이다. 강요나 단순 단체 가입, 식민지 체제하에서의 직업적 행위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며 내선융화에 앞장선 자발적 부역 행위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단체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단편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다. 친일인명사전이나 공적 아카이브 역시 특정 개인이나 가문을 사적으로 응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료가 아니라, 식민 지배 체제의 작동 방식과 그 협력 구조를 객관적으로 기록해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공적 역사 기록물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